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14)-불교의 4대 성지중 하나인 초전법륜지, 녹야원(사르나트)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1. 20. 06:07

 

 소를 지극정성으로 닦아주는 여인네들

 바라나시 초전법륜지(다메크 대탑)

 바라나시 초전법륜지(다메크 대탑)

 바라나시 초전법륜지(다메크 대탑)

 바라나시 초전법륜지(사르나트사원)

 바라나시 초전법륜지(사르나트사원)

바라나시 초전법륜지(사르나트사원)


 

인도의 카스트제도

 

인도의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큰 특징가운데 하나라면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으로 나뉘며 인도의 교육정도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이 카스트제도는 바로 힌두교의 교리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인간은 이승에서의 착한 행동과 악한 행동, 즉 업에 의해 다시 태어날 때의 계급이 결정된다. 문제는 선행과 악행에도 그 정도가 천차만별이고, 당연히 받아야 할 상벌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환생할 때 결정되는 계급도 천차만별이어야 하므로 수천 가지의 계급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카스트는「혈통의 순수성」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의 카스타에서 나온 말이고 인도 말로는 바르나( : varna)라고 한다. 제1계급은 바라문 또는 브라만(Brahman:사제)이라고 한다. 최상위 계급에 속하는 브라만도 슈피리어와 인피리어로 구분된다. 제2계급은 크샤트리아(Kshatrya:왕족/무사), 제3계급은 바이샤(Vaisya:농민/상인 등의 서민)이며 제4계급 은 피정복민으로 이루어진 수드라(Sudra:노예)의 네 카스트(바르나)로 나뉘는데 이것은 다시 2378개의 계급으로 더 나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4계급의 카스트제도에 속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사실은 이 사람들이 인간으로 치지도 않는, 그래서 카스트에 넣어 주지도 않는「파리아」라는 계층이 더 있다. 이 파리아는 불가촉천민(손댈 수 없는 천민)으로 간주된다. 인도 헌법은 카스트제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4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1억 7천만 명에 이른다.

4계급의 카스트는 존귀한 자와 비천한 자라는 고저의 서열을 나타내고 있어, 보다 높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보다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의 곁에만 가도 더럽혀진다고 여긴다.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부정한 자로 보았고, 각 카스트는 조상의 직업을 세습하였으며, 카스트 상호간의 통혼은 금지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카스트 중의 어느 하나에 자동적으로 귀속되게 마련이며, 대대로 이 카스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이 네 카스트 밑의 불가촉천민(파리안)을 아웃 카스트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카스트제(制)라고 할 때는 불가촉천민 하리잔은 포함되지 않는다. 최하 카스트인 수드라까지도 파리아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니 이들의 계급사회는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불교의 4대 성지중 하나인 초전법륜지, 녹야원(사르나트)

 

갠지스 강으로부터 7시 40분에 호텔에 도착, 호텔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이제는 짐을 챙겨 호텔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전용버스를 타고 북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을 하신 초전법륜의 땅인 녹야원(사르나트)으로 간다. 그런데 초전법륜지, 녹야원은 13세기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현재는 그 유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옛 경전에는 녹야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생존당시 이곳에 사슴들이 많이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사르나트 위쪽에는 사슴농장이 있다. 사르나트는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갠지스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처님의 미소가 머물러 있는 사르나트는 아늑하고 조용하다. 이곳에는 아소카왕의 돌기둥과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의 유적, 무라간다 쿠티 비할(根本香積寺)의 건물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49일간의 선정에 들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기로 뜻을 세우고 나이란자나 강가에서 헤어진 다섯 사문을 떠올린 부처님은 280km의 거리를 걸어 사르나트에 당도하셨다. 그때 수많은 수도자들이 모여 있던 바라나시로 가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5명의 수행자, 비구니를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현재는 정자 안에 등신대의 채색 석고상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귀를 기울이는 다섯 사람의 모습과 사슴들을 만들어 놓고 있다. 입구에는 다섯 비구니가 부처님을 맞이한 장소에 아소카왕이 건립했다는 거대한 불영탑(chauk handi)이 있는데, 그 특이한 형상은 사암을 재료로 층층이 쌓은 탑 꼭대기에 이질적인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질적인 건물은 이슬람 세력이 탑 정상에 사원을 세운 것이라고 하니, 이는 불교보다 이슬람이 위대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었던 탓일까?

다섯 비구니에게 최초로 설법한 장소에 세웠다는 다메크 대탑(Dhamekh Stupa)은 붉은 벽돌로 구워 쌓았는데, 지름이 28.5m, 높이는 40.06m에 이른다. 마우리아왕조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1층에는 화려한 연꽃문양 등이 새겨져 있고, 중간 중간에 8개의 감실이 위치해 있다. 사르나트는 대단히 큰 규모의 사원이었으나 지금은 사찰 터만 남아있고, 아소카왕의 석주마저 파괴돼 2m정도의 기단부분만 남아있다. 다행히 1905년 땅속에 파묻혀 있던 4마리의 사자머리부분이 발견돼 현재 사르나트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우리는 녹야원을 한 바퀴 돌면서 다메크 대탑과 녹야원 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한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대학생 2명을 만나 그들과도 기념사진 한 컷을 찍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바로 옆에 자리한 불교예술의 보고인 사르나트고고학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안에는 조그만 가방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인도의 상징인 2.31m의 거대한 사자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고고학박물관(Sarnath Archaeological Museum)에는 불교보호자로 잘 알려진 아소카왕이 만들었던 석주(돌기둥)의 머리의 꼭대기부분에 있었던 4마리의 사자상의 석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4마리의 사자상의 석상은 국장이 되어서, 현재 인도의 지폐에 인쇄 되어있다.

사자상은 BC 2세기경 마우르얀 아소카왕이 최초 불경이 시작되어 부처가 설교하던 곳에 세워졌던 돌기둥위에 세웠던 것으로, 4개의 사자상은 각각 4개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찍을 수 없으므로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 5세기 때 만들어진 불상과 함께 자이나교, 힌두교 상들을 눈으로만 구경하고, 밖으로 나온 일행은 전용버스를 타고, 이곳을 출발한 시간은 10시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