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의 나라, 프랑스 일주여행

43.프롬나드 데장글레(La Promenade des Anglais)해안도로

달리는 말(이재남) 2021. 12. 17. 07:01

니스는 여러 세기 동안 중요한 항구도시였으나, 그 역사는 이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보롱 산 아래, 현대적인 항구 위쪽에 있는테라 아마타라는 지역에는 40만 년이나 된 선사시대주거지의 유적이 있다. 기원전 4세기, 니스는 마르세유에 정착해 살던 그리스 선원들인 포카이아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들은 이웃 식민지에 승리를 거둔 일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세운 마을에 승리라는 의미의니카이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영국인거리)의 모습-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영국인거리)의 모습-

 

1세기에 로마인들이 이 땅에 왔는데, 그들은 로마의 돌까지 준비해 와서 현재 니스 북부의 이웃 도시에 해당하는 시미에즈 언덕에 온천, 경기장, 상점을 완비한 로마도시를 건설했다. 사실 그 긴 역사 동안 여러 민족이 니스를 소유하고 점령해 왔던 것이다. 1814년부터 1860년까지 니스는 이탈리아 땅,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르디니아 왕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1860년 이탈리아가 재통합하면서 니스는 마지막으로 프랑스 땅이 되었다. 사람들은 항상 니스해안의 아름다움과 온화한 기후에 매혹되어, 18세기 후반부터는 북부의 나쁜 기후를 피해 온 영국인 정착촌이 니스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인들이 니스에 와서 이곳 해변가를 따라 펼쳐진 경치를 즐기며 겨울을 보내기 시작했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가 있는 해수욕장-

 

1820년 유럽북부에 매서운 겨울이 닥쳐 걸인들이 니스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영국인들이 이들에게 도움이 될 계획을 구상했는데, 바로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 (chemin de promenade)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건설 자금은 영국의 사업가였던 루이스 웨이가 마련해 주었다. 1820, 특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자 많은 걸인들이 니스에 왔으며, 루이스 웨이 목사가 이끌던 영국인들은 집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추진안, 즉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만()의 굴곡을 따라 산책로가 만들어졌으며, 지역주민들은 곧 이 길에 니스 방언으로카민 데이 앙글레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쾌적한 산책로 조망에 큰 흥미를 보인 니스 시는 산책로 공사의 범위를 대폭 늘렸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산책로를 두고 니스 사람들은 지역 사투리인 니사르말로, 영국인의 길이라는 뜻의카민 데이 앙글레스 (Camin deis Anglés)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지주민들은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간단하게프롬나드라고 부르거나 더 짧게 라 프롱 (La Prom)이라고 부른다. 일요일이 되면 자전거, 유모차, 온 가족들이 산책로를 따라 행렬을 이룬다. 스케이트보드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도 선호하는 장소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영국인거리) 풍경-

 

프롬나드 데 장글레에는 푸른 의자와 오두막집이 늘어서 있어 지중해를 따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앙제 만의 하늘색 물빛을 보며 사색에 잠기기에 적합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또 니스카니발이나 꽃 장식퍼레이드 등 수많은 축제와 행사가 이곳 산책로를 따라 열리기도 한다.

201372일에는 2013년 투르 드 프랑스의 팀 타임 트라이얼 레이스 종목이 열리기도 했다. 1860년 니스가 프랑스에 병합되자 이 이름은 영국인들의 산책로라는 의미의라 프롬나드 데 장글레라는 프랑스식 이름이 되었다. 니스 시는 원래 너비가 1.9m이었던 길을 확장하고 넓혔으므로, 이 길은 현재 꽃밭과 야자나무로 구획이 지어진 두 줄의 넓은 찻길이 되었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가 있는 해수욕장-

-니스의 프롬나드 데장글레 해안도로가 있는 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