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주여행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28)-스리랑카 내전(Sri Lankan Civil War)

달리는 말(이재남) 2019. 9. 9. 06:33

 스리랑카 내 싱할리족과 타밀족 간의 내전은 아시아 역사상 최장기 내전으로 알려져 있다. 스리랑카 내 타밀족의 분리 독립투쟁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스리랑카는 주요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싱할라족과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타밀족 간의 분쟁으로 심각한 유혈내전을 겪었다. 스리랑카는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19482월 영국연방 내의 자치령으로 독립하였는데, 이 독립 후 주요권력을 다수 불교계인 싱할리족(75%)이 독점하면서 소수 힌두계 타밀족(19%)에 대한 차별정책을 구사하였다.

1972년에는 국명을 타밀어로 된 국호실론(Ceylon)을 싱할라어인스리랑카(Sri Lanka)로 교체하기도 하였으며 싱할리족의 득세에 따라 힌두교를 신봉하는 타밀족은 차별을 받게 되었고, 분리독립을 도모하게 되었다. 타밀족이 분리를 추진하게 된 것은 1965년이었고 1975년 이후에는 간헐적인 충돌도 발생하였는데 타밀족의 분리투쟁이 본격화된 것은 19837월 이후이다.

타밀족 본거지인 자프나(Jaffna)반도에서 몇 명의 정부군이 사망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싱할리족의 타밀족에 대한 대학살(1000)이 전국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있은 후 1983년부터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등 타밀반군은 대규모 반정부투쟁을 벌려왔다

19896월 프레마다사 대통령 정부와 LTTE 간 평화협상으로 일시휴전이 성립되기는 하였으나, 1990년대에도 무장충돌 및 폭동과 테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가 2001125내전 종식을 공약으로 내건라닐 위크레메싱헤가 스리랑카 총리에 당선되면서 휴전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였으며 협상개시 두 달 여 만에 휴전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라닐 위크레메싱헤 스리랑카 총리와 반군 LTTE의 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브하카란이 휴전협정에 서명하여 20022230시부터 정부-반군 간 휴전이 공식 발효되었다. 이후 정부군과 반군은 노르웨이정부의 중재로 휴전을 선언한 뒤 평화협상을 진행하여 왔고 200211LTTE가 민주적 정치체제에 참여하며 기존정당들의 반군지역 활동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양측은 협상에서 권력분점을 다룰 정치위원회를 포함하여 군사, 경제현안을 논의할 3개 위원회의 설립에 전격 합의하였다. 이 합의는 반군 측이 그 동안 협상에서 고수해온 독립국창설 요구를 거둬들이고 대신 연방(federal) 또는 연합(confederate)

형태의 권력분점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리랑카평화협상이 반군 측의 더 많은 자치권보장요구로 중단되는가 하면, 대통령과 총리 간 권력투쟁으로 말미암아 또 다시 유혈내전의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2008년 휴전이 종결됨에 따라 내전이 재개되었고, 정부군이 20095월 타밀 반군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브하카란이 사살됨으로써 전쟁은 종결되었다. 스리랑카 내전의 결과 26년간 7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으며, 민족박해와 인권탄압, 난민문제 등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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