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호이안.후에 15

16.자연 절경 중 하나인 하이반 고개

자연 절경 중 하나인 하이반 고개 식사를 마치고 12시 35분에 출발, 다낭을 향하여 한참을 달려 하이반 고개에 가까워지니 안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후에를 향하여 하이반 고개(Hai Van Pass)를 넘을 때 안개가 심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없어서 아쉬움을 남겼고, 다낭으로 돌아갈 때는 볼 기회가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오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중 하나인 하이반 고개는 베트남에서 가장 높고 긴 고갯길이다. 남과 북으로 이어진 고속도로가 이 고개를 통과해 20km가량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이 도로는 투안 호아와 쾅남주의 주 경계이다. 또 지리적으로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구분할 뿐만 아니라 기후적으로도 경계가 된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바다까지 이어진..

14.후에 성(城)과 황궁

후에 성(城)과 황궁 응우엔 왕조의 왕궁은 후에 중심부를 흐르는 퍼품강(Perfume River)북쪽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1800년대 초에 지어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주로 응우엔 왕조 황제들의 궁으로 사용되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에 비할만한 규모는 못되지만 거의 비슷하면서 아기자기한 구조로 지어졌다. 이곳은 후에의 다른 많은 유적지들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외성과 내성 사이에는 해자가 있고 출입문만 해도 10개나 되는 황궁이다. 황궁으로 통하는 문 가운데 오문(午門)과 평화문은 황족이나 고위관료, 동문은 문신, 서문은 무신, 남문은 하위 관리들이 드나들었다. -후에의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황궁- 궁 바로 앞의 다리를 통과하면 들어가는 문이 있다. 성..

13.카이딘 왕릉

카이딘 왕릉 투득왕릉을 나와 카이딘 황제(1916~1925년)왕릉으로 향하였다. 원영록씨와 명함을 교환하고 해어지려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필자일행이 버스를 타고 카이딘 왕릉에 도착했는데 이곳의 설명도 원영록 씨가 맡아서 해주었다. 응우엔 왕조, 천황인 카이딘의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 이 왕릉은 유럽식의 건축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왕릉이란다. 베트남과 유럽양식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는 왕릉입구는 유럽고딕양식으로 1920~1931년, 12년에 걸쳐 완성하였다니까 왕이 되자마자 건설하기 시작한 무덤으로 통치기간 내내 자신의 무덤만 신경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된다. 유럽문화를 좋아하고 받아들였던 카이딘 황제라서 그런지 입구를 지키는 석..

12.투득황제의 왕릉

투득황제의 왕릉 후에 남쪽으로 흐르는 흐잉강을 따라 응우엔 왕조를 통치한 13명의 황제가운데 8명의 황제의 무덤이 후에에 있다. 8개의 무덤은 저마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기법을 사용하여 지어졌다. 그런데 각기 다른 무덤을 만들 때 다섯 가지의 공통점이 적용됐다고 한다. 그 다섯 가지 가운데 첫 번째는 대리석판에 황제의 공적을 적어 중심부를 구성하였으며 선왕이 남긴 유서가 있어야 한다. 그 두 번째는 황제를 그리는 사당이 있어야하고 황제의 관이 위치한 사당의 앞쪽에는 황제가 좋아했던 기호식품을 바칠 수 있는 제단이 있어야 한다. 그 셋째로는 왕의 유체가 안치된 무덤이 있어야 한다. 그 넷째로는 무덤 앞마당에는 코끼리, 말, 무관, 문관 등의 동상이 있어야 한다. 그 다섯 번째로는 재스민과 소나무로 둘러싸인 ..

11. 하이반 고개를 넘어 찾아간 후에

하이반 고개를 넘어 찾아간 후에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S자 모양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는 베트남은 서북쪽에서 동남쪽까지 최대길이는 약 1,650km이고, 동서의 최대 너비는 북부 550km, 남부 340km 정도이다. 지도의 모습을 보면 거꾸로 서있는 용의 모습에 비유된다. 이렇게 남과 북이 긴 나라, 그래서인지 각 지방마다 특산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시장에서 만나는 베트남의 음식문화가 베트남을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해준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다낭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베트남식 전통 러우 전문식당인「퍼비엔」으로 들어섰다. 자연산 버섯과 신선한 야채 그리고 면, 해산물을 넣고 끓여 먹는 일본식 샤브샤브, 태국식 수키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러우 보다는 찹쌀밥에 김치를 더욱 맛있게 먹고 후에를 향하..

10.다낭의 대성당과 카오다이 사원

다낭의 대성당과 카오다이 사원 다낭의 대성당은 1923년 프랑스인들이 세운 천주교 성당으로 오랜 세월동안 전쟁의 기나긴 풍파를 함께한 다낭의 상징물로 여겨지는 가톨릭성당이다. 분홍빛의 성당 건물로 맨 위에 위치한 십자가에는 프랑스의 국조인 수탉의 조형물이 있으며 중세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유리창이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곳이다. 은은한 분홍색 색채와 중세 유럽풍의 장식이 잘 어우러져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분홍색 외관 덕분에 멀리서도 눈에 잘 뜨인다. 필자 일행보다 앞서 안으로 들어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건물 밖에서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카오다이 사원을 향하여 버스를 타고 달린다. 도착한 카오다이 사원은 동양적인 색감과 기..

15.팃꽝득 스님의 티엔무 사원

팃꽝득 스님의 티엔무 사원 향강 언덕에 우뚝 솟은 티엔무 사원도 둘러볼만하다. 후에에서 가장 큰 사원이자 도시의 상징이다. 월남전 때 불교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호치민으로 내려와 세계 최초 소신공양하여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스님이 되셨는데, 이 분이 팃꽝득 스님이시다. 이 스님은 생활하고 계시던 사찰 티엔무 사원을 떠나 무려 19시간 동안 승용차를 운전하여 월남의 사이공 대통령궁전 앞에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소신공양을 함으로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로써 월남의 패망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는 티엔무 사원을 필자부부와 인천에 여행을 온 2명의 여성과 월남인 가이드 Lam이 함께했다. 월남 사이공대통령 궁전 앞에서 소신공양을 함으로 유명해진 팃꽝득 스님의 티엔무 사원 사원은 ..

9.다낭의 마블마운틴

다낭의 마블마운틴 베트남 다낭은 필자에게는 생소한 관광지로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운 경치와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일상생활의 힐링이 되어줄 곳이다. 베트남의 수도 호치민과 하노이에 이어 제 3도시로 자리 잡은 다낭은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도시이다. 다낭의 도심을 흐르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동부 남중국해에 면한 선짜반도와 시가지로 구분된다. 다낭 시내에는 참파의 유물을 보존하는 참 박물관과 함께 석조물 300여점이 남아있다. 참파 박물관은 1915년 프랑스의 학술조사단이 프랑스인의 집을 개조하여 만든 박물관으로 세련되면서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유물이 전시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2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중부 베트남에서 번영하던 참족의 예술품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으며 총 2천 여 점의 참..

8.(목공예, 도자기) 마을, 그리고 호이안의 야간투어

(목공예, 도자기) 마을, 그리고 호이안의 야간투어 다리를 지나 쩐가 사당과 광조회관을 관람하고 여유 있게 해변에 있는 시장통을 지나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사탕수수를 짜서 만드는 사탕수수 주스를 사서 마시고 있으려니 필자가 탑승할 배가 일행을 향하여 다가온다. 황토 빛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낌봉 마을을 향해 10여분의 항해 끝에 목공예마을에 도착하여 구경할 수 있게 된다. 이 낌봉 마을은 주로 목공예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꼭 마음에 드는 작품은 없었지만 만일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한다 해도 배로 1개월 이상 걸려야 받아볼 수 있다. 정말 열심히 심각한 모습으로 작품을 다듬고 있는 장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대나무로 만든 작품들도 눈에 뜨이고 마을 안 길거리에는 파파야나무가 탐스럽게 열매를..

7.『쩐푸 거리』의 재래시장과 광조회관

『쩐푸 거리』의 재래시장과 광조회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베트남중부의 작은 도시 호이안에 발을 내디디면 낮잠을 즐기던 수십 대의 시클로가 앞 다퉈 손님을 싣고 달린다. 프랑스의 자전거와 일본의 인력거가 합쳐져 탄생한 시클로에 앉아 좁은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면 수백 년 전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무려 844채의 고가(古家)로 이루어진 올드 타운은 참파 왕국과 응웬 왕국 이래 중국·인도·아랍을 연결하는 중계무역도시로 번성했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땐 격렬한 전투로 도시일부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곳이다. 마을 전체가 마치 영화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호이안의 고가는 재래시장에서 내원교를 잇는 약 800m의 쩐푸 거리에 밀집돼 있다. 미술품과 골동품으로 화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