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북해도 일주여행

일본 본토와 북해도 일주(11)-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당, 도쇼구(東照宮)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26. 17:56

 

 닛꼬의 동조궁입구

    닛꼬의 동조궁입구

    닛꼬의 동조궁입구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 

    닛꼬의 동조궁의 가마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원숭이조각

 

 

일본인들의 식사예법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식사예법에는 제사음식에서 만들어진 예법, 공동체나 가족제도의 질서에서 온 습관, 옛 문헌에 의한 향응예식, 불교의 식사법, 다도나 회의식(가이세키) 요리 등에서 만들어진 예법 등이 있다. 식사 때가 되면 먼저 불단이나 집안에서 신을 모시는 신단에 음식을 바치고, 가장은 특별한 장소에 앉는다. 가장 좋은 그릇을 사용하고, 때로는 특별한 반찬이 놓여지기도 하며 가장 먼저 젓가락을 집는다.
부재중일 때에도 가장의 밥상은 차려지며 이것은 가장에 의해서 식사가 주어진다는 것을 암암리에 가르치는 것이다. 식사예법이라는 것은 생활의 체계나 풍토와 결부되어 있으며 또한 오랜 역사에 걸쳐 배양된 전통규범이 뿌리 깊이 깔려 있기 때문에 좀처럼 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화한 것 또한 적지 않다. 음식물을 남긴다거나 주어진 음식에 불평하는 일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며 식량이 풍부해지고 고도의 공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농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또한 가족제도 내에서의 부권이 후퇴하고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영향력이 커짐으로써 전통적인 식사예법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식사예법이 달라진 데에는 식사장소가 서양화된 영향도 크다.

현재 일본주택의 식당은 일반적으로 의자와 테이블식인데, 여기에는 상석과 하석의 구분이 없으며 전통적인 가장의 자리라는 의미가 퇴색한 것이다. 정좌해서 먹는 일이 거의 없고 예의범절도 번거롭게 따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란한 가정이라는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식사를 한다. 즉 묵묵히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식으로 담소하면서 즐겁게 먹고, 또한 이것이 부모자식의 대화라는 가정교육상의 관점에서 중시되어 가부장적인 권위나 설교 같은 것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당, 도쇼구(東照宮)

 

일본 전통종교인 신도의 중심지로 에도막부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닛코주변은 옛날부터 신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절과 사원들은 17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특히 화려한 장식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건축학적으로는 물론 높은 예술적 가치와 정교함 그리고 창조적인 장식등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세 마리의 원숭이 조각상은 특히 유명하다. 그리고 요우메이몬(門)에는 전설적인 동물들인 용, 사자 300여개의 동물둘이 새겨져있다.

니코지역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신도와 관련이 깊어 이지역의 산과 숲은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산악경관, 나무, 바위들 또한 이 지역을 구성하는 뛰어난 모습이다. 도쿄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어 열차로 쉽게 갈수 있으며 구니코는 국립공원에 속하기도 한다.

닛코는 이러한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오늘날의 닛코를 만들어낸 또 다른 요인에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숨어있다. 닛코는 나라시대 말기인 8세기경 쇼도쇼닌(勝道上人)이 니시혼류지(西本龍寺)와 후따라신진자(神社)를 세우면서 역사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가마꾸라와 무로마찌 시대로 대표되는 중세시대를 전후해서는 바꾸후의 보호에 힘입어 산악 불교의 영지로 강력한 세력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실권을 장악하면서부터는 강력한 탄압정책을 실시하여 그 세력이 많이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반기를 든 도꾸가와 이에야스에게 실권이 넘어가면서부터 다시금 닛코의 역사가 제자리를 찾게 되어 오늘날의 닛코는 도꾸가와 이에야스 사후 그의 무덤이 손자인 도꾸가와 이에미쯔에 의해 이곳으로 이장되고 동조궁이 세워지면서부터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닛코 자연국립공원은 규모가 워낙 방대해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돌아다녀보아도 전체를 다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여행자들은 닛코의 핵심이랄 수 있는 닛코 역 주변과 쥬젠지꼬 쪽만 집중적으로 돌아보고 나온다. 닛코 전체를 돌아보고 싶다면 적어도 이틀 이상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고(神橋)는 나라시대 말기 닛코에 불법을 전파하러 온 쇼도쇼닌이 다이야가와의 급류를 건널 수 없게 된 순간 부처님께 빌자, 지나가던 뱀이 다리로 변했다는 불심이 철철 넘쳐흐르는 전설이 전해오는 다리다.

이 때문에 「뱀 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1636년 도쇼구 재건 당시 닛코의 영주가 다리를 만들어 바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때만 해도 자유로이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장군, 승려, 칙사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일반인은 마쯔리 같은 특별한 때가 아니면 건널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밟아볼 수 있는 관광 상품일 뿐이다. 이 다리는 360년 이상이나 지났지만 다리의 모습이 너무 새것처럼 보이며 분명히 그만한 세월의 때를 만났으면 그에 상당한 흔적이 남아 있어야 정상일 텐데 이건 너무 깨끗하게 보존돼온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다리는 1907년에 불이 나서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그 후 이 다리는 재건되었단다.

일반적으로 신교를 닛코 관광의 상징으로 삼는 이유는 주홍빛 나무다리가 울창한 삼나무 숲과 맑은 다이야가와의 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교는 건너기 위한 목적보다는 순전히 보기 위해 놓은 다리이기 때문에, 어차피 다이야가와를 건너려면 이 옆의 콘크리트 다리를 이용할 수도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실질적인 닛코 여행이 시작된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다. 왼쪽으로 꺾어져 린노지(輪王寺)라는 표시가 보이는 길로 들어가면 산동네, 닛코답게 또 언덕길이 나타난다. 린노지의 입구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최초의 건물은 다름 아닌 매표소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닛코 최대의 건조물이라 불리는 린노지의 본당이다. 766년에 개창한 이 절은 닛코 산악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한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탄압으로 위축되기도 했으나 재흥되어 지금가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린노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 절의 본당에 해당하는 선명한 붉은색의 산부쯔도(三?堂)로, 닛코 최대의 건물이라고 한다. 이보다 더 큰 볼거리는 그 앞에 서 있는 둘레 5.8m의 대형 벚나무다. 4월 하순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린노지는 대개 닛코 단체관광의 첫 순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곳곳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산부쯔도의 색다른 만질 거리는 출구 쪽에 놓여있는 불상인데 몸이 아프거나 안 좋은 부위가 있을 때 불상의 같은 부분을 쓰다듬으면 낫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속설이 있어 누구나 한번씩 손을 대고 자나간다. 본당 안쪽에는 불상, 회화 등 린노지의 보물을 소장하여 전시하는 호모쯔덴(寶物殿)과 일본식 정원도 있다. 린노지를 빠져나와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조용히 따라가면 거의 모두가 닛코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부르는 동조궁이 나타난다.

동조궁은 시즈오까에 묻혔던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시신을 그의 유언데 따라 닛코로 이장하면서 지은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이다.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도요또미 히데요시와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신으로 떠받드는 곳이다. 초기에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인 이에미쯔가 56만 냥의 금과 100관의 은, 1만 5천여 명에 이르는 인력을 동원하여 2년여에 걸쳐 재건하면서 지금처럼 화려한 신사로 변모했다.

신사의 이름도 공사완료와 더불어 절을 뜻하는 동조사에서 신을 모신다는 뜻의 동조궁으로 개칭되어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경내는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지만 불교의 사원 건축양식과 일본 신또의 신사건축양식을 혼합하여 만든 화려한 건물이 아름다움과 함께 막강했던 도꾸가와 가문의 재력과 권력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닛코를 보지 않고 멋있다고 하지 말라」는 속담도 거목에 묻혀 있는 아름다운 동조궁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동조궁에 들어가면 맨 먼저 지나게 될 신사입구에 세운 천(天)자모양의 이찌노도리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석조 도리이(鳥居)로 유명하다. 계단을 올라가 경내로 들어가면 바로 왼쪽의 마구간에 말의 수호신인 8마리의 원숭이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눈, 입, 귀를 막고 있는 산자루가 가장 유명하다. 원숭이 조각의 내용은 위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어릴 때는 나쁜 것을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않는다. 」8면의 조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다. 2. 어미 원숭이가 자식의 장래를 내다보고 있으며 자식은 신뢰하는 표정으로 어미를 바라보고 있다. 3. 입을 굳게 다물고 큰 뜻을 품고 하늘을 바라본다. 푸른 구름이 「청운의 뜻」을 암시하고 있다. 4. 인생을 살아가면서 좌절과 번뇌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럴 때에는 동료를 격려해주는 친구가 있다.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이 조각은 마치 우리나라의 시집살이 3계명과 비슷한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말을 키우는 마구간을 지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계단을 오르면 화려한 동조궁의 결정체, 요메이몬(陽名門)이 보인다. 다이유인 참배로는 다이유인은 도쿠가와 3대장군이었던 이에미츠(家光)의 묘소다.

자신의 조부 이에야스를 지극히 존경한 나머지 「죽어서도 조부를 모시고 싶다, 조부 곁에 묻어 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사후 2년 후인 1652년에 세워졌다. 조부를 모시고 있는 동조궁을 모방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동조궁과는 다른 양식으로 세워졌고 지형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동조궁이 흰색과 금색을 기조로 하여 검정색의 포인트를 준 것에 비하여 다이유인은 금색과 검정색을 기조로 하여 적색(금박도 동조궁 보다 붉은 톤으로)의 포인트를 주었다. 다이유인 묘는 이에야스가 잠들고 있는 동조궁을 향하고 있는데, 이 것은 이에미츠의 그에 대한 강한 존경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2000년 4월 21일~11월 30일간 한시적으로 35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다이유인 경내에 있는 이에미츠의 무덤인 오쿠노인(奧院)은 평상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