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일주여행

발칸반도 일주여행(23)-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생생한 모스타르

달리는 말(이재남) 2015. 7. 7. 06:15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의 모습-모스타르)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의 모습-모스타르) 

보스니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떠나 모스타르로 가는 도중에 만난 네레트바 계곡 

보스니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떠나 모스타르로 가는 도중에 만난 네레트바 계곡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떠나 모스타르로 가는 도중에 만난 카페-양의 고기를 굽고있는 광경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양 민족의 화해의 상징인 모스타르다리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양 민족의 화해의 상징인 모스타르다리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양 민족의 화해의 상징인 모스타르다리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양 민족의 화해의 상징인 모스타르다리  

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의 모스타르-오스만 튀르크시대의 터키인들이 만든 거리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생생한 모스타르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스타리모스트로 가는 길에 이슬람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자갈길을 걸었다. 이 거리를「쿠윤드지르크, 터키인거리라고 한다. 이 거리는 1482년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기 시작해 이슬람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라 할 수 있다. 16~17세기에 모스타르는 소금, 올리브오일, 양모, 와인 등 교역의 거점이 되었고, 직물, 가죽공예 등의 터키직공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직공들의 공예품은 마을을 풍요롭게 해줬다는데 지금도 그 자취를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양식의 건물들은 현재 기념품, 수공예품, 내전 중의 군용품 등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점이 되었으며, 현지예술가들의 작업실 겸 화랑으로도 쓰이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돌로 된 지붕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목재가 부족해서 지붕기와를 돌로 짓게 된 독특한 형태의 전통가옥이란다. 터키인거리에는 유럽의 한가운데서 기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이슬람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서부에 있는 헤르체고비나지방의 중심도시이다. 인구는 약 13만 명으로, 카르스트지형의 모스타르평원 네레트바 강 양안(兩岸)에 발달한 동양풍의 인상을 주는 도시이었다. 7세기경부터 남슬라브 인이 정주하였다. 15세기 문헌에 의하면 오스만튀르크 지방장관의 거주지로 언급되어 있으며 1566년경 네레트바 강에 돌다리가 세워졌다.

그 돌다리,「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다리」는 모스타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이곳의 심벌이자, 500여년에 걸친 가톨릭과 이슬람의 두 종교의 평화와 공존의 상징이었다. 15세기 오스만튀르크제국이 이 땅을 점령했을 때도, 합스부르크의 점령 때에도 서로 이웃하며 평화롭게 잘 지내왔다.

그러나 1992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과 동시에 세르비아의 세력을 몰아낸 후 1993년 9월 모스타르전쟁으로 인해 이들의 완벽한 공존은 끝이 나고 두 종교 간에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공존의 상징이던 「스타리 모스트」도 무참히 파괴되었다. 무수한 총탄과 수십 발의 로켓에도 건재하던 다리는 보급로를 끊어 버린다는 명분하에 폭약이 설치되어 완전히 부서져버린 것이다.

스타리모스트는 신비한 에메랄드빛의 네레트바 강이 흐르는 18m 위에 놓여있는 아름다운 아치형의 보행자전용도로이다. 해마다 스타리모스트 위에서 다이빙대화기 열려 해외토픽에 단골로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이벤트가 되었다. 스타리모스트 위에서의 다이빙은 이 땅의 남성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자 자신감의 표현으로 매우 신성한 행위로 여기고 있다.

그런 스타리모스트가 전쟁으로 인해 부서지는 장면은 어느 카메라맨에 의해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그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다리가 파괴되는 모습은 세계문화유산의 파괴라는 비극의 상징이자 민족분단이라는 아픔의 상징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더 이상 전쟁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민족의 화합과 화해의 상징으로 각국과 유네스코의 총괄아래 세계은행과 유럽각국의 지원을 받아 터키의 건축가들에 의해 다리의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헝가리의 잠수부들은 파괴된 후 강 속에 매몰되어 있던 다리의 파편들을 건져 올렸고, 터키의 건축가들이 1088개의 돌을 재배치하여 다리를 재건하였다. 특이한 점은 설계도 없이 전통방식대로 재건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2004년 7월 23일에 열린 스타리모스트 재건기념식에는 영국의 찰스황태자 등 각국의 주요요인들이 참석하여 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알렸다.

다리 한쪽의 모퉁이에는「절대로 1993년의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가 보이는「Don't forget 1993」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서있었다. 우리는 이 다리 위를 걸어서 강 건너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 다리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제공할만한 장소를 물색해 여러 컷의 기념사진을 찍어뒀다.

특별히 다리 밑으로 잘 내다보이는 터키의 거리와 그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을 배경으로 아주 그럴듯하게 기념이 될 만한 작품사진을 찍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전쟁이 끝이 났고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여전히 그들 사이에는 미움이 존재하고 있다.

폭격으로 말미암아 초토화된 건물이 복구되지 않은 듯 무참히 파괴된 건물이 여러 채 보였으며 무수한 총탄과 수십 발의 로켓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건물들도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아프다. 어릴 적에 겪었던 전쟁이라지만 한국전쟁 후의 참상이 이보다 더 낫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프고 저려온다.

오후 4시35분에 모스타르를 출발한 버스는 5시20분에 크로아티아국경에 도착, 순조롭게 국경을 통과하였다. 아드리아 해변을 부지런히 달린 덕택에 7시에 두브로브니크의 Astarea hotel에 도착하여 626호실에 방 배정을 받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꽉 들어찬 어마어마하게 큰 레스토랑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즐기고 방에 들어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