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터키 여행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8)-아테네의 유적

달리는 말(이재남) 2005. 7. 9. 06:01

 

아크로폴리스언덕으로부터 촬영한 아테네-

 


자신의 제의에 호응이 없으니까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은 한적한 바다한편이었다. 그곳에서 일행들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원래 바닷물이 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 바닷물은 유달리 짠맛이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해상도시국가였던 에기나 섬은 일찍이 무역이 발달했으며 이곳 특산물인 피스타치오 아몬드 나무가 이 섬 전체에 걸쳐 차지하고 있었다. 3쌍의 부부는 발을 담그고 있었던 해변으로부터 시내로 들어가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를 찾아갔다.
민병렬씨 부부는 포도를 말려서 만든 건포도를 샀으며 우리부부는 피스타치오 아몬드1㎏을 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해변가를 걸으면서 사람구경과 상품구경을 하면서 일행들이 점심을 먹기로 약속된 음식점을 찾아갔다. 에기나 섬 해변가의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코스 식으로 나오는 음식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는 동안,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돌아다니는 악사 뒤에 한 푼, 두 푼 주는 돈을 바구니에 걷으면서 따라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아테네(Athine)-아크로폴리스


그런가하면 언니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그 음악에 맞추어 댄스를 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잔돈을 주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그 거리악사들을 바라보면서 김순자씨가 내온 푸짐한 수박을 후식으로 먹으며 또 시간을 보냈다. 에기나 섬으로부터 아테네로 돌아온 다음에는 오전에 지나쳐온 국회의사당 앞에 다시 가서 의사당 근위병들의 우스꽝스러운 교대 식을 관람하면서 사진촬영하기에 바빴다. 근위병들의 교대 식이 끝나자 우리는 국회의사당 앞 지하철역에 들어가 역사(驛捨)의 이모저모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의 관광을 마치려는 시간이 다가왔다. 일행은 서울관에 다시 들려 저녁식사를 했는데, 이날은 얼큰한 육개장으로 맛있게 먹었다. 가이드를 따라 피레우스 항구로 이동하여 짐(가방)을 FERRY호에 옮겨싣고, 비록 146마일이나 떨어져 있기는 하나 그리스의 땅인 히오스(Chios)섬을 향하여 출발한 시간은 오후 7시경이었다.

 

아테네(Athine)-무명용사의 비


4명이 1실을 사용하는 객실에는 민병렬씨 부부와 함께 쓰기로 돼있었다. 우리가 배정을 받은 636호실에서 조금은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잠을 이룰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왕의 제도가 부활한 이래 입헌세습 군주제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1967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발족하고, 콘스탄티노스 2세가 정권탈환을 기도하다가 실패하고 국외로 망명했다.
1973년 6월 군사정권은 왕의 제도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채택할 것을 발표하여 공화제 이행의 헌법개정안이 7월의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얻었다. 이로써 그리스는 대통령 중심 의원내각제의 공화국이 되었으며, 대통령은 의원 2/3의 신임으로 선출되고 임기는 5년이다.

 

그리스의 코린트(Corinth)-박물관


그리스의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점령과 전쟁 후 계속되어온 내란에 의해서 거의 마비상태였다. 도시와 농촌은 전화(戰禍)를 입었으며, 주민은 군대에 들어가거나, 추방당하거나, 도망하는 길을 택해야만 했다. 상선은 침몰되고, 어선은 군용에 전용되는 등 모든 산업이 기능을 상실 또는 정지했으나 관광산업만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스의 전통적 산업은 농업이지만, 바위가 많은 산지와 가시밭 숲이 전국토의 55%를 차지하여 결코 자급은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전국토의 20%를 차지하는 경지도 비료가 충분하지 못해 생산성은 극히 낮다. 옛 그리스 시대의 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시적인 농사방법으로 밀 재배와 과수원의 영세경영을 위주로 하고 있으나, 토양침식이 심하고 또 경사지가 많아 제2차 세계대전 후 도입하기 시작한 농업기계도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