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일주여행

발칸반도 일주여행(24)-크로아티아의 최대 휴양지, 두브로브니크

달리는 말(이재남) 2015. 7. 8. 05:59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안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안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곽의 전망창틀로부터 보이는 아름다운 전경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터로부터 두브로브니크(성과 주택가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유람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건축물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의 최대 휴양지, 두브로브니크

 

 

여행을 시작한지 이레째 되는 날,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는 보슬보슬 비가내리는 가운데 설명을 듣고 캠코더의 사진촬영을 하려니 우산이 걸림돌이 되어 여간 귀찮고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몹시 피곤했나보다. 오늘아침식사는 간단하게 하기는 했지만 요구르트가 맛이 있어 두 개나 먹고 오렌지도 달고 맛있어 3개나 가져다가 나누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아드리아 해변을 중심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젯밤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을 때 인솔자의 설명이 있기는 하였으나 8시 30분에 새로운 전용버스로 갈아탔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지리에 밝은 크로아티아인의 운전기사, 치비에터 라고 본인의 소개를 하고 그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달마티아 남부의 아드리아 해에 접하고 있는 도시로서, 크로아티아에서는 가장 인기가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약 5만 명이 살고 있으며 고대로부터「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부른다. 일찍이 베네치아공화국의 주요거점이었던 13세기부터 지중해에서 중심도시였다.

이 도시는 신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살아서 함께 숨 쉬는 인간의 역사를 증언하는 상형문자이면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삶의 공간이자 삶의 현장이다. 필자는 이 도시를 여행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역사와 문화, 삶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베네치아사람들이 쌓아놓은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여기에서 달마티아(크로아티아어: Dalmacija)는 아드리아 해에 면한 크로아티아의 지역이며, 과거 로마제국의 속주였다.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보고 있으며 자다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등 유명관광지가 이 지역에 속해있다.

「유럽문명의 상징」이며 「진정한 낙원」이라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두브로브니크는 시가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시간의 흐름을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건축물은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보존되어있는 건축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다.

이 도시는 1557년 지진으로 인하여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으며 구시가지의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은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 건립된 해변의 웅장한 시티 월(City Walls)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그때의 파편 등이 곳곳에 남아있기는 하다. 그때 당시 이곳으로 달려와 인간방패의 역할을 해준 유럽의 수많은 학자들이 없었더라면 이곳에는 오로지 폐허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1990년에 훼손된 것을 1991~1998년 사이에 세계문화유산을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또한 이 도시는 돌출된 바위지형의 도시로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랐으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크로아티아에서 유일하게 값진 독립을 계속 유지해왔던 지역이다. 고대로부터 바다를 이용한 해양산업 때문에 시의 문명화가 이루어졌다. 이 두브로브니크는 강한 방위 벽으로 둘러 쌓여있고 관공서와 광장, 좁은 중세거리의 주택들은 로마와 고딕스타일을 띄고 있다.

또한 과학을 비롯하여 모든 분야의 학문과 예술이 이 도시에 번영하여 이곳학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로 진출하여 이 지역의 높은 학문수준과 유럽문화를 전파하였다. 버스에 탑승한 우리를 10분 정도 달려 두브로브니크의 성 입구 즉 구시가의 관문인 필라 게이트의 정문근처에 내려놓았다.
일단 성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구 시가지를 걸어서 둘러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구 시가지는 보행자에게는 천국처럼 느껴진다. 서쪽문인「필라 게이트」를 막 통과하니 안쪽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문 안쪽으로 들어서니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브라이세(Blaise)」조각상이 위로 올려다 보였다.

1460년에 지어진 것으로 이문을 통과하니 드디어 구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중세의 어느 도시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진과 자연재해, 전쟁과 폭격으로 인한 수많은 복원을 통해 완성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옛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안으로 들어서서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오노프리오의 분수(Onofrio Fountain)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