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터키 여행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18)-한국의 이슬람

달리는 말(이재남) 2005. 8. 14. 12:24

이 수피즘은 이슬람 신앙의 형식주의, 행위의 표면만을 보고 사람을 심판하는 이슬람법에 대한 반동에서 발전한 것으로, 이슬람교가 세계적 대종교로 발전한 것은 실은 이 수피즘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다. 반면 이슬람 사상 속에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배격하려는 자도 있다.
불교와 그리스도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생소한 이슬람교가 그 두꺼운 벽을 뚫고 한국에 전래된 것은 1955년이다. 이슬람교의 전파는 1955년 9월, 6 ?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터키 부대의 압둘 라흐만 종군 이맘(성직자를 가리킴)과 주베르코취 종군 이맘의 지도와 협조 아래 김진규와 윤두영이 선교를 시작하였다.
한국 이슬람교 협회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 윤두영과 신도 70여 명으로 서울 동대문구 이문 동에서 시작되었다. 초창기 10여 년간에 선교 ?운영의 난관을 극복하고 65년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로 다시 발족, 67년 3월 재단법인 한국이슬람교로 인가되어 신도 7,500명의 교세를 갖게 되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터키의 카파도키아


76년 5월 현재의 용산구 한남 동에 중앙성원(中央聖院)을 건립하고(사우디아라비아 기타 6개국의 원조로), 80년 항도 부산에 제2성원, 81년 경기 광주에 제3성원, 86년에는 안양시에 제4성원과 전주시에 제5성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해외교포를 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인도네시아에 지회가 설립되고 국내의 신도 수 약 3만 4000명의 교세를 가지게 되었다. 80년 5월 대통령 최규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당시 칼리드 국왕과의 공동성명을 통하여 한국 이슬람대학 설립 공사비 일체의 제공을 확약 받았으며, 경기 용인에 13만 평의 대지를 확보하고 기공식을 가졌다.
한국의 이슬람교는 70년대의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두드러지게 교세 확장을 보였는데, 매년 중동 각지에서 무슬림이 되어 귀국한 1,700여 명의 기능근로자 신도들을 핵으로 삼아 신도 배가운동을 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이슬람교는 한국인의 유교적 전통이나, 현대의 남녀동등 사상까지의 차이점 일부일처주의의 헌법조항에 배치되는 일부다처주의 등을 비롯하여 예배의식의 용어 및 교리의 토착화 등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날 즉 6월 5일 아침 7시에는 호텔식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여 8시에는 카파도키아의 중심인 우치히사르(비둘기 계곡)를 찾아갔다. 수많은 비둘기 집으로 유명한 비둘기 골짜기(우치히사르), 그곳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저절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가지가지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이 드넓은 계곡지대에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위를 파서 집과 교회를 만들어 형성되었던 유적이 남아있고 30여 개의 석굴도시가 있는 괴뢰메계곡, 세쌍둥이 버섯모양의 피샤바계곡을 차례로 방문하여 관광하였다. 그런데 카파도키아의 참 매력은 조금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원뿔을 엎어놓은 듯한 용암층, 바위 속에 이곳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삶의 터전을 마련해두고 있는 것이다. 수백 만년 전, 활화산이었던 예르지예스산 등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인해 형성된 이곳의 지형은 오랜 세월을 걸쳐 풍화작용을 일으켜 부드럽고 쉽게 깎이는 습성을 지닌 응회암지대로 바뀌게 되었다.

                              

터키 박해를 피해 건설되었던 지하도시 데린쿠유

터키 박해를 피해 건설되었던 지하도시 데린쿠유입구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기독교 박해를 피해 건설되었던 지하도시 데린구유였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주거인구가 늘면서 그 규모는 차츰 커졌고 이들이 지하에 도시를 만들게 된 이유는 종교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도시는 맨 처음 길 잃은 양을 찾으러 동굴로 들어간 양치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현재까지 30여 개의 지하도시가 발견되었다. 현재 지하도시는 네브쉐히르에서 약 30km정도 떨어진 데린구유와 카이막클르에서 볼 수 있다.
지하도시는 지상으로 통하는 몇 개의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지상에서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며 그 출입구조차도 우물이나 동굴 같은 것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출입구 안으로는 커다란 돌문의 특수 장치가 있어 안에서는 열고 닫기가 손쉽지만 잠긴 상태에서는 밖에서 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터키 박해를 피해 건설되었던 지하도시 데린쿠유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