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Nassau 스트리트는 트리니티대학교 남쪽 끝을 따라있고, 강남의 쇼핑가인 Grafton 스트리트는 보행자전용거리이다. 아일랜드 남쪽의 리피 강 남북으로 도시가 위치해 있으며 아일랜드 해(Irish Sea)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영국 잉글랜드의 리버풀이 있다.
아일랜드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1 이 더블린과 그 근교에 살 정도로 아일랜드 최대의 도시이다. 언제부터 더블린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대체로 아일랜드의 선주민인 켈트인들이 천 년 전부터 살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그래프턴 스트리트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그래프턴 스트리트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지에 에브라나라고 언급된 곳이 더블린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에서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450년경에 성 파트리치오에 의해 더블린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이후 독특한 켈트-그리스도교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9세기, 바이킹이 리피 강을 거슬러 더블린으로 쳐들어와 켈트인들의 마을을 불태우고 새로 성을 쌓았는데 그때부터 더블린이 중심적인 도시가 되었다. 더블린이라는 말의 어원은『검은 물웅덩이』를 의미하는 두블린(Dubhlinn)에서 유래해왔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당시에 마을 안쪽으로 물길이 나있어 선박을 놓던 웅덩이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흔적은 지금도 더블린 성 뒤편에 남아있다. 바이킹이 점령한 후 더블린은 일대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번성한다. 이후 켈트인과 바이킹은 더블린을 놓고 300년 넘게 혈투를 벌이다가 1171년, 잉글랜드의 앵글로 노르만인들에 의해 완전히 추방되었다.
이듬해인 1172년, 잉글랜드의 헨리2세는 더블린에 성을 짓고 잉글랜드 브리스톨의 속령으로 삼아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더블린은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지배 중심지가 되었다. 1534년, 아일랜드 사람인 피츠제럴드가 반란을 일으켜 더블린을 점령하면서 한때 아일랜드는 독립을 맞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그래프턴 스트리트는 음악을 사랑한다면 가보아야 할 곳이다-
그러나 올리버 크롬웰은 아일랜드의 독립을 용납하지 않고 아일랜드로 쳐들어가 더블린을 포위한 끝에 함락시켰다. 이후 여러 차례 아일랜드의 독립투사들이 잉글랜드에 맞서는 봉기를 일으켰고, 더블린은 늘 유혈의 장소가 되어야 했다.
영국의 공업제한정책 때문에 산업 혁명기에도 제대로 된 공업성장은 이뤄지지 못했다. 주로 가축, 맥주, 농산물들이 주 생산품이었지만 아일랜드공화국정부의 보수적인 정책과 이민으로 인한 인구유출, 경제 불황이라는 악순환으로 한동안 아일랜드공화국의 경제는 침체일로에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IT 등 첨단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한 결과 현재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너무 급속한 경제성장 탓에 더블린은 이미 식민지시절의 규모로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인구증가를 이루었으며 그로인해 교통체증, 부동산 급등 등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며 최근에는 동유럽, 아프리카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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