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주여행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27)-스리랑카의 독립

달리는 말(이재남) 2019. 9. 7. 05:54

스리랑카는 독립 후 돈 스티븐 세나나야케(Don Stephen Senanayake)초대 수상이 이끄는 통일국민당(UNP)의 보수정부가 집권하여 친서방 정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19564월 총선에서는 인민통일전선(후에 자유당으로 통합)19607월 총선에서는 스리랑카 자유당(SLFP)이 집권하였다. 스리랑카자유당은 기본적으로 진보적 보수 세력이었으나 점차 좌경화되었다.

1959925일 솔로몬 웨스트 리지웨이 지아스 반다라나이케(Solomon West Ridgeway Dias Bandaranaike)수상이 암살당한 후 미망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Sirimavo Bandaranaike)여사가 스리랑카자유당의 당수로서 정권을 잡았다. 스리랑카는 1962세일론화 정책이라는 일련의 국유화조치를 통하여 미국과 영국계 석유회사를 접수하고, 유력지 ANC 그룹(Associated Newspaper of Ceylon Ltd)을 강제로 국영화하였다. 이 결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높아졌다. 19653월 총선에서 통일국민당(UNP)이 승리함으로써, 더들리 세나나야케(Dudley Senanayake)정권이 재출범하였다 

 통일국민당은 스리랑카자유당(SLFP)정부가 개척한 공산제국의 원조를 받아들였다. 또한 미국과 영국계 석유 3사에 포상금을 지불하여 두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였다. 19705월 총선에서 스리랑카자유당(SLFP), 평등사회당(LSSP), 스리랑카공산당(CPSL)의 야당통일전선이 승리함으로써,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여사를 수반으로 하는 3당의 연립정부가 출범하였다. 연립정부는 주요산업을 국유화하고 동독, 월맹, 북한을 승인하여 대사급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비롯하여 좌경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19713월 극좌 청년단체 인민해방전선(JVP)이 정부 전복기도 사건을 일으켰다. 이에 1971316일 스리랑카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반란을 진압하고 난 1972520일 스리랑카는 신헌법을 공포하고 영국연방자치국에서 새로운 독립공화국으로 출범하였다. 국명도 스리랑카공화국(Republic of Sri Lanka)으로 바꾸게 된다.


스리랑카 중앙 센트럴주에 있는 담불라의 높은 바위산 중턱에 조성된 석굴사원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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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탈레의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패엽경이 보관된 동굴 알루비하라의 패엽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