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명루각 항주오산의 성황각
중국 4대명루각 항주오산의 성황묘의 주신의 동상
중국 항주 송성가무쇼장 민속촌의 이모저모
중국 10대 명승지의 하나 항주서호유람선(금산사)
중국 항주의 용정차밭
역사적인 도시, 항주(杭州)
중국 남송의 수도였고, 백낙천과 소동파의 시정이 어린 낭만적인 물의 도시, 항주는 2,200년 전 진나라 때 건립되었으며, 중국의 7개의 고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시 지역에는 7,000년 전의 중국 신석기시대에는 양주문화의 발상지이며, 벼농사 유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인 신석기 문명의 대표유적인 하모도 문화(河姆渡 文化) 유적이 있다.
중국 7대 고도로 꼽히며, 그 기원은 진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항주에 성벽이 쌓여진 것은 591년 수나라(隋) 때이다. 또한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대운하를 이용한 상업망이 발전하였고, 항주의 거리도 번창해 갔다. 이 도시는 점차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9세기부터 237여 년 동안 14명의 황제가 항주를 수도로 선택했다.
907년~978년까지 5대 10국 시대에도 오.월국(吳.越國)의 수도가 되었고, 서호도 그 당시 이름이 지어졌다. 10세기에는 난징과 청두와 함께 남송의 위대한 문화의 중심지였다. 12세기 전반에 북송의 수도인 개봉이 금나라에 의해서 함락되고 나서는, 남송이 임안(臨安)부를 두어 실질적인 수도가 되었다.
남송 초기, 금나라에 대해서 강경책을 주장한 악비의 무덤이 있다. 항주는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까지 남송의 수도였고, 임안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쪽으로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중앙의 중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주는 중국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남송이 원나라에 멸망되면서, 몽골제국이 구축한 육상 네트워크와 해상세계를 묶을 수 있고 교역을 통해서 한층 더 발전을 이루었다. 그 번영성세는 마르코 폴로가「동방견문록」으로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으로 거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많은 역사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인, 문인이 이곳에서 배출되었으며, 소식(??) 등의 대문호가 배출되기도 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항주는 역사적인 고도이다. 쓸개를 가지고 다니며 인내와 고통을 감내하며 복수의 의지를 다지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명한 고사성어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이곳 항주가 바로 월나라의 수도였다.
그래서 역사적인 유물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오늘 처음 들를 곳이 바로 성황각. 이곳은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바로 성황당이라 할 수 있다. 항주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 절강성(浙江省 : 저쟝셩)의 성도(省都)로서 중국 동해변에 위치하며 인구 435만의 풍요로운 곳이다.
연해에 200개 이상의 섬이 흩어져 있어서 가장 섬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며 아열대에 속해 날씨가 따뜻하고 사계절이 분명하다. 또 절강성에는 산이 많고 중앙에 전당강이 흘러서 많은 볼거리들이 형성되어 있다. 성도인 항주는 소주와 함께 중국 제일의 관광도시로서 항주의 서호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따뜻한 기후와 많은 강수량 덕택에 절강성은 항주의 용정차를 비롯한 녹차의 재배지로도 유명하며 그 생산량도 전국 제일이다. 이 밖에 뽕의 재배도 성하며 비단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또한 항주는 중국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수려하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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