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여행

스, 포, 모를 다녀와서(30)-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

달리는 말(이재남) 2006. 9. 7. 06:52

-바로셀로나 올림픽조형물-

-바로셀로나 바닷가 뚝-

-올림픽경기장에서 바라본 바로셀로나항-

-바로셀로나 아름다운 건축물-                                              

-바로셀로나 올림픽촌  부근-


특유하고 차분한 음성의 소유자, 가이드 김용민 군

 

오늘은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항공기를 이용하여 이동하려는 여행 스케줄 때문에 5시에 아침식사를 하려고 내려가면서, 아주 짐(가방)을 끌고 내려가 호텔현관에 세워놓았다. 입맛이 있을 까닭이 없지만 대충 음식을 갖다가 먹었다.

마드리드공항까지는 20분정도 버스로 달려갔다. 7박 8일 동안 안전하게 버스를 운전하여 우리일행을 태워다준 운전기사 안토니오와 아쉬운 이별을 했다. 일행 모두는 안토니오에게 박수를 보냄과 동시에 ?아디오 !?를 외친다.

각자 짐(가방)을 공항 안으로 끌고 들어가 그 짐을 부치고 티켓 팅을 했다. 이곳에서는 7박 8일 동안 우리일행이 가는 곳마다 설명을 잘 해주었고 도와주었던 가이드 김용민 군과 또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는 고국에서 중학생 때부터 음악, 음악 가운데 특히 기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스페인어를 전공하여 이곳에 유학을 왔다. 지금은 마드리드 왕립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제는 논문만 작성하면 된다.  그의 나이는 36세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김용민 군처럼  설명을 잘해주는 가이드를 만나본적이 없다.  그의 특유하고 차분한 음성을 십분 잘 활용, 뛰어난 언어능력과 판단력, 융통성과 재치, 통찰력, 소개해야할 문화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탐구력, 그리고 주어진 일정을 잘 소화시켜야할 세심한 시간계획과 함께 가지각색의 다양한 고객과 호흡을 참 잘 맞추어 주었다. 

늘 친절한 태도와 자세, 그리고 그의 미소는 대단히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짧은 기간동안에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둘러싸고 있는 이베리아반도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의 근대사와 현대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주었다.

김용민 군처럼 국제무대에서 뛰는 우리나라의 훌륭한 가이드는 훌륭한 인적자산이며 국가경쟁력의 일꾼들로서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우리일행들은 그를 한결같이 칭찬하고 마드리드공항의 헤어짐이 무척 아쉬운 모습들이다.

7박 8일 동안의 그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하고, 동시에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의 앞날에 건강과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빈다.  가이드와 헤어지고 7시 30분경, 출구 56D에서 스페인 항공기를 타려고 탑승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좌석 23 E와 F에 앉게 되었다.

 

또 다른 국가, 북부의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공항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했다. ?만약 시간과 비용 혹은 다른 사정 때문에 스페인에서 딱 한 도시만을 방문해야 한다면 주저함이 없이 바르셀로나를 꼽아야 한다.?고.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고 매력적인 도시이기에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일까?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비슷해지는 서유럽 도시들에 실증이 난 터라면 더더욱 바르셀로나를 찾아야 한다. 건축의 거장으로 통하는 가우디의 뛰어난 작품과 아르누보나 고딕양식 등 다양한 건축물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며, 항만규모와 상공업 활동에 있어서는 스페인 제1의 도시이다. 교외지역을 포함한 바르셀로나는 비옥한 해안평야에 펼쳐져 있으며, 천연의 좋은 항구와 더불어 스페인 최대의 산업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마르세유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의 도시를 기원으로 하며, BC 3세기에 이 곳을 지배한 카르타고인 이 바르시노(Barcino), 즉 바르카가()의 도시라고 명명하기에 이른다. BC 201년에 로마의 지배에 들어갔으며, 아직도 구(舊)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는 고딕가(Gothic:바리오·고티코스)에는 그 당시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8세기에는 무어인이 점령하였으나, 801년에 샤를마뉴(카를大帝)가 이를 해방하고 지배하였으며, 12세기에는 카탈루냐 백작과 아라곤 여왕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이 이루어지고, 바르셀로나는 그 수도로서 해운·수공업·금융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여, 14세기에는 그 절정에 달하였다.

이 무렵에 지어진 고딕식 대성당(13세기 말)을 비롯하여 역사적 건조물들이 구시가 중앙에 많이 남아 있으며, 당시의 바르셀로나의 해양법인 콘술라도 데 마르는 오랫동안 그 권위를 유지하였다.

1469년에 아라곤과 카스틸랴의 통일로 지방도시가 되었으나, 고유의 카탈루냐어()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1550년에 창립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의 선진지역으로서, 카탈루냐 문화에 대한 긍지와 진보적 시민자치의 전통 및 강력한 상공업을 기반으로 번번이 독립을 요구하고 반란을 일으켜왔다.

그러다가 17∼19세기에는 프랑스군의 침공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북부 카탈루냐 지방을 프랑스에 빼앗기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는 스페인의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1936∼1939년의 스페인내란 당시에는 공화정부(인민전선정부)의 마지막 거점이 되었다가 1939년 1월에 프랑코군 에 의해 함락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바스크 족은 스페인의 북부의 바스크 지역에 주로 거주하며 독립을 주장하고 있고 언어도 바스크 지역에서는 바스크어가 사용되고 있어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단다. 바르셀로나는 같은 스페인이면서도 마드리드나 그라나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스페인에는 지방마다 「국가」가 있다고 하는데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도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졌음은 물론 고유의 언어인 카탈루냐어가 존재하며 현재도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