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회상록」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나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나가노라.”라는 말을 남기며 탈옥해 파리로 갔다. 어릴 때부터 영리했던 카사노바는 사제, 바이올리니스트, 승려, 비서, 군인, 탐험가, 철학자, 스파이 등 한 사람의 직업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일들을 했다.
그는 작가로도 활약하며 희곡 소설, 시, 소책자 등을 썼으며 자신의 사랑을 아주 자세히 기록한 위대한 기록자였다. 그의 탈옥은 한 여인이 배후에 숨어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니, 역시 카사노바다운 탈옥이랄 수 있다. 파리로 도주한 그는 유명인사로 대접을 받았고 게다가 복권에까지 당첨, 큰돈을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옥스퍼드 마을의 셀도니언극장(The Sheldonian Theatre)
그 돈으로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콘스탄티노플, 빈, 런던, 페테르부르크, 마드리드 등 전 유럽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계속했다. 군주, 귀족, 귀부인은 물론 문인, 화가, 자연과학자, 광대, 사기꾼, 방랑자, 하녀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과 사귀었다. 빈틈이 없는 재치와 삼가 할 줄 모르는 언행, 깊지는 않지만 넓은 교양을 무기로 삼아 자유분방한 생애를 보냈다. 그는 공상적인 소설『이코사메론(1788)』외에 산문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저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저술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말년에 둑스성에서 프랑스어로 쓴『내 생애의 역사(카사노바회상록)』이다. 그의 회상록에는“나는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한 모든 일들이 설령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살아왔음을 고백한다.”고 자유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그는“여성을 위해 태어났다고 자각한 나는 늘 사랑하였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내 전부를 걸었다.”고 자신이 태어난 사명에 대하여 서술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즐겁게 보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고 권태로이 보낸 시간만이 낭비일 뿐이다.”고도 말했다.
색정적 정사장면이 전편에 펼쳐지는『카사노바회상록』은 18세기 유럽사회의 풍속과 사람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가 됐다. 카사노바의 회상록을 읽다 보면 다음의 구절에서 딱 시선이 멈추어 진다. 그렇게나 수많은 여성들과 엮어왔던 그의 삶과 사랑에 대한 철학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나는 여성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명감을 느꼈으므로 늘 사랑을 했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잘 차려진 식탁과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열정과 헌신을 다해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자유다."
1725년 4월 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출생한 카사노바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인 쾌락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는데, 40여 년의 세월동안 유럽 각지 132 명의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바람둥이의 말치고는 참으로 근거 있는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나이를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옛말같이 바람처럼 노래처럼 시처럼 흐르며 오늘은 이 나라 내일은 저 곳 또한 오늘은 이 여자 내일은 저 여인과 더불어 사랑을 주고받았던 그 빛나고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는 늙고 지친데다 성(性)적 능력마저 잃어 우울증에 빠져 쇠락한 말년의 카사노바는 보헤미아의 둑스 성에서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드라마틱한 생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옥스퍼드대학의「탄식의 다리」는 대학과 대학사이를 잇는 다리로서 옥스퍼드 학생들이 성적표를 받아들고 탄식을 하며 이 다리를 건너갔다고 하여 탄식의 다리라 부른다
그는 과거의 일분일초까지 자세히 기억해냄으로써 과거의 즐거움을 상상 속에서나마 다시 맛보았던 것이다. 장장 12권짜리 방대한 자서전 『Histoire de ma vie(내 생애의 역사)』는 현재 18세기 유럽 대도시의 풍속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다채로운 그의 생애는 그가 한낱 호색한으로 머물기에는 너무나 많은 재능과 다양한 삶의 면모를 지니고 살았음을 보여준다. 이 자서전에는 카사노바가 터키,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폴란드 등 전 유럽을 다니며 겪은 다채롭고 화려한 편력이 마치 한 편의 대하소설처럼 쓰여 있다.
1798년 7월4일에 현재의 체코공화국 영토에 있는 자신의 성에서 사망했다. 죽은 후로 그의 명성은 더욱 커져 세상 사람들에게 지치지 않는 사랑의 화신으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다. 필자가 베네치아에서 타고 다닌 곤돌라가 아름답고 조그마한「탄식의 다리」를 지나 좁디좁은 운하를 노 저으며 오래된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베네치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기 때문에 여기에 이 기록을 남긴다.
'유럽대륙 서북쪽의 섬나라, 영국 일주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옥스퍼드 대학의 심장, 『더 벋(The Bod)』 (0) | 2022.08.11 |
---|---|
9.『카팩스 타워(Carfax Tower)』 (0) | 2022.08.07 |
7.「탄식의 다리」와 얽힌『카사노바』 (0) | 2022.08.01 |
6.전통적인 대학도시 옥스퍼드(Oxford) (0) | 2022.07.29 |
5.옥스퍼드(Oxford)의 역사 (0) | 2022.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