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주여행

이탈리아 일주여행(19)-피렌체 출신의 유명한 인물들

달리는 말(이재남) 2014. 7. 30. 05:31

                                                             

이탈리아 피렌체 단테 생가의 흉상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언덕)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                                                                                     

 

피렌체 출신의 유명한 인물들



피렌체 출신의 인물은 시성인 단테와「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 천문학자였던 갈릴레이,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가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서 피렌체에는 13~15세기의 예술작품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그 중심지로서 피렌체를 상징하고 있다. 두오모는 대성당이란 뜻으로 영어로는 돔(Dome)이란 말과 같고 이탈리아의 큰 도시마다 두오모 성당이 있다. 두오모는 그 상징성이 커서 도시를 계획할 때 그 시의 가장 중심에 두오모를 짓고 그 주변에 관공서와 광장, 상가를 짓도록 하였다. 도시가 발전을 하게 되면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야 하는데 피렌체의 경우 신축을 엄격히 제한하고 증축도 제한해서 거의 보수만 가능하다고 한다.그 때문에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니 필자처럼 구경 온 나그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 있겠으나 이곳에 사는 피렌체의 시민들에게는 많은 불편이 뒤따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피렌체 두오모의 크고 둥근 지붕은 1437년에 완성되었으며 463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피렌체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둥근 지붕의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어릴 때부터 예술적인 재질이 뛰어나 일찍이 메디치가의 눈에 띄었고, 메디치가문의 수양아들 역할을 하면서 살았다. 로마와 피렌체를 오가며 메디치가와 교황의 사역에 평생을 봉사하며 늘 독신이었다. 자손을 남기지 않은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그가 그린 모든 그림이 자기의 자손이라고 말했다한다. 그의 그림은 포즈와 자세에 따라 인체의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이는 그가 그린 그림을 그리기위해서 인체의 해부학까지 공부를 했다고 전해진다. 피렌체의 고적 곳곳에 그의 작품들이 남아있지만 그가 그린 로마바티칸의 시스틴교회의 천정화,「천지창조」에서「술에 취한 노아」에 이르기까지 창세기의 아홉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프레스코기법을 사용하여 그린 이 천정화는 그 규모가 커서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겠으나 조수역할을 맡을 사람마저 사양한 채 4년 동안을 오로지 혼자서 그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25년 후 메디치가출신인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의뢰를 받고 같은 교회에 대형벽화「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을 그렸다.그런데 이 그림의 마리아와 예수님 등 성자와 성녀들을 나체로 그려 화제가 됐었다. 1564년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그가 여든아홉 살의 나이로 죽기 한 달 전 그의 제자 볼테리에에 의해 누드의 요부에 가리개를 씌우는 극히 적은 부분만을 변형시켰다. 그는 고딕양식의 피렌체 산타크로체교회 안에 갈릴레이 등 역사적인 인물들과 함께 안장되어있다.피렌체의 또 다른 명소로는 우피치(Uffizi)궁전이 있다. 1574년에 완성되었으며 처음에는 메디치가문의 사무실로 사용되어왔으나 메디치가가 수집하여 소장했든 미술품과 함께 시에 기증되어 지금은 르네상스시대 거장들의 걸작 품들이 전시되어있는 미술의보고이다.보티 첼리의「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성가족」, 라파엘로의「방울새의 성모마리아」등이 전시되어있다. 불후의 명작「모나리자」를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 토목, 건축가였을 뿐만 아니라 인체해부, 천문, 수학, 과학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때 당시의 지성인으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어 만능의 재인「르네상스인간」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그는 평생을 통해 비록 20개의 미술작품 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후세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남겼다.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텔레그라치 교회에 있는 그의 작품「최후의 만찬(Last Supper)」벽화는 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고대 그리스 로마문화를 이상으로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서 인간성이 상실된 중세사회의 암흑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 했었다. 학문과 예술의 부흥운동 즉 르네상스는 전 유럽으로 확산시킨 르네상스의 진앙 지인 피렌체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