그리스, 터키 여행 31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4)- 터키의 카파도키아

터키의 카파도키아 히에라폴리스는 B.C. 2세기경 버가모의 왕 엔메네스(Enmenes Ⅱ)에 의해서 도시로 세워졌다. 그러나 도시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곳은 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온천물이 솟는 동굴은 제왕 적인 장소로 여겨졌고 따라서 일찍부터 이곳에는 성소(Sanctury)가 있었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라는 이름도 그 뜻은 본래 「성소가 있는 도시(City of the hieron)」이였으며 후에는 거룩한 도시(Holy City)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히에라폴리스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큰 공동묘지(necropolis)이다. 이곳에는 약 1,200개 이상의 석관이 발견되었으며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네크로폴리스 중의 하나이다. 터키의 파묵칼레 이곳은 아직 체계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이..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3)-석회온천 휴양지, 파묵칼레

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 파묵깔레는 온통 하얀 모습이었는데, 칼슘 성분의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층층이 바위를 지금의 하얀 모양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온천수는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해서 역사적으로도 치유와 휴양을 위해 많은 위인들이 방문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온천물은 섭씨 35도로 특히 심장병, 소화기 장애, 신경통 등에 특수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로마시대에는 로마의 황제들도 이 온천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일행이 짐(가방)을 버스에서 내려 운반하고 호텔에 들어가 호텔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이곳 호텔의 레스토랑에서도 향이 맞지 않고 음식이 짜서, 바게트 빵에 치즈와 꿀을 발라서 먹었다. 현지식 식사를 하는 곳에는 기본적으로 반드시 바게트 빵..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2)-고대 도시 에페소스

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 (셀수스 도서관) 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는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도시 전체에 유물이 산재해 있었다. 사실 에페소는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있지만 정확하게 도시의 기원을 알 수는 없단다. 다만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곳을 지나갔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유적을 볼 수 있는 유적 도시가 되었다. 에페소는 로마제국 당시 아시아의 수도를 페르가뭄에서 에페소로 옮긴 덕에 많은 건축이 이루어지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체류하기도 했으며, 이후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더욱 번성하여 로마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기원 후에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이곳에 전도 여행을 와 교회를 세우기..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1)-고대도시 에페스셀수스도서관

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 메소포타미아와 오리엔트문명이 이곳에서 잉태했고,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인류역사를 엮어 나갔던 수많은 문명들이 이곳에서 명멸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다는 이유로 유럽에서는 동양처럼, 동양에서는 유럽처럼 인식되기도 하며 선진국의 유럽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뒤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는 유럽연맹(E.C)의 준 회원국가이다. 북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이란이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이라크, 시리아, 지중해, 서쪽으로 에게해,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우리 나라와는 6.25 파병을 통해 『형제의 나라』로 칭해지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리스와 터키의 여행(10)-선박왕 오나시스

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 그는 화물운임의 비율이 상승할 때까지 2척의 배를 사용하면서 더 많은 배들을 사들였다. 1938년에 유조선을 최초로 소유하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2척의 유조선을 더 소유했다. 그의 선박 왕국은 성장을 거듭해 1940, 1950년대를 통해 선단은 크게 불어났다. 1950년대 중반 오나시스는 1년에 17척의 새 유조선을 구입했다. 1953년 그는 또한 몬테카를로의 카지노 극장 호텔 등과 다른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는 뱅드메르사에 대한 이권을 장악하기 위해 100만 달러를 지출했다. 1957~74년에 그리스 국영 항공회사인 올림픽 항공을 그리스 정부로부터 양도받아 운영했다. 1946년 선박왕 스타브로스 리바노스의 딸 아시나 리바노스와 첫 번째 결혼을 했으나, 1960년에..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9)-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테네 그러나 고대부터 주민을 괴롭혀오던 말라리아 모기의 발생지인 조그마한 택지 간척은 1920년대부터 대폭적으로 추진하였다. 즉 테르말(테르마이코스)만(灣) 깊숙한 내부에 위치한 바르다르 삼각주 등은 2∼3개의 호수와 부근의 조그마한 택지를 간척한 결과, 경지도 늘고 말라리아의 위협에서도 벗어나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농업경관을 이루게 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밀·올리브·옥수수·포도·담배 등이며, 최근에는 목화와 벼의 재배도 활발하다. 그러나 경지의 절대면적이 부족하므로, 경지의 대부분은 환금작물(換金作物)의 재배에 충당되며, 밀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환금작물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 농민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장인적 경향과도 관련이 있지만, 수출액의 반..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8)-아테네의 유적

아크로폴리스언덕으로부터 촬영한 아테네- 자신의 제의에 호응이 없으니까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은 한적한 바다한편이었다. 그곳에서 일행들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원래 바닷물이 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 바닷물은 유달리 짠맛이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해상도시국가였던 에기나 섬은 일찍이 무역이 발달했으며 이곳 특산물인 피스타치오 아몬드 나무가 이 섬 전체에 걸쳐 차지하고 있었다. 3쌍의 부부는 발을 담그고 있었던 해변으로부터 시내로 들어가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를 찾아갔다. 민병렬씨 부부는 포도를 말려서 만든 건포도를 샀으며 우리부부는 피스타치오 아몬드1㎏을 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해변가를 걸으면서 사람구경과 상품구경을 하면서 일행들이 점심을 먹기로 약속된 음식점을 찾아갔다. ..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7)-그리스의 에기나 섬

그리스 에기나섬으로 가는 유람선에서 올리브제품 전문상점으로부터 쇼핑한 상품을 듬뿍 안고 호텔에 돌아오니 8시 10분쯤 되었다.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다. 휴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하루동안에 있었던 내용을 메모장에 기록하는데 시간을 활용했다. 그러고 보니 거의 11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게되었다. 그리스의 주민 대부분은 대서양·지중해형 인종으로 분류되는 순수한 그리스사람이고, 그밖에 서부와 북부에 소수의 알바니아사람과 불가리아사람들이 거주한다. 현재의 그리스사람은 역사상 몇 차례나 거듭되어 온 여러 민족의 침입에 따른 혼혈로 형성되어, 고대그리스인과는 인종·문화적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고대그리스어(語)가 기원인 모든 방언은 그리스 국토에서 널리 사용되어 현재..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6)-그리스의 신전과 에기나섬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테네 그곳에서는 나체로 수영을 하고 있는 그리스사람들을 구경하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바다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스사람들은 바다와 친한 국민들이라고 느껴졌다. 바다의 수호신으로 잘 알려진 포세이돈 신전을 구경하면서 가까이 있는 카페에 들어가 냉커피와 오렌지주스를 사서 마시면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진 수니온곶은 신화에 따르면, 아이기우스(Aegeus)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려고 크레타 섬으로 떠난 그의 아들 테세우스(Theseus)를 이 곳 수니온곶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미노타우로스를 죽였으면 흰 돛을 달고, 그렇지 않으면 검은 돛을 달고 오기로 미리 약속을 하였다. 테세우스는 미노타..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5)-아테네(Athine)의 올림픽 스타디움

필로파포스 언덕정상에서 올리브월계관을 쓰고 기념촬영 이렇게 영향력이 큰 올림픽 경기를 주기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올림픽 참가자들이 경기에 참가하는 행위가 제약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올림픽이 열리는 때에는 선수와 참관인의 왕래를 돕기 위해 일체의 전쟁행위를 중단하였다. 이는 다름이 아닌 올림픽평화를 뜻하며, 이념의 대립에 의한 반쪽 올림픽 또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중단해야 했던 20세기의 올림픽과 대조를 이룬다. 처음에는 참가한 도시국가가 10여 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뒤 점점 늘어나 제23회 올림픽 때는 100개가 넘는 거의 전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에서도 참가하기에 이른다. 올림픽경기의 우승자에게는 상품으로 올리브 관을 수여하였다. 아크로폴리스와 시가를 한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