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주여행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3)-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 캔디

달리는 말(이재남) 2019. 9. 18. 06:09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 캔디

 

알루비하라를 출발한지 2시간쯤 걸렸을까? 스리랑카 제2의 도시, 캔디에 도착하자 전용버스 운전기사, 우다야는 필자일행을 보석을 다듬어 판매하는 보석상 앞에서 내려주었다. 보석상 안으로 들어선 일행에게 영상물을 통하여 스리랑카의 보석채취과정을 보여준다.

보석채취과정을 보여준 다음 보석을 갈고 닦아 판매하는 장소에 데리고 들어가 구경시켜주었으나 보석을 구입하는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보석상에서 나온 필자를 버스에 싣고 캔디를 한 눈에 바라보면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전망이 좋은 높은 장소에 데려다주었다.

캔디는 15세기에 건설된 옛날의 도시로, 18세기까지 신할리왕조의 수도였으며,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전통적인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시가지 중앙에는 인공 호수가 있고, 호수의 북안에 있는 달라다말리가바 사원, 즉 불치사에는 석가모니의 이()가 봉납되어 있다고 한다.

새로 취임하는 총리는 이 사원에 참배하는 것이 관례이며, 매년 8월에 대제(大祭)가 열린다. 고원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답고 교통과 상업의 요지이며,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해발 500m의 높이에 건설된 인도양에서 만나는 유럽, 캔디는 1815년 영국에서 이양되기 전까지 3세기에 걸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으며 다양한 불교유적을 만날 수 있다. 여러 장의 캔디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고 중심가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내려가서 바라본 캔디시내는 생각보다 꽤 큰 번화가를 가진 도시라는 것을 알았다. 재래시장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나 백화점에는 사람들이 몹시 많아 보이듯 쇼핑의 고장으로 보인다.

대형 마켓과 각종 브랜드상점들이 즐비하고 대도시에만 있다는 대형쇼핑몰도 있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베이커리도 보인다. 백화점과 현지상가도 함께 둘러보았다. 캔디는 부처님의 치 사리를 모셔 놓은불치사(佛齒寺)가 유명하다. 362년 남부 인도 칼링가왕국의 헤마말라 공주가 이동해왔다는 부처님의 치사리를 모셨다하여 불치사라 부르고 있다.

불치사는 인도동부의 16세기 후반 포르투갈이 캔디지역을 지배했을 때 이 치()사리를 파괴하려 하자 스리랑카사람들은 가짜로 만든 사리를 넘겨주어 진짜 사리를 보존할 수 있었다. 부처님치아의 사리를 모셨다는 불치사사원 안으로 들어가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사원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1998년 이 사원은 힌두교 반군단체인 타밀족힌두교도들의 폭탄테러가 있었으므로 연 2~3회 지정된 날을 제외하고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불치사의 불치(佛齒)는 사실 종교적인 의미와 함께 스리랑카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며 불교성지순례지로 꼭 들르는 곳이다.

불치사의 내부로 들어가니 금빛 사리함에 부처의 치아가 보관돼 있다는 곳을 찾아보았다. 또한 팔각형전각이 아름답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싱할라 전통건축양식의 진수를 구경하는데, 사원내부에는 크리스탈 원석을 가공해 만든 부처님의 좌상, 정밀한 조각들, 화려한 모양의 천장 등이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온 해발 500m에 건설된 유럽, 캔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온 해발 500m에 건설된 유럽, 캔디의 시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온 해발 500m에 건설된 유럽, 캔디(불교성지, 불치사)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온 해발 500m에 건설된 유럽, 캔디(불교성지, 불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