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북해도 일주여행

일본 본토와 북해도 일주(8)-태평양 훼리호 안에서 생긴 일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26. 17:49

 

 항공기에서 내려다 본 아사히가라국제공항

 항공기에서 내려다 본 아사히가라국제공항

 홋카이도의 오타루 운하

 홋카이도의 오타루 운하

 삿포로의 오오도리공원

 삿포로의 오오도리공원

 조잔케이 호텔 레스토랑

 조잔케이 호텔 레스토랑 

아름다운 나무들이 우거진 숲

 

태평양 훼리호 안에서 생긴 일

 

도마코마이항에 도착한 전용버스로부터 짐?가방을 끌고 대기실에서 대충 짐정리를 했다. 태평양 훼리를 타면 추울 수도 있기 때문에 필요한 옷을 꺼내기도 하고 낮 동안에 들고 다니던 우산은 가방에 넣었다. 훼리호의 354호실에 가방을 옮겨놓은 후, 4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초밥과 야채 그리고 된장찌개를 주로 갖다가 배불리 먹고 사과, 파인애플, 도마도 등을 더 갖다가 먹으면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내려오는데 배의 흔들림이 예사롭지 않게 심하다. 숙소로 돌아오니 분당에서 오신 71세 된 정귀남 할머니께서 뱃멀미에 시달리고 계신다. 토하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시는 모습이다. 김희정씨는 멀미약을 구해 드리면서「수없이 이배를 타고 일본을 다녀가곤 했지만 이처럼 심하게 배가 흔들리면서 기우는 모습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고 말한다. 그런데 배는 흔들림이 더욱 심해지고 침대에 누워 잠자려던 우리부부도 뱃멀미기운이 느끼어온다.

아내를 대리고 4층에 있는 응접실로 올라갔다. 소파에 앉아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30여분 동안 안간힘을 썼다. 울렁거리던 가슴이 진정되면서 354호실로 돌아와 잠을 청하면서 무사히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여행을 시작한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을 맞았다. 시끌벅적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일행들이 룸 밖으로 나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우리 일행 가운데 뱃멀미 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은 드믄 것 같다.

어제저녁, 훼리호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안내방송의 내용을 김희정씨는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가 쓰가루 해협을 지나오고 있을 무렵, 마치 태풍이 몰아칠 때처럼 심한 풍랑이 밤새도록 배에 부딪치고 그 때문에 배는 몹시 흔들리고 기우러지는 현상이 일어나 뱃멀미로 말미암아 수많은 승객들을 괴롭혔다고 전한다.

김희정씨마져 뱃멀미로 말미암아 토하면서 밤새도록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을 해서 아침식사는 하지 못하겠다며, 어른들께 죄송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7시 반경 레스토랑으로 올라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354호실로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가방정리를 마치자 침실 밖, 응접실로 나와 훼리호가 센다이 항에 도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배가 멎자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는 전용버스를 만났다. 약 12시간을 선내에서 지낸 셈이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우거진 숲의 도시, 센다이(仙台)

 

뱃멀미 때문에 힘들어하던 일행은 땅을 밟자,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말짱하게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가방을 버스에 싣고 센다이 시내를 통과 닛코로 향하였다. 그런데 센다이 시()는 미야기 현의 현청 소재지이고, 도호쿠 지방의 중심 도시로서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도호쿠 지방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전국에서도 12번째로 많다. 1989년에 정령지정도시로 지명되었다. 행정구역은 동서로 길고 태평양연안에서 야마가타 현과의 경계선인 오우산맥(?羽山脈)의 해발 1,000m를 넘는 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정령지정도시 승격을 위해 1987~88년에 주변의 자치단체를 편입했기 때문이며, 산림도 많기 때문에 인구밀도는 1,309.08명/km²로 정령지정도시 중에서 세 번째로 낮다. 거리마다 느티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숲의 도시라고 불리는 센다이는 일본 혼슈(本州)지방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옛날사람들은 오랫동안 중앙정부에 소속되는 것을 반대하여 왔으며, 이런 기질이 아직도 이 곳의 오래된 성향으로 남아 있다.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센다이의 역사는 서기 1600년경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라는 영주가 이 곳을 다스리면서 시작된다. 예술적인 식견을 갖춘 학자였던 그는 일본역사상 최초로 로마교황청에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미 공군에 의해 도시가 거의 파괴된 후 새로운 도시계획 아래 잘 짜여진 도시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인구 95만을 넘는 동북지방의 최대의 도시이다. 센다이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후를 가진 지역으로 북위 37~39도에 걸쳐있으며,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온화한 편에 속한다.

센다이는 대도시인 동경이나 오사카처럼 번화한 도시는 아니지만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로써 한국인유학생들이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 대도시와는 다르게 물가가 저렴하고 동경으로의 이동이 용이하기도 하다.
1907년에는 지금은 도후쿠 대학교라고 부르는 도호쿠 제국대학(東北帝?大?)이 센다이에 창설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공업 항구로서 새로 개발된 센다이 항을 중심으로 공업도시로서도 발전해 왔고, 센다이 항은 1995년에 수입촉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센다이 시의 동부, 즉 1987~88년에 주변의 자치단체를 편입하기 전의 행정구역은 거의 센다이 평야에 있으며, 여기에 인구도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