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 9

15.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영국 및 영어권 지역에서 옥스퍼드대학교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자 전 세계에서 7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이다. 91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 대학교는 영국의 대학평가기관「QS(Quacquarelli Symonds)」이 발표한 세계대학순위(QS World University Rankings)에서 2010년에 이어 2011년 2년 연속 세계 1위로 선정되었다. 영국에서 연구를 선도하는 20개 명문대학으로 구성된 러셀 그룹(Russell Group)회원 대학이다. 또한 1985년 설립된 유럽의 선도적 대학연합회 코임브라 그룹(Coimbra Group)소속대학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1347년에 설립된 펨브로크 칼리지, 1584년에 ..

14.간략한 영국의 역사

간략한 영국의 역사 프랑스에서는 샤를4세가 죽은 뒤 카페왕조가 발루아왕조로 바뀌었는데, 이에 영국은 카페가(家)의 혈통을 가진 에드워드3세가 프랑스왕위를 요구하면서 1337년 프랑스와의 전쟁을 개시하였다. 이것이 1453년까지 계속된 백년전쟁의 발단이 되었다.왕위 계승전인 동시에 사실은 일찍이 상실한 앙주령(領)을 회복하고 최대의 양모시장인 플랑드르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이기도 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 전반에는 영국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한때는 프랑스령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나, 헨리6세 때 오를레앙전투에서 패배한 후로는 계속 패배하였다. 마침내 칼레 외의 모든 대륙령을 상실하고 전쟁은 끝났다. 백년전쟁의 2년 후에는 국내의 왕위계승권을 두고 1455년부터 30년간 내전이 계속되었다. 에드워드3세의 셋째 ..

13.보들리언에서 누린 학창 시절의 낭만

보들리언에서 누린 학창 시절의 낭만 보들리언은 책을 대출해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 원칙은 처음부터 철저히 지켜져 심지어는 1645년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그리고 절대왕정을 고집하기보다 민주적인 정치를 원했던 의회 파에 패해 공개처형을 당한 비운의 왕이었던 찰스 1세(Charles I, 1600~1649)가 책을 대출받으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절대 권력도 어쩔 수 없었던 대학의 독립성과 원칙고수를 보여주는 본받을 만한 예다. 사실 학부생들이 이용하기에 더 편한 대학도서관을 두고 책을 대출해주지 않는 연구중심도서관에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옥스퍼드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각자 다를 것이다. “1970년대에 이 대학을 다녔던 ..

12.둥근 돔의 도서관, 래드클리프 카메라

둥근 돔의 도서관, 래드클리프 카메라 보들리 경에 의해 재건된 이 옛 도서관은 1602년에 2,500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새롭게 단장된 모습으로 개관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 재건에 참여하였는데, 기증자 중에는 보들리 경은 물론이고 유명한 탐험가요 작가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1552?~1618)이나 시인 필립 시드니 경(Sir Philip Sidney, 1554~1586)과 같은 당대의 유명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좁고 협소한 도서관이 늘어나는 장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보들리 경은 도서관을 일부 증축하는 한편, 새로운 건물을 지을 계획도 추진했는데, 그 결실을 보기 전인 161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계획한 옛 도서관 동쪽으로 이어진 새로운 건물(Sch..

11.도서관 재건에 힘쓴 보들리 경

도서관 재건에 힘쓴 보들리 경 험프리 공작도서관, 보들리언 도서관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은 주로 고지도나 악보, 고서들을 보관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도서관의 이름『보들리언』은 그 창설자 토마스 보들리 경(Sir Thomas Bodley 1543~1613)에서 유래했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보들리 경은 학자로서 한때 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 대학을 떠나 공직에 나서 당시 국왕 엘리자베스1세를 위해 유럽 여러 국가에서 외교관으로서 활동했다. 1598년에 은퇴하면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그는 당시 방치되고 있던 대학도서관을 재건할 것을 대학 측에 제안했다. 도서관을 학생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직을 떠나 시간이 많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10.옥스퍼드 대학의 심장, 『더 벋(The Bod)』

옥스퍼드 대학의 심장, 『더 벋(The Bod)』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100개가 넘는 도서관을 거느리고 있다. 도시전체가 도서관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도시에 도서관이 이렇듯 많은 이유는 옥스퍼드대학의 40개가 넘는 칼리지(College) 또는 홀(Hall)이 각자 도서관을 지니고 있고, 여기에다 학과도서관, 대학의 기관에 속하는 도서관 등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많은 도서관 중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서관은 당연히 옥스퍼드대학의 대표도서관인 보들리언 도서관이다. 옥스퍼드대학의 대표 도서관인 보들리언 도서관 보들리언 도서관은 이 대학의 주요연구중심도서관(Research library)이며, 영국에서 국립영국도서관(The British Library)다음으..

9.『카팩스 타워(Carfax Tower)』

『카팩스 타워(Carfax Tower)』 옥스퍼드의 『카팩스 타워』 옥스퍼드의 『카팩스 타워』 『카팩스 타워』는 카팩스 지구의 북서쪽 모서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본래는 13세기에 세워진 세인트 마틴 교회가 있었는데, 19세기 말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도로 확장의 필요성이 발생하자 교회를 파괴한 후 남겨놓은 탑이다. 23m가 넘는 높이의 타워 안에는 꼭대기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원래는 더 높았는데, 탑 위에서 지역주민들이 학생들에게 돌을 던져 학교 측이 에드워드3세에게 탄원서를 보내 높이를 낮췄다고 한다. 타워의 동쪽 면에는 성 마틴 교회에 있던 시계를 본떠서 제작한 단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시계가 자리하고 있다. 옥스퍼드 마을 이 시계는 15분마다 두개의 소년인형이 벨을 울린다고 해서 쿼터보이(Quar..

8.「카사노바 회상록」

「카사노바 회상록」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나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나가노라.”라는 말을 남기며 탈옥해 파리로 갔다. 어릴 때부터 영리했던 카사노바는 사제, 바이올리니스트, 승려, 비서, 군인, 탐험가, 철학자, 스파이 등 한 사람의 직업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일들을 했다. 그는 작가로도 활약하며 희곡 소설, 시, 소책자 등을 썼으며 자신의 사랑을 아주 자세히 기록한 위대한 기록자였다. 그의 탈옥은 한 여인이 배후에 숨어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니, 역시 카사노바다운 탈옥이랄 수 있다. 파리로 도주한 그는 유명인사로 대접을 받았고 게다가 복권에까지 당첨, 큰돈을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옥스퍼드 마을의 셀도니언극장(The Sheldonian Theatre) ..

7.「탄식의 다리」와 얽힌『카사노바』

「탄식의 다리」와 얽힌『카사노바』 베네치아의 죄수가 두칼레 궁 안의 10인의 평의회에서 재판을 받으면, 다리건너 왼편에 있는 피옴비감옥에 수감되는데, 그때 당시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위의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다는 생각에 하나같이 큰 한숨을 쉬었다는데서「탄식의 다리」가 유래한다. 「탄식의 다리」는 두칼레궁전과 피옴비감옥을 잇는 작은 다리다. 그런데 이 피옴비감옥을 탈옥한 인물이 한 사람 있었다는데, 그가 바로 쟈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다. 카사노바 그는 1725년에 베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배우였고 모친역시 유럽전역에 명성이 자자했었던 미모의 여배우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 카사노바가 태어날 당시의 베네치아는 해양산업이 몰락한 도시로 시민들은 점점 불만을 갖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