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10

69.바이킹의 역사『더블리니아 박물관』

바이킹의 역사『더블리니아 박물관』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과 연결된 더블리니아(Dublinia)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역사이자 바이킹의 역사를 다룬 박물관이다. 더블리니아는 그냥 관람만 하는 그런 시시한 박물관이 아니라 바이킹이 이용하던 갑옷과 투구, 무기들을 직접 입어보고 만져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그 외에도 멋진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과 인접하여 입장권 한 장으로 바이킹역사와 더블린건축물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최근에 영화로 나와 우리가 잘 아는 오딘과 오딘의 아들 토르는 북유럽신화 중 일부이자 바이킹의 종교였다. 항상 바다를 항해하는 바이킹에게 신의 존재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더블린에 정착을 하고 가톨릭교의 전파에 따라 점점 약하게 되었다. 더블린의「더블리니아 박물관」은 바이킹이 아일랜드..

67.더블린의 이모저모

더블린의 이모저모 영화『원스』의 촬영지로 유명한 아일랜드 더블린은 술과 책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이야기할 때는 술, 문학, 음악 이 세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 국내 최고 뮤지션들이 아일랜드에서 버스 킹을 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그래프톤 스트리트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일랜드 더블린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아일랜드 여행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음악을 사랑하는 국민성 때문인지 거리를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음악이 연주되어 도시를 가득 채운다. 더블린에서 버스 킹들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그래프톤 거리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버스 킹 하는 사람들을 ..

66.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Nassau 스트리트는 트리니티대학교 남쪽 끝을 따라있고, 강남의 쇼핑가인 Grafton 스트리트는 보행자전용거리이다. 아일랜드 남쪽의 리피 강 남북으로 도시가 위치해 있으며 아일랜드 해(Irish Sea)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영국 잉글랜드의 리버풀이 있다. 아일랜드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1 이 더블린과 그 근교에 살 정도로 아일랜드 최대의 도시이다. 언제부터 더블린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대체로 아일랜드의 선주민인 켈트인들이 천 년 전부터 살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그래프턴 스트리트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그래프턴 스트리트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지에 에브라나라고 언급된 곳이 ..

65.빈부가 혼재하는 도시, 더블린(Dublin)

빈부가 혼재하는 도시, 더블린(Dublin) 여행을 시작한지 엿새째를 맞이하는 날 새벽 3시에 스마트폰 전화벨소리에 잠을 깼다. 절친 이금노로부터 걸려온 전화여서 카카오 톡으로 전화를 다시 걸어 통화를 시작한 친구와의 통화는 길어지고 그래서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아내와 통화를 시작으로 또 다른 친구들과도 통화를 했다. 그리고 궁금해 할 친구와 친지들에게 카카오 톡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여행소식을 전하면서 어느덧 시간은 6시 30분을 넘기고 있다. 7시부터 아침식사가 가능하다고 했기에 G층의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이미 구 베드로 형제님부부가 식사를 하고 계셔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기네스 맥주 양조장(Guinness Brewery)을 방문한 필자- -아일랜드..

64.간략한 아일랜드의 역사

간략한 아일랜드의 역사 아일랜드에는 약 7,000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6세기경 라틴문명의 켈트족(Celts)이 침략하여 아일랜드 섬나라에 문화·언어적 통합을 이루었고 5세기에는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하지만 9세기경부터 바이킹의 침입과 약탈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2세기 중엽부터 영국이 아일랜드를 침입하여 지배하기 시작했다. 1801년 영국은 아일랜드를 합병하여 아일랜드를 영국연방국에 귀속시켰다. 1916년 부활절을 기해 아일랜드 의용군(Irish Volunteers)과 아일랜드민병대(Irish Citizen Army)는 영국통치에 대한 무력봉기를 시도하였다. 그렇지만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6일 만에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봉기 주도자 1..

63.거대한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곳, 자이언트 코즈웨이

거대한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곳, 자이언트 코즈웨이 벨파스트 시청의 구경을 마친 필자는 거대한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자이언트 코즈웨이를 향하여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 20분경이다. 제주도나 울산 앞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가 늘어선 해변이다. 그 규모가 매우 장대해서 주상절리 옆에 선 사람의 모습은 왜소해 보일 정도다. 주상절리의 높이만 높은 것이 아니라 상당히 긴 구간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데, 이곳 섬 자체가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므로 섬 곳곳에는 과거의 강력했던 화산폭발의 증거들이 남아있다. 이곳도 그 증거들의 하나로 6각기둥의 각이 매우 선명하게 잡혀있으며 주상절리가 계단처럼 이어진 것도 이곳 주상절리만의 특징이다. 영국에서 조금만 왼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멋진 자연을 가득 담은 아일랜드가 있다..

62.현재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상황

현재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상황 현재 상황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아일랜드 분쟁의 주요행위자는 ① 북아일랜드 신교도 연합주의자들과 ② 북아일랜드 가톨릭신자 민족주의자들 ③ 영국 정부 ④ 아일랜드 정부이다. 연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연합은 북아일랜드와 영국정부의 연합이고, 민족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정부가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주도, 벨파스트의 타이타닉 박물관 북아일랜드의 주도, 벨파스트의 타이타닉 박물관의 구조용 보트 즉, 북아일랜드 분쟁은 영국·아일랜드 간의 분쟁과 북아일랜드 내부 연합주의자(영국 편향)·민족주의자(아일랜드 편향) 간의 분쟁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분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난 30여 년에 걸친 IRA 무장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3..

61.북아일랜드 분쟁 개요

북아일랜드 분쟁 개요 런던데리폭력사태로 시작된 북아일랜드의 분쟁은 1972년 영국정부의 북아일랜드 의회해산, 대 북아일랜드군대파견 및 직접통치로의 전환 등으로 더욱 심화되었는데, 내재되어 있던 북아일랜드가톨릭신자들의 불만과 반영감정은 1972년 1월 30일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는 유혈폭력사태로 터져 나왔다. 북아일랜드 신교계 얼스터 의용군(Ulster Volunteer Force; UVF)과 IRA의 무장투쟁은 격렬했으며, 1972년 1년 동안의 테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는 468명에 이른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영국은 아일랜드정부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게 되었다. 북아일랜드의 주도, 벨파스트시청사 이는 1981년 투옥된 IRA 죄수들이 정치범 처우개선..

60.북아일랜드 분쟁

북아일랜드 분쟁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섬 전체의 16%에 해당하는 크기다. 북아일랜드는 현재 영연방의 한 지역에 속하며, 2004년 기준인구는 약 170만 명이다. 아일랜드(에이레)는 70.273㎢의 면적에 489만 명(2015년 기준)의 인구가 거주하는 섬으로, 아일랜드 고유어인 게일어와 영어가 공용어로 쓰인다. 주민의 88%가 가톨릭신자로, 이와 같은 종교적배경은 아일랜드분쟁의 핵심요소로 작용해왔다. 현재 아일랜드인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민족은 기원전 5세기경 이주한 켈트계로, 기원전 58년 시작된 카이사르의 침공을 통해 로마인의 압박을 받은 이후로 9세기 노르만족, 12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을 꾸준히 받아왔다. 대륙의 켈트인들은 로마압제에 굴복하여 상당히 동화되었으나,..

59.벨파스트 시청(Belfast City Hall)

벨파스트 시청(Belfast City Hall) 벨파스트시청은 벨파스트 시내중심 도네갈(Donegal)광장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정면이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시내중심가의 상업지역과 업무지역을 효과적으로 구분 짓고 있다. 1898년 착공하였으며 건축가 알프레드 토머스(Alfred Brumwell Thomas, 1868~1948)의 감독 하에 1906년 완공하였다. 북아일랜드의 주도, 벨파스트의 시청 건물외관은 포틀랜드석(石)을 사용하여 고전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었는데,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탑을, 중앙에는 놋쇠로 된 높이 53m의 돔을 설치하였다. 건물내부에는 별도의 문, 포르트 코쉐르(Porte-Cochère), 큰 출입구(Grand Entrance), 큰 계단(Grand Staircase), 리셉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