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경제
형벌체계는 영국법을 따르고 있고, 기본 시민법은 로마-네덜란드식을, 결혼과 이혼 그리고 상속과 같은 민사법은 무슬림이나 타밀관습을 따르고 있다. 군대는 육군, 해군, 공군 등 3군으로 나눠지며 모두 국방부의 통제를 받으며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겸직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해군의 중요성이 큰 국가이다.
독립 이후에는 주로 국내에서 발생한 내전에 병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2006년 현재 GDP 대비 국방력투입은 2.6% 수준이다. 스리랑카는 식민지적 경제구조가 뿌리깊이 박혀있으며, 인구의 75%가 살고 있는 농촌에서는 플랜테이션과 소농(小農)경영이 병존하고 있고 쌀의 자급자족은 50∼60%이다.
1970년의 좌익연합정권은 고용확대 5개년계획을 구상하였으나 1971년의 반란 때문에 미완성으로 끝났으며, 이후의 신(新)5개년계획도 투자율과 성장률이 계획보다 밑돌았다. 통일국민당정권은 경제정책의 기조(基調)를 통제완화, 민간부문·외자(外資)를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하였다.
카투나야케 국제공항지역에『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고 외자를 유치하여 고용기회의 확대, 경제발전, 실업문제의 해결을 꾀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경제가 회복되어 1990년∼1998년의 평균 국내총생산성장률은 5.1%를 기록하였다. 광업부문에서는 질 좋은 흑연과 사파이어, 루비 등 여러 종류의 보석이 생산된다.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공업의 비율은 14%로 아직 저개발상태에 있다. 수산자원은 풍부하지만 자급능력을 갖추지 못하여 수산업도 뒤떨어져 있다. 무역부문에는 수출품의 대부분이 제1차 상품이지만 수출품의 다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최근에 식품제조, 직조업, 항만건설, 통신시장 진출이 활발한 편이다. 콜롬보공항은 세계굴지의 큰 공항이다.
2005년에는 플랜테이션작물이 수출의 15%를 차지했고, 봉제업이 60%를 차지하여 1970년 90%에 달하던 농산품수출시장 구조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1977년 스리랑카는 공식적으로 사회주의경제체제를 포기하고 수출주도와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했다. 집권 스리랑카자유당은 빈곤퇴치, 저발전 지역의 개발, 중소기업 발전, 농업발전을 당 정강으로 내세우며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약 8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90%가 중동에 체류하고 있으며 연간 10억 달러를 고국으로 송금한다. 2004년 12월 쓰나미로 인해 3만1,000명이 사망하고 6,300명이 실종되었으며 재산 피해액만 15억 달러에 달했다.
자연의 향기를 머금은 실론티를 50% 생산하는 누와라엘리야의 영국식 옛 우체국건물
세기에 걸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온 해발 500m에 건설된 유럽, 캔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온 해발 500m에 건설된 유럽,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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