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터키 여행 31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24)-탁심 광장

탁심 광장의 상징인 독립기념탑에서 탁심거리 탁심 광장의 상징인 독립기념탑에서 제2정원의 오른쪽에는 굴뚝이 딸린 큰 부엌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천장이 돔으로 된 10개의 큰방과 28개의 굴뚝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골든 혼에서 바라보는 톱카프 궁전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그 장엄한 아름다움 외에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군사상 최적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언덕 끝에 동서교역의 접점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대포를 포진해 놓았던 군사요지이다. 이 때문에 「Top대포, Kap문, Palace 궁전」에서 톱카프 궁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의 최고 전성기에는 4~6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던 만..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23)-이스탄불의 이모저모

이스탄블의 톱카프궁전에서 바라본 이스탄블 더군다나 예산부족으로 문화재의 이전이나 도로정비 마저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분명 이스탄불은 복잡하고 깨끗하지 못한 도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서울처럼 쭉쭉 뻗은 4차선 이상의 도로를 그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에 와서 감히 교통과 도로사정을 탓하거나 깨끗하지 못한 거리라고 환경을 탓하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지나친 개발과 전쟁 등으로 문화재가 훼손되는 요즘 이스탄불의 문화재보호정책은 오히려 불편한 교통, 낙후된 시설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도록 여행자를 너그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스탄불 루멜리 히사리요새 터키 최대의 도시.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 하였고, 그리스시대에는 비잔티움(Byz..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22)-아시아와 유럽의 양 대륙에 걸쳐있는 유일한 도시, 이스탄불

잠시 후 20여명의 어린이가 둥그렇게 모여 섰고 북과 아코디언을 소지한 어른들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필자와 대화를 나누던 그 터키인의 지시에 따라 한 남자어린이가 마음에 둔 여자어린이에게 다가가 춤을 추자는 제스처를 취하고 그 여자어린이는 함께 나와 춤을 추는 것이다. 계속해서 또 다른 남자어린이가 또 다른 여자어린이에게 춤을 추자고 하면 함께 춤을 추곤 했다. 남자어린이들의 몸놀림이 유연하고 힘이 있어 보였고 여자어린이들은 부드러운 몸 동작을 취했다. 한바퀴씩 돌아가면서 춤을 추고 나더니 이번에는 어른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게 아니던가! 5분간의 시간이라고 했는데 20여분은 족히 흘렀을 것이다. 흥겨운 시간이었고 갑자기 횡재를 한 기분이다. 그들 일행은 물론 우리 일행으로부터 대환영을 받았으며..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21)-터키의 어린이들과 만난 휴게소의 터키선생님과 필자

1923년 10월 13일 아타투르크 대통령에 의해 터키 공화국의 수도로 정해지면서 앙카라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 지기 시작했다. 그는 통일 국가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지나치게 서쪽에 치우쳐 있는 이스탄불 대신 내륙 깊숙이 위치한 앙카라를 선택한 것이다. 초기엔 불과 6만 명의 인구였지만 도시계획을 수립하여 각종 국가 기관과 각국의 대사관 영사관 등을 정책적으로 앙카라로 이전하는 등 계획적인 발전을 꾀하고, 그것을 토대로 이후 앙카라는 급속도로 개발되었다. 터키 앙카라대학교 현재는 가장 현대적이고 상업적 기능 도시로 시가지에는 국회의사당, 정부기관, 외국공관 등이 있고 앙카라대학, 중동공과대학, 고고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이 있다. 도로, 철도교통의 요충지이자 터키 내륙 여행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20)-터키 앙카라 한국공원

한국에도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옆에 앙카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를 실은 관광전용버스가 앙카라에 도착한 시간은 7시쯤이었고, 일행은 차에서 내려 한국공원을 방문하였다. 한국공원에 관한 설명을 듣고 한국전쟁에서 돌아가신 님들의 영혼을 위한 묵념이 있었다. 터키 앙카라 한국공원 한국공원에서 바로 Jolly hotel로 들어가 배정 받은 505호실에 짐을 옮겨놓은 다음, 그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현지 식으로 했다. 레스토랑으로부터 돌아와 샤워를 했다. 몹시 피곤하다. 그러나 오늘 있었던 여행기록을 하지 않을 수 없구나. 2005년 6월 6일 아침에는 5시에 모닝콜이 있었으며 6시에는 호텔식 아침식사가 있었다. 7시에는 전용버스에 가방을 싣고 호텔을 떠났다. 신시가 서쪽에 있는 터키의 초..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9)-터키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이런 것으로 보아 지하도시는 방어에 최선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도시의 규모는 상당히 방대하고 복잡해서 현재까지도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완전히 개방된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인구가 늘어나면서 계속해서 도시를 늘려가 지하 몇 층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지하도시는 가이드의 안내로 돌아볼 수 있는데 매우 복잡하고 미로형의 구조를 띠고 있어서 자칫 길을 잃기 쉬웠다. 때문에 가이드가 안내하는 경로 이외에는 입장할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지하도시의 각 장소들은 지금도 불을 피운 흔적이나 선반 모양의 침대들이 있어 당시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터키 기독교 박해를 피해 건설되었던 지하도시 데린쿠유 터키 기독교 박해를 피해 건설되었던 지하도시 데린쿠유약도 터키 기독교 박해를..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8)-한국의 이슬람

이 수피즘은 이슬람 신앙의 형식주의, 행위의 표면만을 보고 사람을 심판하는 이슬람법에 대한 반동에서 발전한 것으로, 이슬람교가 세계적 대종교로 발전한 것은 실은 이 수피즘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다. 반면 이슬람 사상 속에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배격하려는 자도 있다. 불교와 그리스도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생소한 이슬람교가 그 두꺼운 벽을 뚫고 한국에 전래된 것은 1955년이다. 이슬람교의 전파는 1955년 9월, 6 ?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터키 부대의 압둘 라흐만 종군 이맘(성직자를 가리킴)과 주베르코취 종군 이맘의 지도와 협조 아래 김진규와 윤두영이 선교를 시작하였다. 한국 이슬람교 협회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 윤두영과 신도 70여 명으로 서..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7)-카파도키아

이슬람교의 신(神) 알라는 다신교 시대부터 메카에서 최고신으로 숭배되어 왔는데, 마호메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신을 부정하고 오직 알라만을 유일신으로 내세웠다. 알라는 만물의 창조주이며, 이와 동등하거나 비교될 존재는 없다. 모든 피 창조물과는 엄격한 거리가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경동맥(頸動脈)보다도 더욱 가까이 있다. 알라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지만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관대하고 자애에 넘쳐 잘 용서하고, 잘 들어주고, 잘 보아준다. 알라는 진리이며 빛이며 『동도 서도 알라의 것, 어느 쪽을 향해도 알라의 얼굴은 거기에 계신다. 골고루 존재하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코란 2:11)고 한다. 알라의 계시를 모은 것을 「코란」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호메트가 말한 ..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6)-터키의 카파도키아

터키말과 한국말이 비슷한 낱말로는 터키어로 아빠는 (BABA) 바바, 사람은 (INSAN) 인산, 물은 SU(수)라고 부르며, 비누는 우리 나라 경상북도 사투리와 같은데, (SABYN) 사분 이다. 이렇게 터키말과 한국말이 같은 단어가 무려 150개가 넘는다. 즉 터키어는 한국말과 뿌리를 같이함과 동시에 중국어 한자의 영향까지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 거리를 달리고 또 달려서 화산성 응회암이 바람과 물에 의해서 부식되어 수천 개의 피라밋 형태의 장관을 이루고 있는 카파도키아로 이동하여 Yiltoli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반쯤이었다. 터키의 최고의 휴양지 안탈랴 일행이 타고 호수를 출발한 버스는 또 달렸다. 점심때가 됐다고 생각되는 지점의 호텔에 내려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코스..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5)-터키 오브룩한

터키의 오브룩한에 있는 오브룩 호수 어느 지점으로부터는 점점 침엽수는 사라지고 다시 미루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산은 산대로 나무가 많고, 넓고 넓은 들판은 들판대로 토양이 비옥해서 터키는 축복 받은 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4도시라고 하는 터키의 종교도시, 예전에 이고니온이라 불렸던 콘야는 11세기 셀주크의 수도였으며 현재는 52만 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 터키의 중요도시 중 하나란다. 지중해와 수도 앙카라로부터 250 킬로미터, 흑해로부터 500 km 떨어진 내륙 깊숙이 위치한 도시로, 해발 고도가 1000m에 달하는 고원도시이다. 터키 콘야의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오가던 대상들이 묵던 숙소인 캐러반 사라이 터키 오브룩한의 완벽한 설계와 축조 기술이 빚은 히에라폴리스 터키 콘야의 유럽과 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