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서북쪽의 섬나라, 영국 일주여행

7.「탄식의 다리」와 얽힌『카사노바』

달리는 말(이재남) 2022. 8. 1. 07:09

 「탄식의 다리」와 얽힌『카사노바』

베네치아의 죄수가 두칼레 궁 안의 10인의 평의회에서 재판을 받으면, 다리건너 왼편에 있는 피옴비감옥에 수감되는데, 그때 당시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위의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다는 생각에 하나같이 큰 한숨을 쉬었다는데서「탄식의 다리」가 유래한다. 
「탄식의 다리」는 두칼레궁전과 피옴비감옥을 잇는 작은 다리다. 그런데 이 피옴비감옥을 탈옥한 인물이 한 사람 있었다는데, 그가 바로 쟈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다.  카사노바 그는 1725년에 베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배우였고 모친역시 유럽전역에 명성이 자자했었던 미모의 여배우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

카사노바가 태어날 당시의 베네치아는 해양산업이 몰락한 도시로 시민들은 점점 불만을 갖기 시작하였고, 도시지도부는 이 불만을 어떻게든 해소해야만했다. 이때 베네치아가 선택한 유흥산업은 도시 곳곳에 합법적인 도박판이 벌어지고 누구나 오락을 즐길 권리와 술을 마실 권리가 있었다. 여자들은 도박판에서 돈을 번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윙크를 하며 추파를 던지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곽이 되어 모든 여성들이 창녀와 구분되지 않았다. 유럽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유럽의 환락가로 퇴폐와 유흥의 중심지로 여겼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유럽 최고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 산 마르코 대성당


카사노바는 1743년『성 치프리아누스 신학교』에 들어가 성직자로서 성공하려하였다. “모두가 부도덕한 세상에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성작자로서 홀로 고고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카사노바는 자문을 하면서 성직자로서 성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되는 베네치아사회이었기 때문에 그는 성직자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도시 전체가 창녀촌인데 이곳에서 무슨 설교를 한단 말인가?”그는 남의 눈을 개의치 않고 교회를 다니던 여성을 유혹하고, 떳떳하다는 듯 감추지 않았다. 이때 참을 수 없었던 교회 측은 그를 성직자 자리에서 쫓아냈다. “가장 순결한 교회의 여인도 멋진 남자가 신경써주면 넘어올 수밖에 없다. 세상에 정조가 있는 여자란 없다.”고 카사노바는 생각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두칼레궁전과 피옴비감옥을 잇는「탄식의 다리」

카사노바는 잘 생긴 외모와 뛰어난 사교능력과 다방면에 박식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 성직자란 직업은 교황이 거주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훌륭한 직업으로 그에게는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간판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가장 완벽한 직업인 로마교황청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이 간판을 내세워 고위층 집안의 부인과 그녀의 딸, 유부녀와 소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여인들을 유혹하였다. 그런 그의 행동은 많은 남자들의 질타를 받으며 로마에서 쫓겨났다. 
그가 도망친 곳은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이탈리아 반도로 돌아와 비밀첩보요원인『프리메이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고 한다. 비밀첩보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한 기술로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능력을 익히고 있었다. 20세가 된 카사노바는 그 능력을 이용하여 예술의 도시인 파리, 음악의 도시 빈을 돌면서 수많은 여성들을 유혹하였다. 
그가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한 자금줄로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도박을 이용하였다. 또한 종교재판관『브라가딘』은 카사노바의 양아버지로서 그의 가장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주었다. 『브라가딘가』의 양자가 된 카사노바는 그가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서 여행 중에 만난 모든 여인을 그의 침실로 끌어들였다. 이렇게 카사노바가 상대한 여성은 13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두칼레 궁전

                          
특히 환락의 도시 베네치아는 일상적으로 섹스파티가 유행하였고, 카사노바는 수녀들까지 파티에 초대하여 환락을 즐겼다고 한다. 카사노바와 파티를 즐긴 여인들 중에는 성직자의 부인, 종교재판관의 애인 등 고위층들이 많았으며 이들은 카사노바가『프리메이슨』등 이단과 연결되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카사노바를 협박하기 시작하였다. 1755년 그는 금지된 이단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는 죄명으로 종교재판관에 의해 체포되고 이로부터 감옥에서 옥살이를 시작한다. 그런 그가 수년 동안 교황청의 심판관에게 추적을 당한 끝에 이단혐의로 체포돼 지하 감옥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베네치아 피옴비감옥에서 15개월에 걸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중 그의 피옴비감옥의 탈출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옥스퍼드의 애슈몰린 박물관
옥스포드 대학의 「탄식의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