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의 나라, 프랑스 일주여행 105

44.사색의 해변「프롬나드 데 장글레」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과 합쳐지는 바다는 쪽빛이다. 1년 중 300일가량 햇살이 비친다는 리비에라의 지중해는 강렬하다. 니스와 칸을 품은 코트다쥐르지방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이 도시들에 반해 샤갈, 마티스가 여생을 보냈고, 해마다 5월이면 전 세계 스타들의 영화제가 열리는 칸(Cannes)으로 모여든다. 열차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가슴은 빠르게 요동친다. 니스와 칸은 여행자들에게는「본능의 도시」이다. 본능은 테제베(TGV)보다 빠르게 전이된다. 파리를 두세 번 배회할 때쯤이면 니스, 칸은 또 다른 열망이 되고 마음은 벌써 코트다쥐르행 열차에 실려 있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가 있는 해수욕장-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가 있는 해수욕장- 니스 역에서 해변..

43.프롬나드 데장글레(La Promenade des Anglais)해안도로

니스는 여러 세기 동안 중요한 항구도시였으나, 그 역사는 이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보롱 산 아래, 현대적인 항구 위쪽에 있는「테라 아마타」라는 지역에는 40만 년이나 된 선사시대주거지의 유적이 있다. 기원전 4세기, 니스는 마르세유에 정착해 살던 그리스 선원들인 포카이아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들은 이웃 식민지에 승리를 거둔 일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세운 마을에 승리라는 의미의「니카이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영국인거리)의 모습-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영국인거리)의 모습- 1세기에 로마인들이 이 땅에 왔는데, 그들은 로마의 돌까지 준비해 와서 현재 니스 북부의 이웃 도시에 해당하는 시미에즈 언덕에 온천, 경기장, 상점을 완비한 로마도시를 건설..

42.니스 중심가 진입 금지 대형트럭인데도 경찰제지 안 받아

84명의 목숨을 앗아간 니스테러범이 테러에 사용한 트럭을 몰고 사전에 십여 차례 사건현장을 답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테러범 모하마드 라후에유 부렐은 14일 테러 현장인 니스해변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진입이 금지된 트럭을 몰고 12차례나 둘러본 것으로 확인됐다고 영국 일간텔레그래프가 23일 보도했다. 부렐은 테러 사흘 전부터 19톤 트럭을 이용해 산책로를 오가며 사전에 현장을 둘러봤으나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니스중심가에는 3.5톤 이상의 대형트럭은 배달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입이 금지돼 있다. 부렐이 몬 19톤 트럭도 중심가 진입금지대상에 해당한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가 있는 해수욕장-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가 있는 해수욕장- 수사를 맡은 소..

41.7월14일에 니스해변에서 저질러진 트럭테러사건

7월14일 밤 특히 이날은 축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 테러범은 축제가 열리는 날 사람들이 많은 것을 노려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다른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트럭이 미친 듯 빠른 속도로 달려왔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트럭은 사람이 많은 곳을 골라서 지그재그로 달렸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영국인거리)의 트럭테러현장의 모습- 이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해변가로 주택과 도로가 인접한 곳이었고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불꽃놀이를 보고 있던 군중들의 일부는 자동차 안에서 일부는 집 앞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이런 참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경찰은 해당 트럭의 운전자를 실탄을..

40.T.G.V.(테제베) 고속열차 여행

새로운 날이 밝아오는 새벽 5시경 잠을 깨우는 모닝콜 전화벨이 요란스럽게도 울린다. 침대에서 일어난 필자는 고국에 남아있는 아내와 보이스톡을 통해 짧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손자 이정훈을 깨워 5시 50분에 가방을 끌고 호텔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용버스를 탔는데 이때가 아침 6시다. -파리 리옹 역의 손자- 제공하는 아침식사 도시락을 버스에서 먹으면서 리옹역을 향하여 달린다. 빵 2개와 빵에 발라 먹을 수 있는 꿀, 그리고 튀긴 치킨 한 조각, 사과 1개와 음료수 1캔이 전부였다. 그런대로 먹을 만한 아침식사를 제공한 셈이다. 리용 역 입구에 6시 35분에 도착하여 짐을 끌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리옹역은 온통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인솔자로부터 승차권을 받았는데, 18호차 2층의 113..

39.변덕이 심한 프랑스사람들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몽생미셸로부터 2km 떨어진 마을의 갤러리 겸 레스토랑- 역사적으로 프랑스국민은 미국과 캐나다에 대해 애증이 얽힌 관계를 맺고 지내고 있는데, 미국에는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고 캐나다에는 지금도 많은 프랑스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어떤 프랑스계 캐나다사람이 만든 영화를 프랑스극장에서 상영한 일이 있었단다. 그런데 이 영화는 프랑스말로 된 영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막을 함께 내보내야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프랑스 말 억양이 너무나 달라서 시청자들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인들은 오랫동안 미국인들을 칭찬해 왔다. 그 이유로는 미국헌법과 법률체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미국이 콧대 높던 대영제국을 꺾어버렸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

38.1,000년 이후에 지어진 생마르탱 지하기도실

우리가 커다란 기둥들이 있는 곳으로 계속 이동한 지하기도실은 15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며 수도원성당의 고딕식 내진을 떠받치고 있다. 이제 생마르탱 지하기도실로 이동해야한다. 1,000년 이후에 지어진 이 기도실은 수도원성당에서 본당과 내진 사이에 위치한 좌우 익부의 남쪽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몽생미셸 기둥의 독특한 설계- 이 기도실에는 거리가 자그마치 9m에 이르는 놀라운 궁륭이 있다. 생마르탱 지하 기도실에서 좁은 통로를 따라 수도사들의 묘지에서 가져온 유골을 쌓아둔 방으로 쓰였던 거대한 바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 바퀴는 수도원이 감옥으로 바꾸었던 시절 수도원에 감금된 죄수들의 양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1820년경에 설치되었다고 했다. 이 바퀴는 중세에 공사장에서 사용했던 바퀴를 모사한 것이다. ..

37.가이드와 함께한 몽생미셸 수도원

몽생미셸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여성 가이드를 수도원입구에서 만났는데, 이제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수도원의 요새화된 입구인 근위대의 방을 지나면서 소고티에(Saut Gaultier)테라스까지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오른쪽의 교회와 왼쪽에 아찔한 통로로 연결된 수도원숙소사이로 난 길을 지났다. 14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세워진 이 숙소는 수도원 원장들의 공관이었다. 서쪽 테라스는 수도원 성당의 소박한 안뜰과 18세기에 화재로 파괴된 본당의 첫 세 기둥 사이의 거리로 구성되어있다. 고전양식의 정면은 1780년에 복원된 이곳에서 서쪽으로 캉칼 바위부터 브르타뉴해안과 동쪽으로 노르망디 절벽까지 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의 해변에 뜬 작은 섬의 몽생미셸의 주변- -프..

36.성 미카엘 대천사

-몽생미셸의 독특한 내부설계- -몽생미셸의 독특한 내부설계- -몽생미셸의 독특한 내부설계- -몽생미셸의 독특한 설계- 천사군단의 수장인 성 미카엘은 중세의 종교적 감수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 미카엘은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에 악마의 상징인 용과 맞서 싸워 무찌르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몽생미셸 성당내부- 내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던 중세 인들에게 성 미카엘은 최후의 심판 일에 죽은 자를 인도하고 인간의 영혼을 저울에 다는 인물이다. 성 미카엘에 대한 숭배는 4세기 이래 동양에 널리 퍼졌으나 서양에는 492년 이탈리아의 몬테 가르가노에 최초의 성소가 건립되면서 5세기 말에 와서야 등장하게 된다. 1,000년경에 성 미카엘을 기리는 교회와 예배당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주..

35.『몽생미셸』수도원의 독특한 설계

몽생미셸수도원은 다른 수도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된 독특한 기념물이다. 중세의 시공자들은 바위산의 피라미드 형태를 고려하여 화강암 바위주변에 건물을 세웠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수도원성당은 높이가 80m에 이르는 성당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지하 동굴상단에 세워졌다. -몽생미셸은 프랑스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여행지로서 미카엘 대천사의 명령을 받아 지어진 바위섬 꼭대기의 신비로운 성이다. 이 성의 2km 전방에서 걸어가든지 아니면 마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으며 또 다른 방법은 전기로 운용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성 전경 앞에선 필자를 카메라에 담았다- 흔히 수도원건축의 백미라고 하는 라메르베유 건물은 13세기 건축가들이 바위산의 경사면에 3개의 층으로 된 건물 2채를 세울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