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여행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의 여행(20)-고대 실크로드의 주요 오아시스 도시, 메르브

달리는 말(이재남) 2013. 8. 13. 22:09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 (키즈 카라에서 바라본 술탄산자르의 무 덤)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기념사진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의 에르크 칼라에서 바라본 마을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에르크 카라)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에르크 카라)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유적지 메르브의 키즈 칼라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의 동쪽 30km 거리에 있는 메르브 유적지에서 만난 낙타

 

 

 고대 실크로드의 주요 오아시스 도시, 메르브 

 

 

행복한 밤을 지낸 여행 엿새째 되는 날, 마리의 아침은 6시 반에 기상했다. 식사를 마치고 8시 반에 가방을 챙겨 호텔을 출발하였다. 20분쯤 달려 바이람 아리라는 곳을 지나가는데, 이곳은 기후가 좋아 생활하기가 적합한 지역이란다.

그래서 이 바이람 아리는 많은 요양원이 있고 나이가 들면 이곳 요양원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많다. 필자는 고대 실크로드의 주요 오아시스도시였던 메르브(MERV)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바이람 아리 부근에 있는 도시의 터, 마르기아나의 중심 도시 메르브의 유적지가 있다.

메리브는 "떠도는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다. 도시전체가 한 곳에 층층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朝)대마다 인근에 새로운 터를 잡고 도성을 형성하곤 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시대의 성터가 성벽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성벽 전체의 길이는 무려 230km에 달한다.

그 드넓은 부지에 고대부터 중세까지 5개의 조대가 번갈아 자리를 잡았다. 이 도시는 실크로드, 즉 중국을 아라비아와 지중해연안 유럽과 연결해 주었던 서로 교차하는 여러 개의 동서양 간 실크로드 위에 서 있었다. 실크로드는 선사시대부터 존재했으며, 이 길을 따라 무역량이 증가하면서 메르브의 중요성도 커져 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란, 그리스, 터키, 중앙아시아 출신의 서로 다른 여러 지배자들이 메르브를 다스려 왔다. 이 도시의 역사는 길고도 복잡하다. AD 813년부터 818년까지, 칼리프 알-마문이 메르브에 잠시 머무르면서 이곳을 무슬림 세계의 실질적인 수도로 삼았던 짧은 시기가 있었다.

이후 1145~1153년의 메르브는 한동안 2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여겨졌다. 1794년에는 약 10만 명에 달했던 전체 주민이 보크하라의 에미르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도시의 쇠락은 계속되었고 메르브의 주인이 계속 바뀐 끝에, 1883년 러시아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메르브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것은 고대유적 발굴 작업이 일찍이 1890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메리브는 1890년대에 조사가 시작됐으나 본격적인 조사는 1946년 이래 미하일 마손에 의해 행해졌다. BC. 1000년대 중엽에 일어나 파르티아시대와 사산조 초기가 전성시대로 성벽에 둘러싸인 지역은 60나 된단다.

그 후 흥망성쇠를 거듭하여 11~13세기에는 셀주크제국의 수도, 또는 호레즘 샤국의 주요도시로 번영했으나 19세기에 폐허가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메르브는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중계지점에 위치하며 2500여 년간 번영해왔다. 11~12세기 터키계 셀주크시대의 수도로서 "고귀한 메르브"란 존칭까지 받을 정도로 이슬람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 이었다.

그러나 1220~1221년 몽골군의 무자비한 유린을 당했다. 몽골군은 성문을 열면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6일 동안에 엄청나게 많은 주민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이후로 여러 팀의 고고학자들이 수차례의 발굴 작업을 해왔다. 메르브 정착지는 현재 39㎢ 이상의 넓이에 걸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