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일주 여행

(4)-룩소르의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2. 17. 07:21

룩소르의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


이집트의 음식문화

 

이집트는 무려 국토의 97%가 사막이기 때문에 건조한 기후로 식물이 자라기 힘들고, 대부분의 농업이 나일강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정해진 곡식만을 수확할 수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곡식이 밀과 보리로 주식은 주로 빵이다.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만들어 화덕에서 구워낸 것을 곧바로 식탁에 올린다. 소금이나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관계로 담백하며, 금방 구워낸 「아에시」라 불리는 이 빵은 쫄깃하고 고소하다.

이 빵의 크기는 호떡보다 조금 더 크고, 내부는 비어 있어 이중으로 된 누런색의 거친 빵이다. 빵을 소스에 찍어먹거나, 빵 사이에 여러 가지 야채나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소스는 여러 종류가 있다. 들깨를 갈아 넣은 시큼한 요구르트 소스와 콩과 참깨를 갈아 마늘과 향신료를 넣어 만든 소스 등이 나오기도 한다. 빵이 나온 후에는 메인 요리로 고기류가 나오는데, 이슬람을 믿고 있는 이집트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소, 양, 오리, 거위, 비둘기 등과 같은 다양한 고기를 먹는다.

중동에서 자라는 양고기는 다소 질기기 때문에 갈거나 잘게 썰어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각종 향신료나 마늘을 넣어 다진 고기를 완자 모양이나 작은 소시지 형태로 만들어 튀겨내는데 이집트의 가장 보편적 음식이다. 또한 나일강 주변에서는 농어, 숭어, 메기 등의 생선이 잡히고, 홍해와 지중해를 접하고 있어 생선도 풍부하다. 우리 일행은 지중해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통째로 구운 생선에 레몬 즙을 짜서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집트 음식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디저트와 음료이다. 이집트의 전통 과자는 보통 설탕 시럽에 담가두어 굉장히 달고 칼로리가 높다. 가장 일상적인 음료는 홍차로 「샤이」라고 불리는데 홍차에 설탕을 듬뿍 넣어 이 역시 맛이 강하고 달다. 더위에 지쳐 있을 때 달고 뜨거운 홍차는 피로 회복제가 된다고 한다. 알코올 류는 이슬람 국가인 까닭에 드러내놓고 마시지는 않으나 중동의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선 자유로운 편이다.

맥주는 이집트인이 처음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이집트의 양조 기술은 쇠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오벨리스크」라는 와인도 만들고 , 「스텔라」 나 「사카라」라는 맥주도 만들고 있다.

날씨가 고온 건조한 탓에 치즈나 요구르트 같은 발효음식이 풍부하고 양고기 냄새를 없애려는 노력으로 향신료가 발달한 것이 특징인데 선명한 색깔의 각종 향신료가루는 음식에 들어가 맛을 낸다. 대체로 자극적이지 않은 이집트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고,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오히려 심심한 맛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룩소르의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

 

룩소르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남쪽에 위치하며 비행기로는 2시간, 열차로는 12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에 있다. 고대 이집트 중세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르는 최전성기 1500 B.C에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찍이「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잘 묘사돼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온 일행을 전용버스에 싣고 찾아간 곳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잠들어 있는 웅장한 모습의 왕가의 계곡이다. 룩소르는 나일강에 의해 동과 서로 나눠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지었고, 태양이 지는 서쪽은 주로 묘지나 제전 등을 지었다. 따라서 나일강 서쪽은 사자(죽은자)의 도시, 네크로폴리스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과 여왕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거대한 계곡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시대 다음인 1580∼1085 B.C.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에 미로로 연결된 보물창고, 분묘 등이 있고 바위 표면을 뚫어 신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왕의 묘는 64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9기만을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하고 있다. 낮은 언덕들을 헤치고 입구에 닿으니 오목하게 들어간 골짜기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일행은 나일강변 사막지대의 계곡에 위치한 왕가의 무덤 가운데 첫 번째 찾아 들어간 곳에서 투트모스 3세의 무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거대하고 험준한 석회석산을 수평 또는 수직으로 파고들어가 무덤을 만들었다니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더 할말을 잊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흙길을 올라가 골짜기 깊숙한 높은 절벽위에 있는 투트모스 3세의 지하무덤, 절벽을 사다리로 만든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입구에 도착한다.

중간에는 도굴을 막기 위한 함정이 있으며 암굴 속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전실이 거기에 있다. 거기서 좌측으로 돌아 지하통로를 내려가면 비로소 현실이 나타나는 무덤이다. 무덤을 만들고 치장을 하다가 미완성인채로 각종 문자와 행적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 중단해 버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외형으로부터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피라미드와는 다르게 신왕국시대의 무덤은 골짜기에 있는 땅속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피라미드가 일찍부터 도굴꾼들의 표적이 된 것을 보자 신왕국시대의 왕들은 이러한 도굴을 피하려고 땅속으로 무덤을 파고 들어갔고 왕이 묻히고 난 후 입구 또한 아무도 눈치체지 못하게 봉쇄해 버렸다.

그러나 도굴꾼의 도굴은 피할 수가 없었고 신왕국시대가 지난 제3혼란기에만 64개의 무덤 중 63개 무덤이 파헤쳐졌다. 유일하게 남은 무덤이 18세의 나이에 요절한 어린 왕 투탕카멘의 것이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위로는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황량한 계곡이 펼쳐진다. 여기에는 수많은 파라오들이 바위 속을 뚫고 묘를 만든 후, 스스로 미라가 되어 묻혔다. 그러나 후일 도굴꾼들에 의해 거의 다 파헤쳐졌는데, 유일하게 그대로 발굴된 것이 제18왕조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1922년 11월 27일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굴된 이 묘에는 호화로운 금박 장식의 나무관, 순금으로 만든 동물 머리 등 수많은 보물들과 함께 푸른 유리띠 무늬를 덧붙인 황금마스크를 쓴 투탕카멘이 3300년 전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는 실권이 별로 없었던 불우한 파라오로, 어린 나이에 죽어서 초라한 곳에 묻혔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도굴꾼들의 눈에 띄지 않아 현대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룩소 왕가의 무덤의 약도

룩소 왕가의 무덤의 약도

룩소의 왕가의 계곡

왕가의 무덤 입구

왕가의 무덤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