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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도서관 재건에 힘쓴 보들리 경

달리는 말(이재남) 2022. 8. 17. 07:13

도서관 재건에 힘쓴 보들리 경 

험프리 공작도서관, 보들리언 도서관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은 주로 고지도나 악보, 고서들을 보관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도서관의 이름『보들리언』은 그 창설자 토마스 보들리 경(Sir Thomas Bodley 1543~1613)에서 유래했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보들리 경은 학자로서 한때 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 대학을 떠나 공직에 나서 당시 국왕 엘리자베스1세를 위해 유럽 여러 국가에서 외교관으로서 활동했다. 1598년에 은퇴하면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그는 당시 방치되고 있던 대학도서관을 재건할 것을 대학 측에 제안했다. 

 

옥스퍼드 대학 과학사 박물관(Museum of the History of Science)에 있는 아인슈타인이 강의할때 사용한 칠판 및 그의 친필
옥스퍼드 대학 건물


                            
도서관을 학생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직을 떠나 시간이 많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 제안이 대학으로부터 받아들여지자, 그는 이 일에 남은 생을 바쳤다. 보들리 경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여건 중 하나는 후원자를 끌어들일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 스스로도 상당한 재력가이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크라이처치 호그와트 연회장의 필자

옥스퍼드대학의 보들리언 도서관


보들리 경은 집안에서 재산을 물려받기도 했지만, 상당한 재산을 가진 여성과 결혼했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그의 아내의 재산은 수산업을 하던 전 남편에게서 물려받은 것인데,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보들리언이 생선을 판돈으로 세워졌다는 말도 있다. 보들리 경이 나서기 전까지 옥스퍼드대학에는 대학소유의 도서관은 있었으나 대학을 대표할 만한 제대로 된 도서관이 없었다. 
이 대학은 1320년 즈음 우스터(Worcester)의 주교 토마스 컵험(Thomas Cobham)의 도움으로 도서관을 설립하려고 시도했으나 자금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 한 세기도 더 넘긴 1488년에 와서야 신학교(School of Divinity)건물 위층에 조그만 도서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험프리공작도서관(Duke Humfrey's Library)」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의 개관은 헨리5세의 동생이었던 험프리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상당한 수의 장서를 기증했기에 가능했다. 

 

옥스포드 마을


이 장서 중에는 300본에 육박하는 주요 고대필사본과 당대 프랑스와 이태리의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이 도서관은 보들리언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운 부분이며, 현재는 주로 옛 지도나 악보, 고서들을 열람하는 곳이다. 그러나 험프리 공이 기증했던 필사본과 책들은 아쉽게도 1550년 반카톨릭 감정이 고조되었던 영국 종교개혁 때 불타고 파손되는 등 대부분이 상실되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옥스퍼드 대학건물 앞에 선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