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호이안.후에

7.『쩐푸 거리』의 재래시장과 광조회관

달리는 말(이재남) 2019. 10. 9. 18:44

쩐푸 거리의 재래시장과 광조회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베트남중부의 작은 도시 호이안에 발을 내디디면 낮잠을 즐기던 수십 대의 시클로가 앞 다퉈 손님을 싣고 달린다. 프랑스의 자전거와 일본의 인력거가 합쳐져 탄생한 시클로에 앉아 좁은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면 수백 년 전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무려 844채의 고가(古家)로 이루어진 올드 타운은 참파 왕국과 응웬 왕국 이래 중국·인도·아랍을 연결하는 중계무역도시로 번성했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땐 격렬한 전투로 도시일부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곳이다. 마을 전체가 마치 영화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호이안의 고가는 재래시장에서 내원교를 잇는 약 800m의 쩐푸 거리에 밀집돼 있다. 미술품과 골동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간판과 고가들의 유혹에 넋을 잃은 관광객들은 보물창고 안을 기웃거리고 하얀색 아오자이 차림의 베트남여학생들은 필자와 같은 나그네들을 신기한 듯 흘끔흘끔 바라본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 앞에 위치한 재래시장은 베트남여인들의 억척이 오롯이 배어나는 삶의 터전이다. 아오자이를 걸치고 원뿔형의 논(non)을 머리에 쓴 베트남여인들은 비록 어눌하기는 하지만 영어로 호객을 하고, 오토바이와 자전거에 산더미처럼 물건을 실은 여인들이 투본강의 선착장과 재래시장을 시계추처럼 바삐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색창연한 쩐푸 거리는 중국 색채가 짙다. 1617세기 일본 무역상들이 거주하던 일본인 마을이외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쇠퇴하면서 화교들이 대거 이주해 온 때문이란다. 화교들의 향우회 장소로 이용되는 광조회관은 대표적인 중국식 건물이다.

복건회관 옆에 위치한바다의 실크로드 박물관은 침몰선에서 인양한 동서양의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300년 전에 지어진 꾸언탕가()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민가로 베트남통일이후에 획일적으로 건축된 집들과 비슷해 보인다.

쩐푸 거리 북쪽에 위치한 판쭈찐 거리와 남쪽의 응우엔타이혹 거리는 종일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분주하다. 이곳의 양복점이나 양장점에서 아침에 옷을 맞추면 저녁 무렵 근사한 옷이 완성된다. 베트남인들의 손재주가 돋보이는데다 가격도 엄청나게 싼 편이라 관광객들의 쇼핑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전깃줄을 비롯한 온갖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사물들이 어둠 속에 묻히면 레스토랑과 카페, 호텔로 변신한 고가들은 형형색색의 등을 밝히는 등 중세풍의 호이안 거리는 밤마다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투본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박당 거리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쩐푸 거리로 대표되는 호이안에서 만나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는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내부는 베트남 건축양식이면서도 외부는 화려한 프랑스풍의 고가들, 핫팬츠차림의 서양여대생과 아오자이를 걸친 베트남노파, 신형 일제 오토바이와 녹슨 저전거가 함께 어울려도 호이안은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극과 극을 조화시켜 독특한 문화를 창조한 호이안 사람들의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베트남여인들의 운반수단인 까인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남지도를 닮은 무거운 까인을 숙명처럼 어깨에 메고도 전혀 앞뒤로 기울지 않는 베트남여인들의 균형 감각이 호이안 문화의 원동력으로 승화한 느낌이다. 호텔과 식당, , 오래된 집과 그림가게, 기념품가게, 옷가게 등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중국·일본·프랑스 건축양식이 혼재된 고풍스러운 건물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가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뱃사공들이 한가롭다. “연인과 함께 배를 타고 투본강을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베트남 호이안의 unesco 세계문화유산, 광조회관과 쩐가사당

베트남 호이안의 unesco 세계문화유산, 광조회관과 쩐가사당

베트남 호이안의 unesco 세계문화유산, 광조회관과 쩐가사당

베트남 호이안의 재래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