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아비뇽은 원공과 림삼이 어우러진 타원형도시로 론강의 좌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근에 듀랑스강이 있다. 파리로부터 남남서 방향으로 580km 거리에 있는 아비뇽은 고대 켈트족시기에 론강 유역의 오피둠 아베니오에서 기원하여 이오니아계 고대 그리스의 도시였던 마실리아의 주요 식민지 중 하나였다.
이후 로마제국의 속주인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에 속하였고 하드리아누스가 지금의 도시를 건설하였으나 이 시기의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5세기 이후 게르만족의 이동시기에 고트족의 영토가 되었으며 브르고뉴 왕국과 아를 왕국, 동고트 왕국 등이 지배하였다.
-아비뇽 교황청 옥외축제-
그러나 동고트왕국의 멸망 후 프랑크족의 메로빙거왕조가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736년 사라센이 이 지역을 정복하였으나 737년 프랑크족의 카를 마르텔이 다시 정복하였다. 프로방스의 보소가 프로방스의 군주가 된 이래 879년까지 독자적인 왕국이 존재하였으나 이후 프랑크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033년 콘라트2세가 아를왕국의 군주지위를 상실하게 되자 프로방스지역은 1135년까지 공화정을 이루어 선출된 집정관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후, 1135년부터 1146년까지 툴루즈 백작이 통치하기도 하는 등 주위 백작령에 속하였다. 12세기 말 아비뇽은 공화정으로 독립하였으나 알비 십자군의 카타리파 토벌에 휘말리게 되었고, 1226년 공화정은 십자군에 의해 붕괴되었다. 알비 십자군이 종결되자 루이8세는 아비뇽을 프랑스왕가의 속령으로 두었다.
-아비뇽의 교황청-
-아비뇽의 교황청-
-아비뇽의 교황청-
1309년 필리프4세의 후원으로 즉위한 교황 클레멘스5세가 아비뇽에 교황청을 둔 이래 1377년까지 교황청이 있었다. 교황이 아비뇽교황청에 있었던 기간을 아비뇽 유수라 한다. 이 기간 동안 교황은 모두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 남부 론 강변에 위치한 아비뇽은 둘레 약 5km의 성벽 안쪽에 형성되어 있는 요새와 같은 도시다. 중세시대에는 기독교의 중심지였으며, 한 때 교황청이 옮겨오기도 했던 곳이다. 12세기에 생 베네제 다리가 건설되자, 아비뇽은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인 상업도시가 되었다.
그로인해 아비뇽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문화가 융합하여 경제적, 문화적인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다. 1309년 프랑스왕의 꼭두각시였던 교황 클레멘스5세가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긴 후, 1377년 까지 68년 동안 7명의 교황이 아비뇽에 머물렀는데, 그 당시 이 도시는 로마를 대신하는 가톨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이 때문에 아비뇽은 특히 로마교황청이 있었던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교황령은 치외법권 지역이었으니 범죄자들이 이 도시로 피해 모여 들었다. 그래서 선술집과 유흥가들이 함께 들어서면서 아비뇽은 타락한 도시라고 널리 인식되기도 했다. 아비뇽은 계속 교황의 통치를 받다가 프랑스대혁명 후 1791년 프랑스국민의회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었는데, 이 도시의 탈취과정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교황청의 내부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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