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여행

26.프라하의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카를교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8. 16:07

프라하의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카를교

 
고딕 양식건물인 성비트교회 그리고 황금소로

 

로얄 정원과 남쪽 정원, 갤러리, 앤 여왕의 여름 별장은 여름에 개방한다. 또 프라하성의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프라하 최대의 고딕 양식건물인 성비트교회가 있다. 10세기부터 차츰차츰 건축이 계속되어 1929년에 간신히 완성되었다는데 프라하의 역사 그 자체가 새겨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24m나 되는 대첨탑이 장관이며 우측 중앙의 성 바츨라프 예배당과 좌측 바로 앞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대단한 볼거리다. 프라하성 문 양쪽에는 위병 2명이 부동자세로 서있었는데 그 광장에 모인 수많은 관광객들은 멋있는 자세로 서있는 위병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싶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

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

 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

 

필자부부도 그곳에서 위병과 함께 멋있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는 성 외각의 돌담이 쌓여있다. 그 돌담으로부터는 프라하 전경의 80%가 내려다보인다. 프라하의 관광 가운데 빼놓으면 절대로 안 될 곳은 황금소로다. 이르지 교회로부터 동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화이트 타워 아래에 있는 담벼락을 만나게 된다. 이 담벼락을 따라서 조금 걷다보면 왼쪽으로 꺾어지는 길을 만난다.

파스텔 같은 색깔을 칠한 조그마한 집들이 계속 늘어서 있는데 동화 같은 이 길이 아주 유명해진 황금소로이다. 황금소로의 작은 가게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다. 16세기경에 만들어진 이 좁은 길에는 책방이나 기념품점과 같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늘어서 있다. 프라하 성을 지키던 군인들의 막사가 1520년대 처음으로 들어섰다. 그때 루돌프 2세의 왕실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연금술사들이 거주하면서 황금소로(The Golden Lane)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금은방 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오늘날 금은방은 보이지 않고 작고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수많은 관광객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다. 몸을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문을 통하여 안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도자기나 그림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 황금소로의 많은 가게들 가운데 19번지에 속하는 가게는 하벨대통령의 부인 올가 여사의 올가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체코는 1989년 비폭력 시위를 통해 마침내 공산 정부가 종말을 고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를 가르쳐 벨벳 혁명 (Velvet Revolution)이라고 하는데 이 무혈혁명을 통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시인이자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바클라브 하벨(Vaclav Havel)이시다. 1층에는 대부분 가게들만이 있고, 2층은 긴 회랑으로 이어져 중세시대의 무기를 전시해 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무기들은 갑옷뿐만 아니라 총과 칼 그리고 방패들까지 다양하게 전시돼있다.

 

  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

체코 프라하의 황금소로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개발되었을 도끼와 칼이 합쳐진 무기들도 전시되고 있고, 한 편에서는 모조품 무기들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바로 이 황금소로가 프라하는 물론이고 유럽최고의 소매치기가 있는 곳이고 집시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소지품을 조심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킨다. 중요한 것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은 어린아이 보듬듯 꽉 껴안고 있지 않으면 조그마한 꼬마들이 앞에서 말을 걸고 어른들은 뒤에서 가방을 낚아채 간다고 한다.

언제 채 가는지 솔개 병아리 채가듯 한단다. 이곳에는 날치기, 들치기, 아리랑 치기 등 각종 치기 범들이 호시탐탐 관광객의 주머니나 가방을 노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말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지갑을 꺼내지 말고 소매치기들에게 내 돈이 어디 있는지를 알리지 않아야 한다.

길거리에선 절대로 환전을 하지 말라고 한다. 체코는 국제적 관광지이므로 가는 곳마다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황금소로 출구에는 공연장으로 보이는 장소에 의자들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큰 호두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그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좋은 장소로 여기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프라하의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카를교

 

프라하에 오면 반드시 들르는 유명 관광지가 있다. 1406년 카를 4세가 당시 최고의 토목기술을 동원해 몰다우 강 위에 건설을 완성하여 프라하의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카를 교가 있다.  다리 양쪽의 탑은 원래 통행료를 징수할 목적으로 세웠다고 한다. 구시가와 연결된 동쪽 탑에는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이 다리는 보행자 전용이기 때문에 언제나 노점상, 거리의 예술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12세기에 이미 목제교가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강이 범람할 때 붕괴되어 12세기 중엽에 석재 교로 대체되었다. 이 석재교 또한 강물로 인해 붕괴되어 1357년 카를 4세 때 교회 건축가인 피터 팔레지가 다시 건축하여 1402년 완공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체코 프라하 볼타강 위의 까를교       

체코 프라하 볼타강 위의 까를교         
체코 프라하 볼타강 위의 까를교

 

516m의 길이에 16개의 기둥과 3개의 브리지 타워가 있다. 구시가지 브리지 타워는 많은 조각상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브리지 타워로 손꼽히고 있다. 바로크 시대(18세기)에 만들어진 30개의 조각상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조각상은 Matyas BraunE. M. Brokoff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시가지 광장은 10세기 이래 늘 프라하의 심장부와 같았던 곳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종 건축양식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 곳은 특히 낮과 밤 가릴 것 없이 계속되는 활기찬 분위기와 프라하 역사에 길이 남을 주요사건들의 발생지로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1422년에 행해진 성직자 Zelivsky의 처형장 소이자 1918년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등을 벌인 애환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체코 프라하 볼타강 위의 까를교


우리일행은 이 카를교를 건너면서 1시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거리악사들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관광객들, 행위 미술가들을 통하여 초상화를 그리려는 사람들, 성직자 Zelivsky 동상의 다리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 그리고 몰다우 강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리 하나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시계인 프라하 시청 앞 천문시계.

 

카를교를 건넌 일행 모두는 천문 시계탑이 있는 광장으로 갔다. 그곳 광장은 1338년 건조된 일찍이 프라하 시 행정의 중심지였다. 중세의 번영을 연상시키는 대형 홀이 있고 70m의 탑에서 보이는 경관은 정말 장관이다.특히 외벽에 있는 1410년 작품인 시계탑과 매시 정각마다 시계 위의 창문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그리스도 열두 제자와 암탉의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대인기였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1시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1시 정각에 그 모습을 보기 위하여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면서 기다렸다가 구경도하고 사진촬영을 했다.

프라하의 천문시계는 15세기 프라하대학 수학교수이면서도 시계공이였던 하누슈가 만들었다. 이 시계를 만든 하누슈는 대단히 아름답고 세밀한 시계를 잘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시계공이면서 멋진 시계를 만드는 것을 보람으로 여겼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시계를 잘 만들던 하누슈의 명성은 날로 커져만 갔다.

 

체코 아름다운 프라하의 천문시계

체코 아름다운 프라하의 천문시계

 

그의 명성이 알려지자 프라하 시는 그에게 프라하 시청 앞에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한다. 「수학 교수」인 그에게 프라하 시에서는 아름다운 시계를 주문했고, 그는 장인정신을 담아 최선을 다해 천문시계를 만들었다. 천문시계라는 말 그대로 밤하늘의 우주를 따라 만든 시계를 프라하시민과 시청은 정말로 좋아하고 하누슈를 칭찬하게 됐다. 그렇게 되니 장본인인 하누슈는 뿌듯한 기분이었지만 프라하시민들과 시청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천문시계의 명성 때문에 하누슈는 무척 유명해지는 덕택으로 시계의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있으니 다른 곳에도 천문시계처럼 아름다운 시계를 하누슈가 만들어준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고민을 해오던 프라하 시민들과 시청측은 하누슈의 두 눈을 뽑아버리는 엄청나게 잔인한 짓을 저지르게 된다.

두 눈이 뽑혀버려 장님이 된 하누슈는 교수직을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더 이상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 수 없게 되자 분노하였다.  아름다운 시계를 만든 대가가 고작 이런 것이라니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없었던지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이렇게 하누슈가 죽고 말자 그 문제의 천문시계도 멈춰버리고 만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또 다른 어떤 시계공도 천문시계를 고치려고 애를 써봤으나 고칠 수가 없게 되었다.

체코의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체코의 프라하의 아름다운 천문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