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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포, 모를 다녀와서(31)-1992년에 개최한 바르셀로나 올림픽마을

달리는 말(이재남) 2006. 9. 10. 06:40

-바로셀로나 올림픽촌 몬쥬익언덕-

-바로셀로나 올림픽촌 몬쥬익언덕-

-1992년에 개최한 바르셀로나 올림픽종합경기장-

-바로셀로나 올림픽촌-

-바로셀로나 가우디의 성 가족성당-

-바로셀로나 가우디의 성 가족성당-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구엘공원-

 


1992년에 개최한 바르셀로나 올림픽마을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 Cornet. 1852?1926)의 도시이다. 바르셀로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여기저기에서 가우디의 작품과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이곳의 이민생활 20년째 되는 이희정씨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를 시작한지는 3년째 된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스페인은 태권도와 많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데 그녀의 남편이 태권도 7단이란다. 태권도 때문에 이곳에 이민을 와서 살고 있다.

이민생활 20년이 된 그녀는 대학교 1학년생인 딸과 고등학교 학생인 아들 하나를 둔 어머니라고 했다. 이어서 그녀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버스 운전기사 안토니오를 소개했는데,

?스페인사람들은 모두가 다 안토니오냐??고 일행들은 모두 웃는다. 7박 8일 동안 전용버스를 운전해준 34세 된 총각 기사이름도 안토니오였고, 톨레도의 현지가이드 이름도 후안 안토니오 이었으니 모두 웃을 수밖에...

전용버스를 타고 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우리나라의 1988년 개최한 올림픽대회에 이어 올림픽대회를 개최할 때 만들어진 바로세로나 올림픽경기장, 그때 마라톤에서 1등을 차지하여 마라톤영웅이 된 황영조 선수의 달리는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놓은 몬주익 언덕을 곧 바로 찾아갔다.

올림픽경기장과 바르셀로나 시내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몬주익 언덕은 바르셀로나 서쪽의 약간 높은 언덕에 위치해있다. 언덕 정상에는 몬주익성이라고 불리는 요새가 있고, 이곳에서는 지중해와 시가지가 모두 보인다.

몬주익 언덕에는 카탈루냐 미술관, 미로 미술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미술관이 모여 있다. 그리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과 선수들이 먹고 자고 했던 스페인 촌이 그곳에 있다.

또한 그 몬주익 언덕에는 경기도와 바르셀로나 시와의 맺은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비석이 서있는 그곳 언덕의 올림픽공원을 배경으로 하고, 그곳 공원에서 바라보이는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여 한 참 동안이나 쉬기도 하고 사진촬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몬주익 언덕을 넘어서 내려오는 길은 바르셀로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으며 내려오는 길에는 바르셀로나 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언덕에서 내려와 바르셀로나 항 이곳저곳을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 설명이 끝나자 해변에 일행을 내려놓고 모래사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모래사장 옆으로는 긴 둑이 늘어서 있었고, 그 긴 둑 위에는 큰 소철나무들로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어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둑을 우리부부는 걸으며 카메라에 담느라고 분주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들이마시면서 바닷바람을 쏘였다. 

 

역사와 문화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탄 전용버스가 달리다가 멎은 곳은 가우디의 걸작, 성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이다.

성 가족성당까지 가는 길에 이희정씨는?최근에 외국인, 외국인 가운데에서 특히 여행객을 대상으로 강도(목조르기, 마취) 및 소매치기 등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으며, 남, 여, 노, 소나 주간, 야간 구분 없이 대담한 범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및 일본 여권이 국제 위조여권 조직에 의해 비싼 가격에 거래됨에 따라 여권을 노리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고, 집시 범죄자들은 2∼5인의 무리를 이루어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장소에서 범행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이곳이 유럽이고, 선진국이니까 안전하겠지 하는 방심은 금물이며, 누군가가 나를 범행대상으로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하니, 어깨에 메는 가방을 앞쪽으로 하고 늘 손을 그 가방에 올려놓고 다니시기 바랍니다.?라고 주의를 환기시켜준다.

집시라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9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수 있는데, 페르시아 말이나 아르메니아어와 집시어를 비교하면 집시의 말이 소아시아에서 발칸 여러 나라를 거쳐 도나우 강을 넘어 서진(西進)한 과정을 알 수 있다.

14∼15세기에 걸쳐 이미 유럽 각지에 집시가 나타났는데, 이 때부터 급속히 유럽 각지에 흘러 들어간 것 같다. 집시자신들의 명칭은, 유럽에서는 롬(Rom), 시리아에서는 돔(Dom), 아르메니아에서는 롬(Lom)이며, 이러한 데서 집시의 말을 로마니(Romany)라 한다. 

영국에서 처음에는 집시들이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이집트인(Egyptian)이라 했는데, 이 말의 두음소실에 의한 변형 gicyan의 역성(逆成)으로서 gipcy가 쓰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 북 유럽과 독일의 북쪽에서는 타타르 또는 사라센인, 독일에서는 치고이너, 헝가리에서는 치가니,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에서는 기타노라고 부르고 있다. 인구는 약 180~400만 명이며, 그 가운데 유럽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75만∼150만, 근동(近東)에는 6~20만,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10만 내외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사는 집은 보통 텐트이지만, 움막집도 있다. 동유럽 여러 나라는 집시의 정착을 촉진하기 위해서 집을 지어주고, 직업을 주고, 학교를 짓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집시들의 호응이 없어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단다.

생업은 지방이나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이들은 대장장이, 주물공, 고리장이, 조련사, 거간(목재,가축)에 종사하고, 마술사, 점쟁이, 악사 등이 있으며, 정착한 경우에는 농업, 기타의 옥외 육체노동을 한다.

집시는 이 이외에 특수한 기능도 없고 자본도 없기 때문에 빈곤하며, 학교도 가지 않으므로 문맹이 많다. 의복은 가는 곳마다의 의상 풍속을 따르며, 그들의 민족의상은 없다.  먹는 것은 로스트 치킨과 고슴도치의 고기를 즐겨 먹고 술을 좋아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담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