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의 나라, 프랑스 일주여행

38.1,000년 이후에 지어진 생마르탱 지하기도실

달리는 말(이재남) 2021. 12. 2. 06:54

우리가 커다란 기둥들이 있는 곳으로 계속 이동한 지하기도실은 15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며 수도원성당의 고딕식 내진을 떠받치고 있다. 이제 생마르탱 지하기도실로 이동해야한다. 1,000년 이후에 지어진 이 기도실은 수도원성당에서 본당과 내진 사이에 위치한 좌우 익부의 남쪽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몽생미셸 기둥의 독특한 설계-

 

이 기도실에는 거리가 자그마치 9m에 이르는 놀라운 궁륭이 있다. 생마르탱 지하 기도실에서 좁은 통로를 따라 수도사들의 묘지에서 가져온 유골을 쌓아둔 방으로 쓰였던 거대한 바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 바퀴는 수도원이 감옥으 바꾸었던 시절 수도원에 감금된 죄수들의 양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1820년경에 설치되었다고 했다.

이 바퀴는 중세에 공사장에서 사용했던 바퀴를 모사한 것이다. 생테티엔 예배당은 19세기 초에 붕괴된 의무실과 수도사들의 유골안치소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죽은 자들을 위한 예배실로 사용되었다. 이제 서쪽 테라스 아래에 있는 북남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몽생미셸의 수도사들의 유골안치소-

 

이곳은 로마네스크양식의 수도원에서 교통의 주요 축으로 2개의 본당과 긴 방이 있는 산책장을 향하고 있다. 산책장을 지은 건축가들은 첨두형 교차부 위에 궁륭을 올려놓을 생각을 했다. 이런 혁신적인 생각은 12세기 초에 고딕양식의 태동을 알리고 있다. 기사의 방으로 들어섰더니 라메르베유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회랑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라메르베유는 수도사들의 작업실이자 연구실이었다. 이들이 남긴 지적작업과 원고는 아브랑슈에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단다. 순례자의 방아래 첫 번째 층에 세워진 사제관을 끝으로 라메르베유 방문을 마치기로 한다.

 

-수도원의 기도실과 순례자의 방아래 첫 번째 층에 세워진 사제관-

-몽생미셸로 오르내리는 입구-

 

수도사들은 바로 이곳에서 다양한 형편의 불우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맞이했단다. 몽생미셸 입구에서 몽생미셸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여성가이드를 만났었다. 이쯤에서 몽생미셸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 영어가이드와 해어질 때가 되었다. 물론 영어로 설명하는 내용을 유럽전문 인솔자 강기영 씨가 통역을 해주었다.

본인이 시인한 것처럼 전문용어에는 미흡한 점이 있어 일행 가운데 영어에 능통한 몇 분이 통역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녀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수도원 입구로 내려왔다. 필자일행은 몽생미셸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탔다.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버스 안의 사람들은 너무 비좁은 틈바구니에서 겨우 숨만 헐떡거리며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몽생미셸로 들어가기 2km전 마을에서 이 전용버스를 타야하며 탑승료는 무료다 특이하게도 이 버스는 앞뒤구분이 없다..왜냐하면 유턴을 할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이란다. 버스내부의 모습이다

-몽생미셸 2km 밖 마을의 텔레스토랑(필자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10분 동안은 숨이 막히는 시간이었으나 셔틀버스는 몽생미셸로부터 2km 떨어진 마을에 우리를 내려주고 떠나고, 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마침 점심식사를 해야 할 때가 됐다. 버스에서 내려 가까운 레스토랑을 찾아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오후 1시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전용버스를 탈 당시의 시간은 오후 1시를 조금 넘겼었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예정했던 시간보다도 훨씬 더 소요된 오후 750분경에야 파리로 귀환한다.

물론 중간에 20, 30분 두 번이나 휴식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구입하여 손자와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파리의 번화가에 있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특별요리인 달팽이 요리를 비롯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첫날 묵었던 호텔의 168호실에 투숙한 시간은 10시경이었으나 샤워를 하랴 전자제품의 충전을 하랴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아들과 통화를 했더니 11시에 가까운 시간이 돼간다. 이제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하련다.

 

-몽생미셸 2km 밖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