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상황
현재 상황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아일랜드 분쟁의 주요행위자는 ① 북아일랜드 신교도 연합주의자들과 ② 북아일랜드 가톨릭신자 민족주의자들 ③ 영국 정부 ④ 아일랜드 정부이다. 연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연합은 북아일랜드와 영국정부의 연합이고, 민족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정부가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의 주도, 벨파스트의 타이타닉 박물관
북아일랜드의 주도, 벨파스트의 타이타닉 박물관의 구조용 보트
즉, 북아일랜드 분쟁은 영국·아일랜드 간의 분쟁과 북아일랜드 내부 연합주의자(영국 편향)·민족주의자(아일랜드 편향) 간의 분쟁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분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난 30여 년에 걸친 IRA 무장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3,700여 명에 이르며, 그 외에도 이들의 충돌로 희생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와 같이 1999년 12월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출범했지만, IRA는 무기반납을 거부했고, 이듬해 2월 얼스터연합당은 자치정부에서 탈퇴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 자치권을 박탈했다가 다시 돌려주는 등 북아일랜드 상황은 여전히 불안해져있다.
2001년 10월~2002년 4월까지 IRA가 무기폐기 및 무장해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 대한 신교 측과의 마찰·추가적 무장해제에 대한 명확성 결여 등의 이유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행은 다시 난항을 겪게 되었다. 이어 2004년 12월 20일에 발생한 아일랜드 벨파스트의 노던 은행 강도사건에 IRA가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자 양측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이후 2005년까지 관계의 진전이 없는 교착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북아일랜드의 주도,벨파스트의 타이타닉 박물관입구
그러나 상황은 2005년 7월 28일 IRA가 무장투쟁을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해빙기를 맞이하였으며, 이는 2007년 5월 가톨릭신자·신교연합의 북아일랜드 공동 자치정부 출범과 2009년 6월 신교 측의 얼스터의용군·얼스터방위군의 완전한 무장해제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북아일랜드 분쟁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양측이 화해를 모색하고 있던 2009년에도 케빈 맥데이드(Kevin DcDaid) 사망사건이 발생했었고, 이후로도 폭력적 충돌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직 잔존하는 IRA 분파들도 영국을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실례로 2010년과 2011년에는 IRA 분파조직들이 영국을 대상으로 폭발사건을 일으킨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11년 6월 21일에는 신교도 청년과 구교도 청년들 700여 명이 거리에서 충돌한 사건도 일어났다. 물론 2012년 5월 영국여왕의 북아일랜드 방문, 2013년 2월 영국 정부의『피의 일요일』사건으로 희생된 시위대 유가족 보상금 지급 결정, 동년 6월 벨파스트 평화담장 철거 발표 등 영국 측이 북아일랜드에 유화적 몸짓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분쟁의 해결은 아직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6월에는 흩어져있던 4개중 3개의 IRA 분파가 연합하여『새 IRA』를 조직했을 뿐 아니라 동년 8월에는 북아일랜드독립에 반대하는 폭력시위(9일) 및 IRA 추모행사 관련 폭력시위(11일)가 발생하는 등 북아일랜드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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