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서북쪽의 섬나라, 영국 일주여행

13.보들리언에서 누린 학창 시절의 낭만

달리는 말(이재남) 2022. 8. 22. 06:51

보들리언에서 누린 학창 시절의 낭만 

보들리언은 책을 대출해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 원칙은 처음부터 철저히 지켜져 심지어는 1645년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그리고 절대왕정을 고집하기보다 민주적인 정치를 원했던 의회 파에 패해 공개처형을 당한 비운의 왕이었던 찰스 1세(Charles I, 1600~1649)가 책을 대출받으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절대 권력도 어쩔 수 없었던 대학의 독립성과 원칙고수를 보여주는 본받을 만한 예다. 사실 학부생들이 이용하기에 더 편한 대학도서관을 두고 책을 대출해주지 않는 연구중심도서관에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옥스퍼드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각자 다를 것이다. 

 

옥스퍼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자리 잡은 우드스톡은 처칠 수상의 생가 블레넘 궁전이 있다
옥스포드 천재중 천재들만 공부한다는 올 소울스 컬리지
옥스포드의 대표적 마켓인  커버드 마켓은 말 그대로 지붕이 있는 마켓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게들이 옹기종기모여있는 곳이다


“1970년대에 이 대학을 다녔던 필자(문희경 교수)는 보들리언 도서관 열람실을 자주 찾았는데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멋있었기 때문이다. 긴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도서관건물도 멋있었고, 오랜 기간 축적된 학문의 냄새가 풍기는 이 도서관에 앉아 있는 나 자신도 멋있게 느껴졌으며, 그런 가운데 조금씩 학문에 대한 열정도 키워갔다. 그래서 일부러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서 보들리언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다.

 

옥스퍼드의 앨리스 샵 (Alice's Shop Oxford)크라이스트 교회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루이스 캐럴이 쓴 앨리스에 관련한 상품을 판매하는곳

그러나 사실을 고백하자면,『더 벋』에 가서 공부한다는 구실로 다른 일들에 더 몰두한 것 같다. 도서관과 그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오갔기 때문에 11시에는 근처에 있는 1607년에 문을 연 옥스퍼드에서 가장 오래된 펍으로 알려진 킹즈 암즈(King's Arms)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점심은 18세기부터 문을 열었던 재래시장(Covered Market)에서 먹고, 근처의 책방 블랙웰즈(Blackwells)에도 들리고, 4시쯤이면 또 영국에서는 거를 수 없는「티타임」을 근처 대학에 있는 친구 방에서 즐긴다. 

 

옥스퍼드마을의 해시계


이런 식으로 하루가 흘러갔고 공부는 틈틈이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시절이었고, 취직걱정을 하지 않았던 70년대의 학생들이 누렸던 낭만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으로서 옥스퍼드대학에서 보낸 긴 시간을 돌이켜보면, 이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옥스퍼드 마을

지금도 옥스퍼드를 가면 졸업생 자격으로 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근래에 보들리언을 방문했을 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학업에 몰두하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보기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도 예외가 아닌 취업난에 시달리는 요즘 학생들의 현실이 반영된 것 같아서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고 고려대학교 문희경 영문과교수는 보들리언에 관한 학창시절을 술회했다.
(『세계의 도서관』을 쓴 문희경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으로 학사를 받고 동 대학에서 석ㆍ박사를 취득했다. 르네상스와 17ㆍ18세기 영문학을 전공했고, 저서로『고전영문학의 흐름』등이 있다. 한국18세기영문학회장, 한국18세기학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중세르네상스영문학회 회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