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딘 왕릉
투득왕릉을 나와 카이딘 황제(1916~1925년)왕릉으로 향하였다. 원영록씨와 명함을 교환하고 해어지려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필자일행이 버스를 타고 카이딘 왕릉에 도착했는데 이곳의 설명도 원영록 씨가 맡아서 해주었다. 응우엔 왕조, 천황인 카이딘의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 이 왕릉은 유럽식의 건축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왕릉이란다.
베트남과 유럽양식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는 왕릉입구는 유럽고딕양식으로 1920~1931년, 12년에 걸쳐 완성하였다니까 왕이 되자마자 건설하기 시작한 무덤으로 통치기간 내내 자신의 무덤만 신경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된다.
유럽문화를 좋아하고 받아들였던 카이딘 황제라서 그런지 입구를 지키는 석상들도 그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상을 지나 카이딘 황제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그는 프랑스 식민지시절에 프랑스의 힘을 업고 국고를 탕진하여 국민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으나 비석은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단장돼있다.
비석을 지나니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보이고 이곳 제단도 무덤도 궁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지어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벽과 천장은 온통 화려한 도자기로 모자이크 되어있다. 제단 뒤쪽으로 청동에 금박을 입힌 1톤 무게의 카이딘 황제상이 떡 자리 잡고 있으며 황제상 밑으로 황제의 유체가 안치되어 있다.
한쪽에는 카이딘 황제의 동상이 서있고, 동상 주변에는 카이딘 황제의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되어있다. 다른 유적지에 비해 보존도 잘 돼있고 국민들의 힘들어 했던 그 시절에 사치만 충족시켰다는 그의 화려함은 대단했었나보다. 왕릉의 설명이 모두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12시 30분이 넘어가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려고「안폭 레스토랑」으로 달려간다. 후에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자거리의 중심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마치 왕궁의 부속건물 같은 느낌의 레스토랑이다. 단순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지는 실내장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릇에서부터 요리솜씨가 정교한 공예작품을 보는 듯하다.
베트남식 돼지고기 꼬치구이와 베트남식 월남 쌈요리와 게살스프 요리로 유명하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시장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후에의 재래시장인 동박시장으로 달려갔다. 이곳의 큰 재래시장은 어설프게 보이기는 했으나 이 나라사람들의 삶의 모습의 한편을 보는 느낌이 든다.
필자는 망고스텐 2kg을 한국 돈으로 4천원에 구입하고 밖으로 나와 후에 황궁을 향해 달려왔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의 황궁은 엄청나게 넓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공습으로 거의 소실되고 지금은 세계 유네스코에서 복원비용을 지원하며 2020년까지 복원을 계획하고 있단다.
물론 일부는 이미 복원이 돼있다. 이 황궁은 49세의「레 웨이 퐁씨」가 가이드를 맡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본인을 소개해주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생겼다. 함께 설명을 듣던 일행 10명 가운데 8명은 전용버스에 들어가 기다리겠다고 황궁 밖으로 나가고 필자부부만이 남아「레 웨이 퐁씨」의 설명을 들으며 그와 함께했다.
베트남 후에 투득황제 왕릉 안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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