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15)-세계유일의 에로티시즘 유산, 카주라호의 사원들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1. 23. 06:13

 

 바라나시로부터 카주라호로 이동 중 만난 사람들 

 카주라호의 락쉬마나사원의 남녀교합상(비교적 심하지 않은 작품만 올렸음)

 카주라호의 락쉬마나사원의 남녀교합상(비교적 심하지 않은 작품만 올렸음)

 카주라호의 락쉬마나사원의 남녀교합상(비교적 심하지 않은 작품만 올렸음)

 카주라호의 사원 군(이날 아내는 일행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수많은 사진을 찍었음) 

 카주라호의 사원 군(이날 아내는 일행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수많은 사진을 찍었음) 

 카주라호의 사원 군(이날 아내는 일행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수많은 사진을 찍었음) 

 카주라호의 사원 군(이날 아내는 일행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수많은 사진을 찍었음) 

 카주라호의 사원 군(이날 아내는 일행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수많은 사진을 찍었음) 

카주라호의 사원 군(이날 아내는 일행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수많은 사진을 찍었음) 

 

 

바라나시로부터 카주라호까지

 

이제는 전용버스를 타고 카주라호를 향하여 달려가는 일만 남았다. 달려가면서 간식거리로 찐 고구마와 삶은 계란을 나누어 주었다. 어느 때보다 소화가 잘 되는 것은 버스를 타고 달리면 출렁거림 때문이 아닌가 싶다. 평상시보다 더 많이 먹었는데도 버스를 타고가다 보면 출출하게 느껴진다.

넓은 들판에 듬성듬성 널려 있는 시골마을은 한결같게 가난하게 보이고,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사람들은 누더기 조각에 뼈만 앙상해 보인다. 한길에는 소떼가 어슬렁거리고, 가끔 염소 떼와 낙타 떼도 길을 가로막지만 운전사들은 너무나도 느긋하기만 하다. 클랙슨은커녕 조심조심 그 동물들이 지나가 주기만을 바라면서 천천히 피해간다.

이 나라는 소나 양들의 천국이요, 사람에게는 가난과 오욕의 지옥처럼 느껴지는 느낌은 필자만의 것이란 말인가? 또한 도로의 양쪽으로 전개되는 엄청나게 넓은 평야의 농촌 풍광은 곡식이 풍성한 듯 하기만한데, 오가는 사람들의 행색은 가난하게만 보이고 있으니, 이는 어찌된 조화란 말인가?

시멘트공장이 많아서 유명해진 도시, 샤뜨나에서 차를 잠깐 세우고 휴식을 취하기는 하였으나 오후 2시까지 더 달렸다. 어제처럼 조그마한 마을의 음식점 앞에 내려, 우리의 전용요리사 둘리가 어젯밤에 묵었던 호텔레스토랑의 시설을 이용하여 요리했던 음식을 차려놓고 먹었다. 호텔레스토랑의 음식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메뉴이었으되, 어설프고 좁은 장소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먹은 점심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표정들이다.

식사를 끝내자 먹던 곳의 주변정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한다. 인도는 주와 주 사이의 경계를 넘을 때는 차를 세우고 차 비자(통과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전용버스가 멈춘 주경계의 마을어린이들은 버스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모여, 차창을 향해 손을 내밀며 볼펜을 달라는 몸짓을 한다.

여행을 떠나올 때,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준비해온 볼펜을 나누어 주었다. 더욱 많은 어린이들이 나타나 자신에게도 달라고 서로를 밀치며 아옹다옹 다툼질을 한다. 싸움질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뒤로한 채 주 경계를 떠나온 전용버스는 도중에 잠깐 세워놓고 볼일을 보고 또 달려왔건만 도착예정시간보다도 1시간이 늦은, 밤 10시경에 Clarks Khajuraho hotel에 도착하였다.

배가 고프니 우선 호텔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식사를 막 마치고 객실로 올라가려는데 “요리사, 둘리가 며칠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했어요. 옷을 갈아입히고 싶지만 갈아입힐만한 옷이 없네요. 너무나 지저분한데...”라고 푸념하는 인솔자의 말을 듣고 보니 여유 있는 옷을 하나 나눠주고 싶어진다.

객실에 들어가 준비해왔던 옷 가운데 좋은 티셔츠 하나를 골라가지고 나오니 필자의 친구, 이무수는 자기티셔츠를 하나 주고 싶다며 가지고 나왔다. 갑자기 2개의 옷을 얻은 둘리는 몹시 반가워하며 기뻐한다.

점심을 먹고 중간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볼일을 보면서 잠깐씩 휴식을 취하며 달려왔는데 무려 12시간이나 걸려 이곳에 도착했으니 어찌 피곤하지 않겠는가! 제아무리 피곤해도 샤워하는 일과 여행기록을 남기는 일은 빼놓을 순 없다. 모두를 마치고 나니 11시 반이다. 이제는 내일의 여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하겠다.

 

세계유일의 에로티시즘 유산, 카주라호의 사원들

 

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이레째로 접어드는 날, 이날은 아침 7시에 잠을 깨우는 전화벨소리가 울리고, 7시 반쯤에 아침식사를 하려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9시에 버스를 타고 출발하려는데 혼자 오신 신중술 님이 “카메라의 배터리 충전기를 출발할 때 준비는 했는데 빠트리고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의 여행을 망쳤다.” 고 표현을 하면서 몹시 언짢아한다.

그의 카메라를 살펴보았더니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캐논이다. 종류가 같은 카메라이기 때문에 배터리가 맞을지 끼워보았더니 다행히도 같은 배터리다. 마침 여유 있게 준비해온 배터리를 빌려주었더니 몹시 반가워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우리가 전용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서부, 동부, 남부의 세 사원군 중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 서쪽 사원군이다 .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미투나의 대부분이 서쪽 사원군에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주요 볼거리가 군집되어 있는 바라하 사원, 락쉬마나 사원,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 비쉬와나트 사원, 파르바티 사원 등이 있고 규모도 가장 크고 보존상태도 좋다.

이 사원들은 중앙 또는 남쪽의 다른 사원들과는 다르게 장구한 시간의 영화를 반영하지는 않았으나 950년부터 1,050년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건립되었다. 달의 신 찬드라와 과부 헤마바띠의 슬픈 사랑이 녹아있는 카주라호는 일찍이 9~13세기에 달의 신 찬드라의 자손이라고 한 찬델라왕국의 수도로 번성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이 사원의 기둥과 벽에 새겨진 미투나상은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드넓은 카주라호를 차지하고 있다. 몹시 궁금해진 것은 천 년 전 찬델라왕조가 어떤 연유로 이곳 사원에 낯 뜨거운 조각상으로 채워졌는가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 낯 뜨거운 미투나상이 새겨진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남녀 교합상을 보고 처녀인 천둥과 번개의 신이 부끄러워 사원을 부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또한 남녀 교합상은 요가를 수행하는 명상가들의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카주라호 사원이 행복과 종교적 감흥, 부유함, 천재적 예술성, 심미안적인 감수성에 대한 독특한 일치라고 말하고도 있지만 어찌됐던 이 사원들은 자칫하면 외설처럼 보일 수 있는 성적인 표현에 대하여 진정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세계유일의 에로티시즘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찬델라왕국의 수도로 번성했던 곳이 이제는 그때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초라한 농가들만 흩어져 있는 들판이 되었다. 그러나 전성기에는 85개의 사원이 수도 카주라호를 가득 메웠던 곳인데 지금 남은 것은 22개의 사원뿐이다. 그렇지만 요즈음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끊임없이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하여금 붐비게 된 것은 이들 석조사원의 외벽에 가득히 새겨놓은 부조상들 때문이다.

이들 조각은 돌에 새긴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하며 천녀(天女)상과 남녀 교합상들은 짙은 에로티시즘을 나타내고 있다. 성은 과연 진정한 의미의 삶의 찬미란 말인가?  지금 막 살아 움직이듯 지금 막 옷을 벗고 있는 조각에서는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사랑의 본성이 꿈틀거리고 사랑의 춤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사랑에는 성의 구별조차 없는 듯 둘이 하나가 되고 만다. 이런 미투나상들은 사랑의 힘으로 스스로의 악마를 물리친다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풍만한 젖가슴과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엉덩이, 잘록한 허리 그리고 매혹적인 눈매로 저마다 각각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듯 보인다. 아름다운 조각상에 이끌려 사원내부 깊숙이 들어가면 미투나상은 더욱 더 노골화돼가고 있다. 마치 조각상들이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살아날 것만 같은 형태다.

비쉬와나트 사원은 비쉬누신에게 봉헌된 사원이다. 이사원은 서부 사원군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다.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느라고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사진작가이신 이우석 님은 좋은 작품사진을 찍을 일념으로 필자의 아내, 이경자 여사를 모델로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열심히 촬영을 한다. 다른 일행들이 밖으로 나가 기다리는 동안도 작품사진촬영은 계속되었다.

비쉬와나트 사원의 가까운 곳에 자리한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은 비쉬와나트 사원과 비슷한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40m가 넘는 첨탑이 솟아 있는 이 절은 시바신의 절이라 본당 중앙에 링가를 모셔놓고 있다. 카주라호에 남아있는 절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그 뒤쪽에는 데비 자가담바 사원이 있는데 찰싹 달라붙어 있는 시바신과 바르바티여신의 입상이 놀랍다. 락쉬마나 사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춤추는 요정인 압사라이다. 마치 신화 속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섬세한 형상이 일품이다.

이 외에도 군악대를 동반한 말과 코끼리의 행렬을 새긴 조각은 당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단 부분에는 작은 미투나 상들도 늘어서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말과 성행위를 하는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여자의 상」이다. 상상만으로도 엽기적인 조각품일 거란 짐작이 들지만 워낙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