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주여행

이탈리아 일주여행(18)-피렌체를 향하여 달린 전용버스

달리는 말(이재남) 2014. 7. 29. 05:30

                                                             

 이탈리아 피렌체 꽃의 성모 마리아(두오모)성당

 이탈리아 피렌체 꽃의 성모 마리아(두오모)성당

 이탈리아 피렌체 꽃의 성모 마리아(두오모)성당

             이탈리아 피렌체 단테 생가의흉상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언덕)                                                           


 

                                                                  피렌체를 향하여 달린 전용버스


여행을 시작한지 나흘째 되는 날 아침 6시 30분, 잠에서 깨어 7시 10분쯤 호텔 밖으로 나갔다. 훌륭하게 잘 꾸며진 호텔주변공원을 걷고 있노라니 주민들은 산책을 하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거니는 아낙네 등 한가로운 공원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필자부부도 산책을 하면서 몇 장의 기념사진을 건졌다.

7시 30분에 호텔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윤희진양의 말이 생각나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는데 몇 사람이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다. 8시 30분에 몬테카테니를 떠난 전용버스는 피렌체를 향하여 달리며 염려했던 그대로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 때문에 교통체증을 일으켰다. 피렌체의 체크포인트라는 곳에 도착, 화장실을 방문하게 됐는데 2인이 1유로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1인당 1000원을 지불하고 소변을 보고 나온 셈인데 유럽인들은 짠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라를 구경하려고 온 우리 같은 나그네들에게 이렇게 짠돌이 노릇을 해도 괜찮은 것일까?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유명한 도시다.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거리 곳곳에 화려했던 르네상스시대의 꽃피웠던 자취를 드리우고 있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만 하더라도 피렌체는 유럽문화의 중심지역할을 했었다.

「꽃의 성모마리아성당」 즉 두오모 성당 앞에 도착하여 가이드 김성현씨를 만나 성당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성학공부를 하려고 이곳에 왔으며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교직에 몸담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좌절되었단다. 지금은 로마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전공했던 성학을 이용, 세계적인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한국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된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지금도 유학생비자로 살아가고 있단다. 필자는 2000년 여름에 방문했었던 피렌체를 9년 만에 다시 찾아온 셈이다.

이곳 피렌체는 그때나 다름없이 정답게 필자를 맞이하고 있다. 피렌체는 토스카나 지방이 1569년 이후 19세기에 이탈리아왕국에 병합되기까지 토스카나공국의 중심지였다. 피렌체의 부흥은 14세기부터 18세기사이에 이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을 뺀 채 결코 이곳 피렌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메디치가는 이곳에서 금융업으로 성공, 정계로 뛰어들었으며 그 후손들은 개인재산을 시정에 헌납하고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였다.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때에 피렌체와 메디치가의 최고의 번영을 누렸으며 그의 뛰어난 외교적 수완으로 피렌체가 이탈리아정치의 중추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가 피렌체의 르네상스문화의 꽃을 활짝 피운 시기로서 지성과 교양을 다양하고 폭이 넓게 가졌고 철학에도 더욱 관심을 가졌다. 메디치가의 자손들은 토스카나공국의 대공이 되었고 레오 10세, 클레멘츠 7세를 위시한 4명의 교황을 배출하게 되었다. 거리를 걷다 보니 르네상스시대의 찬란한 꽃을 피우게 했던 메디치가의 문장인 백합꽃과 환약의 무늬와 장식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