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주여행 41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42)-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콜롬보의 포트지구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식민시대 때 성채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비즈니스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140년 된 시계탑은 옛날에 등대역할도 했다. 사방 1km도 안 되는 지구에 중앙우체국, 차터드 은행 등 영국식건물이 있고, 각종 비즈니스빌딩과 레스토랑, 술집, 토산품가게 등이 줄지어 서 있다. 시계탑 북서쪽에는 대통령관저가 있고, 바로 앞의 버네스 총독동상이 스리랑카도로의 기점을 이룬다. 스리랑카사람들의 문화적 유산과 전통은 이들의 매일의 삶의 활동적인 한 부분이다. 불교신자들, 그리스도인들, 이슬람교사람들은 종교에 의해 지배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표현한다. 운행 중인 버스가 고대 힌두사원에 경의를 표하려고 멈추는 것을 보면 현재 스리랑카사람들이 아직도 과거와 연결된..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41)- 「신성한 곳」켈라니야 사원

「신성한 곳」켈라니야 사원 강가라마야 사원을 출발, 콜롬보의 북동쪽으로 9㎞ 떨어진 켈라니야 강변에 위치한 「켈라니야(Kelaniya)사원』으로 달려갔다. BC 5세기쯤에 부처가 스리랑카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설법을 했다고 전해진다. 석가모니가 이곳을 방문해 보석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 적대하는 당파들을 앞에 두고 싸움의 무의미함에 대한 설법을 펼쳤다는 곳이다. 석가모니는 켈라니야 사원에서 설법을 한 뒤 목욕을 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켈라니야 사원이 만들어졌다. 스리랑카 국민들에게 이곳은「신성한 곳」이므로 입구에서 부터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다. 사원을 참배한 뒤에는 촛불을 켜고, 연꽃을 띄워 한창 발전하고 있는 스리랑카의 미래를 기원한..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40)-강가라마야 사원과 켈라니야 사원

강가라마야 사원과 켈라니야 사원 콜롬보국립박물관의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12시 20분, 배가 고파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한국관을 찾아가 한국냄새가 물씬 풍기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된장냄새가 나는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일이 얼마만인가? 한국관에서 나와 4층으로 돼있는 기념품상가에 들려 구경하고「강가라마야 사원」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간다. 전용버스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조금 걸어 들어가 신발을 벗어 정리한 다음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강가라마야 사원은『물을 다스리는 왕』이란 뜻이다. 이 사원을 설립한 사람은 스리랑카 불교재건을 주도한「히카두웨 스리나야카」라는 스님이다. 1885년 이 사원을 설립할 당시 스리랑카도 점점 불교의 맥락이 끊기는 일이 발생할 뻔했는데,..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9)-콜롬보 국립박물관

콜롬보 국립박물관 2013년 8월 11일은 여행을 시작한지 이레째 되는 날이다. 6시에 울리는 전화벨이 곧 모닝콜을 알리는 시간이다. 레스토랑이 열리는 시간이 6시 반이라고 했는데 확인해본 결과 7시란다. 객실에 들어가 가방을 챙겨 호텔로비에 맡기고 호텔 바로 앞 바다로 나갔다. 바닷바람을 쏘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워낙 세차게 불어 닥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생기는 성난 파도는 장난이 아니다. 파도에 겁을 먹은 필자부부는 호텔정원으로 들어와 정원의 야자수나무를 배경삼아 몇 장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용버스는 곧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을 태우고 호텔을 출발한다.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벤토타는 스리랑카남부의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휴양도시로서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이 펼쳐져있고 해양스포츠가 즐비한 또 다른..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8)-람보다 고개에서 꽃을 파는 소년

람보다 고개에서 꽃을 파는 소년 이때는 무심코 지나쳤다. 그런데 한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고 있는데 또 이 소년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버스 안의 필자일행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이 소년을 지나쳐버렸는데, 워낙 꼬불꼬불한 길이니까 또 한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기 마련이다. 세 번째로 이 소년이 우리가 탄 버스 앞에 나타났다. 누가 먼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동시에 버스를 세우라고 일행들은 소리친다. 그리고 버스 문을 열어주었더니 꽃을 든 이 소년이 안으로 들어와 필자 외에도 몇 사람이 더 이 소년의 꽃을 사주었다. 미화 1불을 지불하고 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흐뭇해하는 아내와 꽃을 판 소년의 표정을 바라보는 필자역시 흐뭇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필자부부는 2006년..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7)-호튼플레인 국립공원의 트레킹

호튼플레인 국립공원의 트레킹 2013년 8월 10일, 여행을 시작한지 엿새째를 맞는 날 아침이라기보다는 새벽, 4시 45분에 모닝콜이 있고 5시 반에는 호텔을 출발한다. 지금까지 타고 다니던 버스가 아닌 8인승 봉고차에 아침식사 도시락을 싣고 출발하였는데, 호텔을 출발하고 조금 더 가다보니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운무가 필자일행의 갈 길을 가로막는다. 「호튼플레인」은 트레킹을 할 시간에 안개가 심하면 트레킹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해서 걱정이 된다. 이 짙은 안개 속을 승용차가 달려 호튼플레인 입구에 도착, 입장권을 구입하였을 때가 7시 10분이다. 트레킹을 일찍 하려는 이유는 늦은 시간에「월드 앤드」에 도착하면 운무가 너무 심하여 주변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 타고 ..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6)-세계적인 차생산지, 누와라엘리야

세계적인 차생산지, 누와라엘리야 스리랑카중앙부 누와라엘리야 지구로서 콜롬보 동쪽 100km 지점, 실론섬의 중앙산지 피두루탈라갈라 산(해발 2,524m)의 남서쪽 기슭, 해발고도 1,893m의 고원지대이다. 기후는 월평균기온 13(2월)∼15℃(5월)로 피서지로 유명하며 차(茶)의 대농장지대이며, 상업중심지이다. 주민은 농장노동자로서 인도남부에서 이주해온 타밀족이 많다. 스리랑카중앙산지의 가장 높은 피두루탈라갈라 산의 남서쪽기슭, 해발 1900m 고산지대에 위치한 누와라엘리야는 적도의 열기를 느낄 수 없는 시원한 곳이다. 평지보다 10℃ 정도 기온이 낮아 한 여름에도 아침, 저녁으로는 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영국식민지시절에는 휴양지로 유명해 지금도 그때의 흔적으로 넓은 정원이 있는 영국식건물이 곳곳에 ..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5)-누와라엘리야로 가는 길

누와라엘리야로 가는 길 여행을 시작한지 닷새째 되는 날 아침, 아침식사를 하려고 3층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온갖 야채와 치즈를 넣고 요리하는 오믈렛을 주문하여 먹고, 빵에 잼을 발라 먹었다. 구운 토마토와 감자 그리고 요구르트를 더 갖다가 먹고 아보가드 주스가 눈에 뜨이기에 한 잔 마셨더니 어지간히 배 부른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건물 밖, 정원으로 나갔더니 어제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20여명의 카메라맨과 들러리에 둘러싸여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 필자의 카메라에 2컷을 담고 있을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신혼부부는 601호실을 사용하였는데 촬영기사들이 복도에 진을 치고 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부부의 방 607호실로 들어와 아내와 여행이야기를 나누며 객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캔디시내의 멋진..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 (34)-캔디왕조 때의 캔디안 댄스

캔디왕조 때의 캔디안 댄스 불치사를 뒤로 하고 캔디왕조 때 궁전 앞에서 추었던 춤, 스리랑카를 느낄 수 있는 정통공연을 관람하려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많은 외국인관광객들로 혼잡해 보인다. 예매해놓은 필자일행의 좌석을 찾아들어가니, 이미 다른 관광객들이 필자일행의 맨 앞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가 필자의 좌석이라는 걸 곧 알아차리고 좌석을 비워준다. 전통복장의 악사들의 북연주가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10여명의 남여댄서들의 의상을 바꿔가며 교대로 여러 가지의 댄스를 선보인다. 댄스라고 말하지만 어딘지 서커스하고 흡사한 장면도 보이고 스리랑카의 전통악기가 우리나라의 북이나 장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상모를 돌리며 무대를 휩쓸고 돌아다니는 상모돌리기 춤의 단독공연도 있다. ..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3)-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 캔디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 캔디 알루비하라를 출발한지 2시간쯤 걸렸을까? 스리랑카 제2의 도시, 캔디에 도착하자 전용버스 운전기사, 우다야는 필자일행을 보석을 다듬어 판매하는 보석상 앞에서 내려주었다. 보석상 안으로 들어선 일행에게 영상물을 통하여 스리랑카의 보석채취과정을 보여준다. 보석채취과정을 보여준 다음 보석을 갈고 닦아 판매하는 장소에 데리고 들어가 구경시켜주었으나 보석을 구입하는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보석상에서 나온 필자를 버스에 싣고 캔디를 한 눈에 바라보면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전망이 좋은 높은 장소에 데려다주었다. 캔디는 15세기에 건설된 옛날의 도시로, 18세기까지 신할리왕조의 수도였으며,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전통적인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시가지 중앙에는 인공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