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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유적, 기네스양조장

달리는 말(이재남) 2023. 2. 5. 08:03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유적, 기네스양조장

1755년에 아일랜드의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레익슬립(Leixlip)에 양조장을 차리고 맥주 에일(ale)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759년에 폐허로 있던 더블린의 한 양조장을 헐값에 9천년 계약을 맺고 임대하여 세인트제임스 게이트 양조장(St. Jamess's Gate Brewery)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맥주 생산에 들어갔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기네스의 설립자 Arthur Guinness

-더블린 기네스맥주공장의 1862 년에는 아일랜드의 국가적 상징인 하프 그림과 아서 기네스의 사인이 들어간 담황색의 타원형 라벨이 처음 선을 보였으며 이 하프가 트레이드마크로 등록된 해는 1876 년이다-

1769년에 처음으로 영국에 기네스맥주를 수출했으며 1799년에는 에일 생산을 중단하고 포터(porter)만을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1801년에 지금의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Foreign Extra Stout)의 전신인 웨스트인디스 포터(West Indies Porter)를 출시했다. 
1811년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1840년에 미국의 뉴욕에, 1858년에는 뉴질랜드에 제품을 수출하는 등 해외로 영역을 넓혀갔다. 1862년에는 아일랜드의 국가적 상징인 하프 그림과 아서 기네스의 사인이 들어간 담황색의 타원형 라벨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으며, 1876년에 하프가 트레이드마크로 등록되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의 기네스 맥주 양조장(Guinness Brewery)내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의 기네스 맥주 양조장(Guinness Brewery)에서 내려다본 더블린-

1936년에 런던의 파크 로열(Park Royal)에 첫 번째 해외양조장이 설립되었다. 1974년에는 포터의 생산을 중단했다. 1988년에 생맥주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질소가스통을 넣은 최초의 위젯비어(widget beer) 기네스 드래프트(Guinness Draught) 캔 맥주를 출시했고 이 제품은 3년 후에 퀸즈 어워드(Queen's Award)를 수상했다. 
1999년에는 기네스 드래프트 병맥주를 출시했다. 2000년에 세인트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을『기네스 스토어하우스(GUINNESS STOREHOUSE)』로 이름을 바꿔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아일랜드 제1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2005년에 런던 파크 로열에 있는 양조장은 폐쇄되었다. 1986년에 기네스는 딤플, 조니워커 등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디스틸러스 컴퍼니(Distillers Company)를 인수했다. 

 

-더블린의 기네스맥주공장에서 생산된 맥주-

1997년에는 베일리스, 스미노프 등을 소유하고 있는 그랜드메트로폴리탄(GrandMet)과 합병하여 회사 이름을 디아지오(Diageo)로 바꿨다. 본사는 1932년 이후로 영국의 런던에 있다.  기네스는 세계 50여 개국에 양조장을 두고 있으며 1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또한 여러 나라에 라이선스를 주고 있다. 기네스는 해마다 세계 최고기록을 모아 발행하는 기네스북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브랜드제품으로는 오리지널 드래프트(루비, 크림, 블랙, 화이트), 캔 드래프트, 병 드래프트, 엑스트라 스타우트,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 등이 있다. 기네스는 더블린과 아일랜드, 그리고 맥주의 역사에 특별한 위치에 있다. 아서 기네스가 1759년에 리페이 강남 쪽에 있는 레인포드의 작은 양조장을 취득했을 때, 이곳을 9천년 기한으로 임대했으니 아직도 그 기간이 많이 남은 셈이다. 

 

더블린의 기네스맥주공장을 방문한 필자
                      

그는 에일을 양조하는 일부터 시작했고, 1770년대에 들어서는 당시 런던에서 인기 있던 흑맥주스타일에 기초하여 일종의 드라이 스타우트맥주를 제조했다. 스타우트는 검은색(볶은 보리를 첨가하여 색을 냈다)과 크림처럼 풍부한 거품, 독특한 맛으로 유명해졌다. 이 맥주는 큰 성공을 해 원래 제조하던 에일 생산량이 떨어졌다. 아서 기네스는 양조장 정문 근처에 있는 토머스 스트리트에 자신이 살 집을 지었다. 
기네스 가에서 에너지가 가장 넘쳤던 이는 그의 아들인 벤자민 리 기네스로, 그는 준 남작 작위를 수여 받았으며 사망할 무렵에는 아마도 아일랜드 최고의 부를 쌓았을 것이다. 기네스 양조장을 현대적인 기업으로 창조해낸 주요인물이 바로 그였으며, 벤자민 리 기네스는 더블린에 있던 양조장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수준까지 확장시켰다. 
기네스는 위탁화물을 외국으로 수송하기 위해 더블린항구까지 운반하는 데 쓰이는 회사용 특별철도와 선단(船團)까지 갖추었다. 1930년대에는 대략 5천 명 정도의 인원이 양조장에서 일했으며 기네스 사는 더블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회사였다.                     

-더블린의 술을 즐겨마시는 템플바-

기네스 가는 이미 백작이라는 작위를 얻어 영국 귀족사회에 합류했고, 관대한 후원자로 유명해졌다. 2000년 거대한 양조장 건물단지 한복판에 문을 연『기네스 스토어하우스』는 기네스 사의 역사를 말해 준다.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유명한 광고 『마이 굿니스, 마이 기네스』등 대부분을 제작했던 예술가 존 길로이를 기념하는 특별화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