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개선문(1810년의 승리)
필자일행의 파리개선을 축하해주기 위하여 제일먼저 개선문의 안내를 하겠노라고 인솔자, 강기영씨는 재치 있는 말로 필자일행을 길 건너 개선문광장으로 안내한다. 파리의 개선문(凱旋門, Triumphal Arch)은 전쟁터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황제 또는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문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국민이 이룩한 공적을 기념할 목적으로 세운 대문형식의 건조물을 말한다.
이 개선문은 1805년「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1806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명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어 루이 필립의 왕정복고시대인 1836년 완공되었다. 나폴레옹은 개선문이 완공되기 전에 이미 사망하였으며, 그가 이 문을 지나간 것은 1840년 파리로 이장할 때였다.
파리 개선문
고대 로마개선문의 모범을 따온 것으로, 신고전주의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개선문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무명 용사의 무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독일이 파리를 점령할 때 나치독일의 국기가 걸렸고, 히틀러가 전차로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기원에 대해서는 기념군상(記念群像)의 대좌(臺座)가 발전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구조물의 주체를 이룬 아치는 이탈리아 에트루리아의 도시문(都市門)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으나, 개선식장으로 향하여 가는 길에 만들어 꾸민 장식에서 점차 항구적인 독립건축물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파리 개선문의「무명용사의 무덤」
파리 개선문의「무명용사의 무덤」
우리나라처럼 1,2,3,4번 출구 같은 개념이 없어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기에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걷다가 왼쪽 출구로 나왔더니 바로 개선문 앞이다. 이러한 기념문은 고대 로마에 많이 세워졌다는데, 아치형의 통로인 공랑(拱廊)에 원주(圓柱)등을 배치하여 조각으로 장식한 본격적인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는 제정로마의 초기로 추정된다.
기본적인 형식은 큰 아치 하나로 된 단공식(單拱式)과 그 좌우에 작은 아치를 곁들인 삼공식(三拱式)등이 있으며, 단공식은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과 같은 것이고, 삼공식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공랑을 십자형으로 교차하여 4면에 아치를 설치한 형식도 있다.
파리 개선문으로 통하는 거리
이러한 전례를 모방하여 후세에 와서, 특히 근대에 국가주의가 대두하게 되자, 유 럽 여러 곳에서 개선문을 세웠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과 카르셀 개선문, 도리스식 원주를 배열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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