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휴가 81

21.마이산(馬耳山) 도립공원

마이산(馬耳山) 도립공원 용담댐 물문회관에서 나온 일행은 마이산 도립공원으로 달려간다. 익산 처제가 준비해온 옥수수와 떡 그리고 토마토 등을 먹으면서 한참을 달려 마이산 입구에 도착, 주차장에 들어가면서 주차비를 지불하였는데, 또 개인적으로 입장료를 내란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경계에 넓게 펼쳐져 있으며, 말의 귀모양으로 생긴 두 봉우리를 일컫는 것으로,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동쪽에 솟아있는 수마이봉은 667m이고, 서쪽에 솟아있는 암마이봉은 763m이다. 마이산은 전체가 바위로 되어있지만 관목과 침엽수, 활엽수 등이 자라고 있고, 화엄굴, 탑군, 금당사, 이산묘 등의 명소가 있는 곳이다. -전북 진안군 마이산- 말의 두 귀 모습을 한 바위산과 기묘한 돌탑을 보기 위해 전북 진..

여름날의 휴가 2020.10.01

20.용담댐 공원의 물 홍보관(물문회관)

용담댐 공원의 물 홍보관(물문회관) 용담댐을 만든 때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호수 안에 별다른 시설물들이 들어서지 않아, 오히려 자연스러운 풍경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매력 중 하나다. 용담호반 여러 곳에 망향의 동산이 세워져 있다. 수몰된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수자원공사가 조성한 것으로 대개 조망이 좋은 둔덕 위에 꾸며져 있다. 망향의 동산 중에도 용담대교 북단의 용담 망향의 동산이 가장 조망이 좋다. 용담호 중앙부쯤에 위치해 동서 양쪽으로 호수물이 보이며 마을에 있던 목제 정자인 태고정(太古亭)은 짜임새 있는 목조건물로, 1752년 건립된 것을 1998년 현 위치로 이전해 놓았다. -용담댐 환경조각공원의 희망의 연주- 2용담댐 공원에는 물 홍보관(물문회관)이 있는데 이곳은 물과 사람과의 여러..

여름날의 휴가 2020.09.28

19.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의 용담댐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의 용담댐 2015년 7월30일은 여행을 시작한지 나흘째 되는 날이다. 어제는 너무 피곤했었나 보다. 7시가 다되어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아침은 제법 시원하게 느껴진다. 처제와 나눈 아침인사는‘잘 잤어요?’이다. -진안군 용담면의 용담댐입구- 필자부부에게 침대가 놓인 방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잠을 잘 잤다. 처제가 살고 있는 이곳 모현동 아파트촌의 현대아파트는 지어진지 꽤 오래됐기 때문에 주차장문제가 조금 심각하다. 밤 10시가 넘어 주차장에 도착하면 차를 세울만한 장소가 없어 애를 먹는다고 한다. 주차장 문제는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 아침에는 아침식사를 마치고도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가 10시 20분쯤 진안의 용담댐을 향하여 출발하기로 한다. ..

여름날의 휴가 2020.09.25

18.연꽃으로 가득한 궁남지

연꽃으로 가득한 궁남지 기상이 넘치는 자세로 말을 탄 계백장군 동상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부여군청 앞 사거리를 지나니 오른쪽으로 궁남지 이정표를 따라 500m쯤 들어간 궁남지 주차장에서 내린다. 이 궁남지는 서동요설화로 잘 알려진 백제 무왕35년(634년)에 만들어졌으며 연못을 둘러싸고 5만여 평에 달하는 주변이 온통 연꽃 밭이다. 궁남지의 약도 부여의 궁남지 아울러 연못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아담한 포룡정이라는 정자와 연못 가장자리 곳곳에 초가지붕의 파라솔과 아담한 벤치가 놓인 모습이 그림 같아 부여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다. 7월 하순인 지금은 백련, 홍련, 수련, 가시연 등 다양한 연꽃이 피어나 한 곳에서 꽃을 비교해가며 엿볼 수 있다. 부여의 궁남지와 연꽃 부여의 궁남지와 연꽃 경주..

여름날의 휴가 2020.09.22

17.삼천궁녀와 백마강변의 낙화암

삼천궁녀와 백마강변의 낙화암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 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김규진의 작품이란다. 천년 이상이 됐다는 소나무도 만나고, 사자루에 앉아 휴식시간을 갖기도 한다. 사자루를 지나 만난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에 도착하였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다. 정상 바위위에 육각지붕으로 세워진 정자로 백제멸망당시(서기660년)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부풍시사」라는 시모임에서 건립했다고 한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건..

여름날의 휴가 2020.09.17

16.부여의 유적지

부여의 유적지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은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평) 중 33필지 2,102㎡는 1983년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 1982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하고 조사하여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

여름날의 휴가 2020.09.14

15.백제의 마지막 122년간 수도였던 부여

백제의 마지막 122년간 수도였던 부여 이제는 고대왕국 백제의 마지막 122년간 수도였던 부여를 향하여 달려갈 참이다. 한참을 달려 부여에 들어서니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부소산성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를 통과하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의 모습 부소산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부여의 진산(고을의 뒤에 위치하여 그 지역을 보호하는 산)으로 해발 106m 이며, 동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다. 남쪽은 산세가 완만하여 앞쪽에 시가지를 이루고 북쪽은 가파르며 백마강과 맞닿았는데, 산성을 비롯하여 삼충사, 영일루 군창지, 반월루, 사자루, ..

여름날의 휴가 2020.09.11

14.공주 공산성의 역사

공주 공산성의 역사 공산성의 약도 공산성의 진남루 바로 아래, 돌을 얹어놓은 모습 그런데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475)에 한성에서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공산성은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이 성은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되었는데, 백제시대에는 토성(土城)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다. 공주 공산성의 영은사 공주 공산성의 영은사 공주 공산성의 영은사 현재..

여름날의 휴가 2020.09.07

13.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공주 공산성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공주 공산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공주 공산성의 금서루에서 바라본 공주시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공주 공산성의 금서루에서 바라본 공주시내 익산 왕궁리유적지의 관람을 마친 일행은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공주의『공산성』을 향하여 달려간다. 얼마동안이나 달렸을까? 배가 고프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공산성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청양댁 추어탕」이라고 쓰인 음식점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깔끔한 음식점이다. 한 그릇에 8천원인 한방추어탕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었다. 음식 값은 필자가 치루고 싶어 그렇게 했다. 「청양댁 추어탕」집으로부터 승용차로 10분 정도 달려 공산성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입장료를 받고는 있었으나 백제문화권 유물들이 있는 모든 곳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기념으..

여름날의 휴가 2020.09.04

12.추측만 무성하던 왕궁터, 왕궁리유적지

추측만 무성하던 왕궁터, 왕궁리유적지 왕궁리유적지는 금마의 미륵사지(彌勒寺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유적지로 과거 우리 민족의 정치·문화의 중심지로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익산 왕도설은 많은 문헌들이 익산이 한 국가의 왕도였음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설에만 의존한 신비로운 설화와 같은 이야기로만 여겨져 왔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출토유물 그러나 왕궁리 유적지의 발굴로 인해 이제 그 설화와 같은 이야기가 역사의 사실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익산이 문헌의 기록대로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역할을 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가장 객관적인 증거자료이다. 왕궁리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추측만 무성하던 왕궁터가 아니라 정말 백..

여름날의 휴가 20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