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터키 여행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9)-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

달리는 말(이재남) 2005. 7. 12. 16:00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테네

그러나 고대부터 주민을 괴롭혀오던 말라리아 모기의 발생지인 조그마한 택지 간척은 1920년대부터 대폭적으로 추진하였다. 즉 테르말(테르마이코스)만(灣) 깊숙한 내부에 위치한 바르다르 삼각주 등은 2∼3개의 호수와 부근의 조그마한 택지를 간척한 결과, 경지도 늘고 말라리아의 위협에서도 벗어나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농업경관을 이루게 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밀·올리브·옥수수·포도·담배 등이며, 최근에는 목화와 벼의 재배도 활발하다. 그러나 경지의 절대면적이 부족하므로, 경지의 대부분은 환금작물(換金作物)의 재배에 충당되며, 밀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환금작물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 농민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장인적 경향과도 관련이 있지만, 수출액의 반 이상을 농산물이 차지하고 있는 이 나라의 식민지적 경제구조에도 큰 원인이 있다.
특히 담배는 전국적으로 널리 재배되어 수출액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포도는 주로 건포도로 수출되고 있어 포도주를 주로 하는 이베리아반도나 이탈리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지질구조상 광산물의 종류는 다양하나 모두 생산량은 매우 적다. 특히 갈탄 외에 석탄이 없는 것은 공업화의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스의 코린트(Corinth)-박물관(마법의성)


철광석·납·아연·마그네사이트·보크사이트가 소량으로 채굴되며, 강수량이 적어 수력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다. 산지의 대부분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리석은 그리스의 특산물이나 현재는 별로 이용가치가 없다. 농산물가공의 전통적 가내공업과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후 기계·화학·섬유 공업 등의 근대공업이 아테네·피레에프스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무역상대국으로는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등이다.
그리스에는 100t 미만의 선박이 많고, 그리스인의 대 선주는 선적(船籍)을 라이베리아와 파나마에 두고 있어, 세계 해운에서 차지하는 그리스의 비중은 매우 크다. 그 유명한 선박의 왕 오나시스라는 그리스 부호가 있었다. 정식 이름은 아리스토틀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Aristotle Socrates onassis)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소크라테스가 이름에 들어가 있지만 그의 생애는 철학자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스의 선박 왕이고 그보다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 당한 뒤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해 더 유명한 사람이다. 이 오나시스가 요즘 그리스에서 다시 뜨고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가 앞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오나시스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간보다 언론과 정부에서 먼저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 올림피아 '제우스 신상'


오나시스는 1906년 생이다. 그가 보유한 유조선과 화물선의 선단은 많은 나라의 해군보다 더 큰 규모였다고 알려졌다. 원래 부유한 담배 상이었던 오나시스 가문은 1922년 당시 그리스의 도시였던 스미르나가 투르크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스로 탈출한 오나시스 가문은 더 나은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오나시스를 남미로 보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야간 전화 교환수가 된 오나시스는 집안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낮에는 담배 수입업을 시작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오리엔트종 수입 잎담배의 사용을 10%에서 35%로 증가시켰다. 오나시스는 2년만에 잎담배 판매에서 얻은 5%의 수수료로 10만 달러의 돈을 벌었다. 그리스 정부는 1928년 오나시스에게 아르헨티나와의 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을 위촉하고 그를 총영사에 임명했다.
그는 궐련 제조와 여러 가지 상품의 교역에까지 사업을 넓혀나갔고 25세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100만 달러의 돈을 모았다. 1932년 오나시스는 처음으로 캐나다 회사로부터 6척의 화물선을 12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리스의 코린트(Corinth)-박물관(마법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