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주여행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26)-시기리야 관광의 거점이 되는 담불라

달리는 말(이재남) 2019. 9. 4. 06:18

여행을 시작한지 나흘째를 맞은 날 아침은 540분쯤 침대에서 일어나 준비를 하였다. 커튼을 젖히니 원숭이가 필자를 바라보며 몇 가지의 행동을 취한다. 반갑다는 표정인지 뭘 달라는 제스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현을 하고 있다. 수컷원숭이는 도전적인 자세로 필자를 응시하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원숭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815분에 짐 가방을 객실 앞에 내놓고 호텔 로비로 내려가 체크아웃을 마쳤다.

때 마침 전용버스에 짐을 싣고 있고 석굴사원을 향한 출발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담불라는 시기리야관광의 거점이 되는 작은 마을이며, 석굴사원으로 유명하다. 해발 180m나 되는 높은 바위산 중턱의 석굴사원은 2000년 역사의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석굴사원은 바위를 뚫고 만들어진 사원으로 황금사원이라고도 알려진 이 사원입구의 광장에는 사원을 구경하려온 수많은 인파가 북적대고 있다.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황금사원 입구에는 사진촬영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 같아 보인다.

입장권을 구입하는 동안 우선 몇 컷의 기념사진을 카메라에 담는다. 석굴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300여개의 계단이 있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또 다른 입구에 다다른다. 신발을 벗어 정리한 다음 석굴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첫 번째 동굴로 들어가니 약 14m 정도의 열반에 든 와불상이 있는 이 주변에는 다양한 불교설화를 그린 벽화가 있어 불교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3, 4 동굴에는 채색된 입불상과 좌불상 등 유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BC 1세기경 아누라다푸라에서 쫓겨난 바타가마니 왕이 이곳에서 수도하며 수복의 기회를 노리다가 아누라다푸라로 돌아가게 된 후 감사의 뜻으로 석굴사원을 건립한 것이다. 워낙 수많은 사람들이 석굴을 관람하고 있어 석굴입구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가 석굴 안의 관광객들이 밖으로 나오면, 그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면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곤 한다.

이 기다리는 시간에 석굴사원 앞 조그마한 연못의 연꽃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를 써보기도 했다. 담불라 유적군은 스리랑카와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종교의 예술성과 표현성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로 발굴된 석굴, 벽화, 불상과 신상 등은 크기나 보존 상태로 볼 때 상당히 독특하다.

사원에는 스리랑카 캔디(Kandy)학파의 18세기 예술의 중요한 걸작들이 있다. 기원전 3세기에 만든 불교석굴사원 중심지인 담불라는 오늘날까지도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석굴사원이 있는 지역은 스리랑카역사를 통틀어 동부와 서부 건조지역과 중앙산맥을 이어 주는 교통의 요지에 있다. 이 석굴사원은 스리랑카 섬의 지질학 역사연구에 중요한 지역인 자갈이 많은 층과 섬 모양으로 고립하여 둥근 구릉지와 또는 침식 잔구 위에 만들어져있다.

이 유적은 이반카투와(Ibbankatuwa)에 있는 거석문화묘지와 더불어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에 인간이 살고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황금사원은 스리랑카 섬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곧바로 세운 불교건축물로서, 이후 22세기 동안 줄곧 사용되어 왔다. 이 유적지에서 80개의 석굴 주거지역의 잔해가 발굴되었다. 기원전 1세기경에 담불라 남쪽 벽의 석굴주거지는 모두 사원으로 바뀌었다.


스리랑카 중앙 센트럴주에 있는 담불라의 높은 바위산 중턱에 조성된 석굴사원 입구

스리랑카 중앙 담불라의 Heritance Kandalama 호텔 객실에서 촬영한 원숭이

스리랑카 중앙 센트럴주에 있는 담불라의 높은 바위산 중턱에 조성된 석굴사원

                               스리랑카 중앙 센트럴주에 있는 담불라의 높은 바위산 중턱에 조성된 석굴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