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북해도 일주여행

일본 본토와 북해도 일주(24)-오사카의 번화가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26. 18:21

 

 오사카의 모습

 먼 곳에서 바라본 오사카성

 오사카의 건물들

 오사카의 건물들

 오사카의 신사이바시

 여러 가지 모습의 오사카성

 여러 가지 모습의 오사카성

 여러 가지 모습의 오사카성

여러 가지 모습의 오사카성

 

오사카의 번화가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

 

오사카성의 주차장에 세워둔 전용버스를 타려고 20분가량 걸어 나간 일행을 태운버스는 곧 오사카의 번화가인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로 향하였다. 「도톰보리」는, 도톰보리 강 남안을 따라 형성된 번화가를 말한다. 「사치하게 먹고 마시다가 재산을 탕진하는(구이다오레) 거리」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음식점과 오락시설이 있으며, 오사카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꼭두각시인형 연극인 「분라쿠」와 대중 예능인 「요세」등의 전통예능을 상연하는 극장 외에 영화관도 많이 있다.

도톰보리는 오사카의 얼굴로서, 국내외의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양편에 화단과 분수를 설치하는 등 번화가로서의 환경정비도 잘 되어있어, 언제나 관광객과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도톰보리 강의 양편에는 옥외광고와 네온이 즐비하며, 건물의 벽 전체를 형형색색의 네온이 장식하고 있다.
우리가 이곳을 지날 때는 이미 어두워져 옥외광고와 네온이 즐비하며, 건물의 벽 전체를 형형색색의 네온이 장식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라이트로 화려한 간판과 네온불빛이 도톰보리 강에 반사되어 그 화려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도톰보리 강변에서 남쪽으로 한 블록 들어간 거리에는, 17세기에 세워진 호우젠 절이 있다.
절 앞에는 제등이 매달려 있어, 저녁 무렵에는 오렌지색의 엷은 불빛으로 물들인다. 돌 블록도로가 이어지는 호우젠 절의 앞거리는 「호우젠지 요코쵸」라고 불리며, 17세기 에도시대를 연상시키는 격자문의 아름다운 상점들이 들어서있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도톰보리를 지나 신사이바시로 들어섰을 때는 길거리가 미여질 정도로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다. 신사이바시는, 오사카 제일의 쇼핑지역으로 수많은 부티크와 전문점이 모여 있어, 항상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신사이바시는 신사이바시스지 상점가라고 하는 아케이드 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곳에는 대형백화점과 노점, 서민적인 상점들이 길게 들어서 있다. 돌 블록 보도에 영국풍의 가로등·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선 스오우마치 거리는 엘레강스한 분위기가 있어 이 일대를 「유럽촌」이라고도 부른다. 신사이바시의 서쪽 부분은 「아메리카 촌」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개성적인 일러스트가 페인트로 그려져 있는 벽이 심벌이 되고 있다. 아메리카촌에는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 취향의 캐쥬얼한 상점들이 많이 모여 있어, 유럽 촌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이다.

지역별로 개성적인 거리풍경을 보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웠다. 신사이바시에는 음식점도 많아 일본요리를 비롯하여 중국, 한국,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등 다양한 국가와 지역의 음식 맛을 즐길 수도 있다.

신사이바시의 중앙을 지나는 「미도우 거리」는, 우메다를 중심으로 하는 북쪽의 번화가와 신사이바시·난바 일대의 남쪽 번화가를 잇는 오사카의 중심가이다. 우리부부는 이 미도우 거리를 걸으면서 구경을 했다. 우리 일행 가운데 이 거리에서 쇼핑을 하는 이도 눈에 들어온다.
1시간가량의 자유 시간에 걷기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일행은 약속된 장소에서 9시에 김희정씨와 만나서 우리를 기다리며 서있는 전용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오사카프라자호텔에 도착하여 833호실에 check in하여 샤워를 하고 여행이야기를 쓰고 났더니 11시가 다돼간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하니 잠자리에 들어야 하겠다.

 

일본인의 연회

 

일본사람들의 연회는 지역공동체의 제사와 관련해 신에게 음식을 바치는 동시에 혈연, 지연이 모여 음식을 먹는 즉 신과 사람이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연회가 열리는 것은 관혼상제나 연중행사 때이며 이때에 한해서 평상시에 쓰이지 않는 술과 생선 등의 많은 반찬이 제공되어왔다.
또한 보통 때의 밥과는 다른 떡, 경단, 우동 등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연회 때 특별한 날과 평상시의 음식을 명확하게 구분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서민에게는 일상이 가혹한 노동이고 더욱이 변변치 못한 식사의 연속이므로 연회 때에는 마음껏 욕구를 충족시키며, 평소의 고생과 억압되었던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폭음폭식을 할 정도로 음식을 먹고, 누구나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하레와케는 서민생활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메이지시대에 들어와 인구의 이동이 잦아지고 사회조직의 개혁과 변동이 추진되면서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자 연회는 더욱 빈번해졌다.

기존의 지역공동체 연회 외에도 관청, 학교, 군대, 회사 등 각종 단체에서 친목, 위로, 환송회, 망년회가 열리고, 사원이나 고객에 대한 접대와 향우회, 동창회 등도 활발해졌다. 1920년대에는 양식연회가 도시의 중류계급으로도 퍼지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결혼피로연으로 호화로움을 강조하는 동시에 일정한 예절을 지키면서 절도 있게 진해되었다. 이 밖에도 리셉션형식의 서서 먹는 파티, 간단한 중화요리 중심의 연회, 온천여관 내에서의 사원여행 연회 등이 유행했다.

이러한 연회문화는 전후의 경제발전에 의해 더욱 다양해지고 형식화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연회가 끝난 뒤에는 집단의 일체감을 더욱 추구하는 형태로 친밀도에 따라 소집단으로 나뉘어져 2차나 3차 모임을 갖는 습관이 생겨났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드라이한 감각을 지닌 젊은 세대들은 사교적인 교제나 술을 거부하고, 일과 사적인 시간을 철저히 구분하며 가정을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지고 있다. 즉 탈 연회적인 경향이 확대되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이 희박해지고 공동식음에 의해 유사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음을 시사 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