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성(城)과 황궁
응우엔 왕조의 왕궁은 후에 중심부를 흐르는 퍼품강(Perfume River)북쪽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1800년대 초에 지어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주로 응우엔 왕조 황제들의 궁으로 사용되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에 비할만한 규모는 못되지만 거의 비슷하면서 아기자기한 구조로 지어졌다.
이곳은 후에의 다른 많은 유적지들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외성과 내성 사이에는 해자가 있고 출입문만 해도 10개나 되는 황궁이다. 황궁으로 통하는 문 가운데 오문(午門)과 평화문은 황족이나 고위관료, 동문은 문신, 서문은 무신, 남문은 하위 관리들이 드나들었다.
-후에의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황궁-
궁 바로 앞의 다리를 통과하면 들어가는 문이 있다. 성의 남쪽에 위치한 오문이 정문이고, 이 중에도 중앙의 통로는 황제 전용통로로 사용되었다하며 현재의 방문객들은 양 옆의 통로로 드나들고 있다. 궁 안으로 들어가니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만든 태화전이 나오며 이곳 태화전은 황제가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던 아주 멋진 건물이다.
-후에의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황궁
또 성 내부에는 황제들에게 바쳐진 큰 항아리들과 황제들이 생활하던 궁터, 작은 박물관 등 볼거리들이 많다. 몇 차례의 전쟁 때문에 내부의 수많은 시설물들이 폐허가 된 상태이고 지금은 조금씩 복원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태화전에는 80개의 기둥이 있는데, 큰 나무기둥 2개를 제외한 파괴된 기둥을 모두 콘크리트 기둥으로 복원하였다.
우리나라 창경궁에 세워져있는 품계석처럼 태화전의 품계석은 뺏고 빼앗기는 전쟁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파괴되고 망가져 석회로 땜질해 놓은 모습도 보인다. 청동세발 향로는 건립당시에 국가의 통일과 왕조가 잘 안정되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후에의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황궁-
향로의 옆에 새겨진 무늬들은 길조로 여겨지는 동물과 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징물들을 정교하게 새겨놓았는데, 이것만으로도 10세기 베트남의 발달된 이 나라의 기술을 잘 알 수 있는 귀중한 보물이다. 저 멀리 후에 깃발 탑(Hue Flag Tower)에 펄럭이는 베트남의 기가 보인다. 탑의 높이는 37m에 이르며 베트남의 최고 높이의 깃발 탑이다. 응우엔 왕조의 왕궁이 지어지고 있던 1809년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이후 여러 차례 파괴된 것을 복구하던 중 1949년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3층 형식으로 된 17m 높이의 대좌건물이 깃발 탑의 아랫부분이고 이 대좌건물의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깃발 탑 앞에는 넓은 들판의 공간이 있고 사방으로 돌담을 낀 담들이 있어 산책로로 좋아 보인다. 깃발 탑과 왕궁 사이에는 큰 광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조명을 켜 놓으면 야경이 매우 아름다워 후에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된단다.
황궁 입구 쪽에는 황궁을 지키려고 애쓰던 군사들의 무기를 녹인 무게 10톤의 청동대포가 놓여있다. 베트남이 통일되고 난 후,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이 대포는 그 장식이 섬세한 세공으로 만들어져 아름답게 보인다.
-후에의 황궁입구 베트남이 통일되고 난 후,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기원하며 만든 대포-
왕족이 거주하던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그렇게 부르던 후에 왕궁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옥쇄의 한 종류라는 큰 옥쇄탑이 보이고 화재방지용 물을 담아놓았던 거대한 그릇의 옆 문양은 현대적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왕궁박물관에는 황제와 황후, 황세자들이 입었던 옷들이 진열되어 있고 마지막 황제의 생활상을 사진으로 찍어 걸어놓았다. 30년에 걸쳐 건설된 왕궁은 베트콩과 미군이 번갈아 점령하며 집중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 파괴되어 황제와 황후가 생활하던 거처는 모두 파괴되어 그 터만 남아있다. 황실극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극장은 1826년에 건립되어 전통극 공연에 사용되었다는 오페라극장이다. 최초에는 목재로 지었으나 카이딘 황제 때 다시 건립하여 음악대학과 미술대학이 이곳에 있으며 1995~1998년에 복구되었다. 2층에는 관람석이 있고 꽤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황실극장을 조금 지나 세묘(世墓)라는 건축물을 만났다.
우리나라 종묘처럼 세묘에는 초대왕 부터 위패가 모셔져 있고 아직도 대가족제도인 베트남은 우리나라 사람처럼 조상을 숭배하고 있어 가장 먼저 그리고 화려하게 복구한 곳이 세묘란다. 황궁은 넓다. 2시간가량 황궁전체를 돌아다니며 설명을 들으며 중요한 장소에서는 카메라에 피사체를 담았다.
-후에의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황궁에서 사용하던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악사들-
어떤 곳에서는 황궁에서 사용하던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악사들과 만나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마지막 왕조의 황궁을 한 바퀴 돌아 황궁 입구에 세워놓은 엄청나게 큰 대포를 배경으로 한 기념촬영을 끝으로 필자부부를 기다리고 있는 전용버스 앞에서 가이드(레 웨이 퐁씨)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이곳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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