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13)-인도인의 삶과 죽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1. 19. 06:08

 

  바라나시의 갠지스의 일출 광경

  바라나시의 갠지스의 일출 광경

 바라나시 갠지스강가의 가트-새벽경치                                                                         

 바라나시 갠지스의 새벽 광경

 바라나시 갠지스의 새벽 광경

바라나시 갠지스의 새벽 광경 

 

갠지스 강과 함께하는 인도문화

 

갠지스 강을 인도어로는 강가(Ganga), 한자로는 항하(恒河)라 한다. 본류는 연장 3000㎞로서 오랜 문명과 인구밀집 등 문화적 의의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큰 강이다. BC 1500년 전후에 인더스 강 상류로 침입한 인도·아리아인은 BC 1000년 무렵에는 갠지스·야무나의 두 강을 중심으로 하는 갠지스 강 중류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베다(Veda)라는 종교문헌을 만들어 복잡한 제사(祭祀)지내는 체제(體制)를 갖추어 나갔다. 후세 인도사회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베다의 사상·문화는 이 갠지스 강 중류지역의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성립한 것이다. 습윤하고 비옥한 이 지역에서는 농업생산이 증대하여 상업발달을 촉진하고 도시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인도의 거의 대부분을 처음으로 통일한 마우리아왕조는 하류지역의 중심도시인 파탈리푸트라(현재의 파트나)로 수도를 정하였으며, 인도 고전문화의 절정기를 이룩한 굽타왕조도 이곳을 수도로 하였다. 12세기 말에는 구르왕조가 갠지스 강 유역을 점령하여 이곳에는 이슬람교도에 의한 인도지배가 시작된다.

남인도의 문화 또한 갠지스 강 유역문화의 수용과 반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인도의 역사·문화는 갠지스 강 유역을 무대로 전개되었다.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물과 하천이 신앙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갠지스 강은 여러 하천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되었다. 갠지스 강에 대한 신앙은 이 강이 원래 「천상계(天上界)를 흐르고 있었던 성스러운 강」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강의 언덕에는 무수히 많은 성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하르드와르·바라나시·알라하바드가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 성지에는 가트(ghat))가 설치되어 있으며 목욕으로 죄장(罪障)을 씻어 없애버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갠지스 강에서의 목욕은 힌두교도들에게 지고의 기쁨인데 만약 갠지스 강의 언덕 부근에서 죽고 화장되어 유골과 재가 갠지스 강에 흘러간다면 그것은 진정 최고의 기쁨이었다.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고대에서는 육로보다도 수로 쪽이 보다 안전하고 용이한 교통수단이었으며 통상로는 하천을 따라 발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투라와 사르나트의 불상도 또한 갠지스 강을 이용하여 운반되었다. 서부 히말라야 산중의 강고트리 강에서 발원하는 많은 지류를 모아 벵골 만에 이르게 하는 갠지스 강은 자연을 풍성하게 하고, 많은 사람을 키워 사람들은 갠지스 강을 『어머니 강가』라 부르며 숭배하고 있다.

 

인도인의 삶과 죽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여행을 시작한지 엿새째 되는 날, 아침은 5시에 일어났다. 서둘러 강가의 해돋이를 보러 5시 반에 전용버스를 타고 모두 나간다. 「성스러운 도시」로 잘 알려진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중요한 성지이다.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갠지스 강은 힌두 교인들에게도 불자에 있어서도 매우 종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수많은 사원, 주변을 연기로 채우는 화장가트 등이 갠지스 강 연안을 따라 자리 잡은 힌두교 7대 성지 중의 으뜸으로 꼽히는 인구 100만의 옛 도시이다. 이곳은 기원전부터 산스크리트로 알려진 고도로서, 후에 바라나스 또는 네나레스 등으로 불렸다. 연평균 100만에 달하는 순례자가 끊임없이 모여들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게 되는데, 이 순례자들을 위해 갠지스 강 강변에 약 4km에 걸쳐 가트라는 계단상의 목욕장이 마련되어 있다.

바라나시 시내에는 크고 작은 힌두교사원이 빽빽이 모여 있어서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들 사원 중 비셰시와르는 골든 템플이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사원이다. 이곳은 힌두교뿐만 아니라, 시크교와 자이나교, 불교 등의 성지여서 종교적 색체가 물씬 풍기며 시내에는 각종 수공예품이 관광객의 주머니를 가볍게 한다.

인도 여행에서 바라나시에 와보지 않는다면 인도에 왔다고 할 수가 없다. 더구나 바라나시에 와서 강가의 아침 해돋이와 저녁에 지는 해를 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만하다. 그만큼 인생의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성스러운 어머니의 강, 갠지스 강가에 오면 전율을 느낄 정도로 숙연해진다.

히말라야의 딸로 불리는 갠지스와 더불어 바라나시는 수천 년을 힌두 교인들에게 성스러운 곳으로 이어내려 온 역사적인 성지다. 그래서인지 힌두교도라면 일생에 한 번쯤은 반드시 순례 길에 올라 갠지스 강에 몸을 적시고 죄를 씻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내세에는 보다 나은 계급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강가에는 이미 수많은 주민들과 순례자들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도하고, 명상하고, 세수하고, 빨래하고, 물을 떠가고, 물을 마시고, 몸을 담그고, 손발을 씻고, 저마다의 동작으로 삶을 확인하며 수도자의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이 강가에서는 오직 동물로서의 사람과 소와 염소와 닭들이 함께 있을 뿐이며 부를 가진 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 백인과 흑인의 차별상이 모두 흘러가 버리고 마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20여명이 타는 배에 올라탔다. 갠지스는 찬미의 강, 이 강물을 사랑하는 인도사람들은 강물 속으로 들어가 온몸과 마음까지도 적신다. 남자들은 ‘나고다’라고 하는 성기만 가리는 팬티를 입은 채 강물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든다. 사리를 입은 채 물속에 잠기는 아낙네들과 갓난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등 너무 소란스럽다. 옷을 빨아 널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 손으로 떠서 마시는 물의 의식, 배탈조차 걱정 없다는 성스런 갠지스 강은 미쳐 있다. 신들에게 바쳐진 노란 금잔화가 둥둥 떠내려가고 까마귀와 비둘기가 강가를 어지럽게 난다.

강가를 점령한 두르가사원과 시바사원에서는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베풀고 있다. 강가의 서쪽기슭을 따라 한 60개쯤의 가트가 즐비하다. 이는 언덕에서 강물까지 계단으로 이어지는 제방으로 목욕하는 곳이지만 힌두교도의 화장터로 쓰이기도 한다. 뱃사공이 분주히 노를 젓고 있는 저 건너편에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니 그 황홀함을 무어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작은 배를 띄우고 꽃(금잔화)과 촛불, 그리고 또 다른 기념품을 파는 상인이 우리 배 가까이 대며 사라고 졸라댄다. 종이그릇에 담긴 금잔화와 촛불을 사서 물에 띄우니 하류 쪽으로 흘러간다. 아마도 띄운 일행의 근심걱정까지는 아니어도 여독을 풀어 건강한 여행길을 보장해 달라는 소원쯤은 들어줄 것만 같다.

바라나시 가트의 중심은 다샤슈와메드 가트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갠지스 강을 따라 노를 젓고 있는 뱃사공에게 인솔자는 북쪽으로 가자고 했다. 남쪽 화장터(Burning Ghat)에는 화장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 북쪽의 화장터에 시체가 타오르고 있는 불빛을 발견하고, 타고 있는 화장장의 모습을 일행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화장터는 북쪽과 남쪽 두 곳에 있는데, 북쪽은 나무로, 남쪽은 전기로 화장을 한다. 인도의 사진 가운데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로 화장하는 모습은 북쪽가트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 간 배를 북쪽화장터 가까이에 세웠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냥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필자를 포함한, 3명이 화장터 가까이 접근했다. 울긋불긋한 천으로 묶은 주검을 메고 와서 화장을 하고 있다.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휘발유를 뿌린 다음에 불을 질러 태우는 주변에는 유가족과 구경꾼, 소와 개, 심지어 염소들까지 뒤죽박죽 섞여, 모두 시체의 타들어가는 냄새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화장터에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잿빛 강물은 슬픈 눈물을 반가이 삼키고 내일이면 또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성스럽게 씻어주고 있으리라. 콘크리트 바닥에서 다 타버린 유해와 아직은 타다 남은 장작개비와 함께 강가로 씻어 내리니 한 생명이 유(有)에서 무(無)의 세계로 흘러가버리는 통과예식을 거쳐 윤회로부터 해탈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결코 좋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구경을 마치고 일행들에게 돌아가려하자, 우리와 함께 가까이에서 구경하던 현지인 2명이 우리에게 돈을 요구한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몇 마디의 설명을 덧붙였을 뿐인데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가 가야할 앞길을 막고 그걸 빙자해서 각자 5달러씩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할 수없이 다른 2명은 2달러씩을 그들에게 건넸지만 필자는 계속 쫓아오며 돈을 내놓으라고 졸라대는 그들의 요구를 끝까지 거절한 채 번잡한 시장 골목을 뚫고, 전설보다 오래됐다는 도시의 미로를 통과하여 전용버스가 기다리는 장소로 나왔다. 그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을 따돌리고 나온 것이다.

인도에서는 보상 없는 친절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과도한 친절은 보상을 요구하거나 그 이상의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으므로 인도사람이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어올 때 낌새가 수상하거나 느낌이 안 좋으면 정색을 하고 과감하고 단호하게 No! 라고 거절하는 게 좋다. 또한 인도인 중에는 그런 요구 없는 순수하게 친절한 인도사람들도 많으므로 상황과 사정을 봐가면서 적절하게 판단하여 대처하는 게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