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주여행 41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2)- 스리랑카의 경제

스리랑카의 경제 형벌체계는 영국법을 따르고 있고, 기본 시민법은 로마-네덜란드식을, 결혼과 이혼 그리고 상속과 같은 민사법은 무슬림이나 타밀관습을 따르고 있다. 군대는 육군, 해군, 공군 등 3군으로 나눠지며 모두 국방부의 통제를 받으며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겸직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해군의 중요성이 큰 국가이다. 독립 이후에는 주로 국내에서 발생한 내전에 병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2006년 현재 GDP 대비 국방력투입은 2.6% 수준이다. 스리랑카는 식민지적 경제구조가 뿌리깊이 박혀있으며, 인구의 75%가 살고 있는 농촌에서는 플랜테이션과 소농(小農)경영이 병존하고 있고 쌀의 자급자족은 50∼60%이다. 1970년의 좌익연합정권은 고용확대 5개년계획을 구상하였으나 1971년의..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1)-스리랑카의 자연과 문화

스리랑카의 자연과 문화 스리랑카의 지형은 남북으로 긴 서양배 모양으로 중남부가 고원지대이며, 이 주변은 해안선을 향하여 낮아지고 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최고봉은 피두루탈라갈라산이며 중앙산맥에서 발원한 하천은 수량이 풍부하여 관개에 이용되지만 교통으로 이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기후는 적도에 가까워 고온다습의 열대성기온을 나타내며 연평균기온이 27∼28℃에 이르고 대부분지역의 상대습도가 매우 높은 편으로 비교적 온화한 편이며, 지역에 따른 연간기온의 변화도 작다. 5∼9월에는 남서 몬순이 불고, 11∼3월에는 북동 몬순이 부는데, 전자는 남서부에 다량의 비를 내리게 하여 농작물의 성장을 돕는다. 산지의 배후인 북동부는 강수량이 적은 건조지대로 불모지가 많으며, 전인구의 70%는 국토의 1/4밖에 안 되는..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30)-가장 오래된 패엽경이 보관된 알루비하라 불교사원

식사를 마친 일행은 전용버스를 타고 마탈레(Matale)를 향하여 달린다. 스리랑카 중부 센트럴주(州)에 있는 도시, 마탈레는 두 곳의 세계문화유산이 있으며 스리랑카불교의 상징인 패엽경(貝葉經)이 완성된 곳이다. 캔디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구릉지에 위치하며, 불규칙적으로 변하는 ..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29)-스리랑카의 왕립식물원인 향신료정원

캔디를 향하여 달리던 중 향신료정원 앞에서 내렸다. 스리랑카의 왕립식물원(Royal Botanical Gardens)은 스리랑카중부에 있는 캔디에서 서쪽으로 5.5km 떨어진 페라데니아에 약 18만평의 면적에 4천여 종의 열대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식물원을 지칭한다. 이 지역은 오래전에 왕실에 의해 정원 또..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26)-시기리야 관광의 거점이 되는 담불라

여행을 시작한지 나흘째를 맞은 날 아침은 5시 40분쯤 침대에서 일어나 준비를 하였다. 커튼을 젖히니 원숭이가 필자를 바라보며 몇 가지의 행동을 취한다. 반갑다는 표정인지 뭘 달라는 제스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현을 하고 있다. 수컷원숭이는 도전적인 자세로 필자를 응시하기도 ..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25)-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을 새로 칠한 유적의 보수방법

이 후에도 석굴사원은 꾸준히 늘어났으며, 5~13세기에 특히 증가하면서 바위로 된 성소로 확장되었고, 석굴을 가리기위해 벽돌을 쌓아 벽을 세웠다. 12세기 말에 이르러, 니산카 말라(Nissanka Malla)왕에 의해 상층부에 있는 동굴바위에 조각을 하는 기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그보다 앞선 암..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22)-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갈비하라

12세기 말에 지어진「바위 사원」이란 뜻을 가진「갈 비하라」는 폴론나루와의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왕, 1153~1186에 다스렸던 파라카라마바후 1세가 세웠으며 한 때「북쪽의 사원」이라고 알려졌다.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조각한 것으로 가장 남쪽의 조각은 앉아있는 부처상이다.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