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일주여행

발칸반도 일주여행(19)-국경마을로부터 달려온 사라예보

달리는 말(이재남) 2015. 7. 1. 07:17

 

보스니아 사라예보 제1차 세계대전이 되었던 비극의 현장 라틴다리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모습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모습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모습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모습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인사동 골동품상점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인사동 골동품상점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인사동 마을

 

국경마을로부터 달려온 사라예보

 

3시간 정도를 달리니 국경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르비아 출국수속을 마치고 국경인 드리나 강을 건너 보스니아 입국관리소를 통과하였다. 그리고 또 사라예보를 향하여 열심히 달렸다. 도로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해발 1000m 이상의 도로를 3시간 이상 더 달렸다. 사라예보는 산악도시라서 도시의 길이가 길다.

사라예보에 도착하자마자 레스토랑으로 직행, 저녁식사를 마치고도 또 20분을 달려 11시쯤Exclusive hotel에 도착했다. 시설이 깨끗하고 훌륭하다. 그런데 웬 칸막이 침대람? 여행하느라고 피곤하니까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오로지 잠만 자란 뜻인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럽서남부 아드리아 해 연안에 있는 나라로서, 북부 보스니아(Bosnia)지방과 남부 헤르체고비나(Hercegovina)지방이름의 합성어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동쪽 및 남동쪽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북쪽과 서쪽은 크로아티아와 접해 있으며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이 나라는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전 영토의 51%)과 세르비아인 중심의 스르프스카 공화국(49%)으로 사실상 양분되어 있다. 1992년 4월 5일,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한때는 보스니아내전으로 고난을 겪었다.

주민은 세르비아인 40%, 보스니아사람이 38%, 크로아티아인 22% 기타(유대인, 터키인, 아랍인) 등이다. 각각의 민족은 크게 보면 남슬라브계의 근연종족이나 정치, 종교와 역사적인 전통에 의한 대립으로 각각의 민족으로 갈렸다. 언어는 공용어가 보스니아 어, 크로아티아 어, 세르비아 어이다. 남슬라브 어에 속하는 이들 언어는 언어학적으로는 동일언어의 방언들이나, 현재는 정치적 대립에 의하여, 각각 별개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보스니아 어, 크로아티아 어는 로마자, 세르비아 어는 로마자, 키릴문자를 모두 사용한다.

보스니아인은 로마자 사용 전에 종교적인 이유에서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아라비아문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 언어는 정치적 상호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상호배타적인 방향으로 급속하게 분화하는 중이다. 보스니아인은 이슬람교, 크로아티아인이 로마가톨릭, 세르비아인은 정교회를 신봉한다.

이곳은 동서양의 분쟁이 시작된 이래로 기독교와 모슬렘, 그리스정교로 인한 가장 그 분쟁의 중심이 되었던 지역이며 잠시 동안이지만 다문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1992년 독립을 위한 투표가 있은 후, 보스니아계 세르비아인들은 연방군과 세르비아 군을 통하여 이런 사회를 무너뜨렸다.

그 결과 이슬람 계 슬라브 민족과 그리스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들은 서로 분리되게끔 하였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모든 경제기반이 무너지고 경제는 추락했으며 수백만의 피난민들이 생겼다. 이러한 상처들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곧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만의 특별한 조르지오 사라예보를 중심으로 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로서, 인구는 36만 명 정도이다. 보스나 강의 지류인 밀랴츠카 강가의 해발고도 약 590m에 있다. 사라예보에는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이 많다. 로마군의 주둔지였고, 목욕탕자리 등의 유적이 있다. 15세기에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그 군사·상업상의 거점이 되어 번영했다.

세르비아인에 의한 반 오스트리아민족주의 운동이 높아질 때, 사라예보는 그 중심지가 되었으며,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부부가 암살된 사라예보사건이 발생하여 제1차 세계대전발발의 계기가 되었다. 공업은 담배·융단·통조림·비누 등 경공업이 중심이다. 로마가톨릭의 대주교좌, 동방정교회의 대주교좌, 이슬람사원이 공존하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문화권이 접하는 지역으로서의 특성을 나타낸다. 주민의 35%는 이슬람교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