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구제도의 모순이 심화되어있었다. 구제도 아래에서 제 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은 여전히 면세특권을 비롯하여 봉건적 특권을 소유하고, 제3신분인 평민만이 모든 재정적인 부담들을 안고 있었다.
여기에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재정 상태는 사치스러운 궁정생활과 미국의 독립전쟁 등 대외전쟁 자금비용에 쏟아 부을 대로 쏟아 부어서 파탄상태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면세특권을 주장하여 재정문제해결에 근본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였다.
이러한 사회적 대립과 함께 루소 같은 계몽 사상가들의 혁명사상이 시민들 사이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미국의 독립혁명소식도 이들을 크게 자극하였다. 재정문제가 심각해지면서 1789년 프랑스국왕 루이16세는 1614년 이래로 단 한 번도 소집하지 않았던 삼부회를 소집하였다. 삼부회에서 특권신분과 평민층의 대립으로 파행을 치닫다가 제3신분 대표들끼리 독자적으로 테니스 코트선언을 하여 국민의회를 구성하게 된다.
루이 다비드가 그린「테니스 코트의 선서」-
이에 국왕 루이16세는 국민의회를 탄압하게 되었는데, 이때 파리시의 시민들이 7월 14일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함으로써, 프랑스대혁명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국민의회는 서둘러 봉건제의 폐지를 선언하였고, 이어서 프랑스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혁명의 기본이념을 천명하였다. 국민의회는 1791년 입헌군주제와 제한선거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고 해체되었다. 그 이후 새로운 헌법에 의해 소집된 입법의회가 탄생하였는데, 혁명에 온건파세력인 지롱드 당이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1792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프랑스혁명에 간섭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장 자크 루소(1712년 6월 28일~1778년 7월 2일)-
이 와중에 파리 시민들이 왕궁을 습격하여 국왕과 왕비를 잡아가둬 왕권이 정지되었고, 입법의회가 대외적, 대내적으로 미온한 태도를 보이면서 곧 해산된다. 1792년 9월에는 국민공회가 소집되었다. 국민공회는 강경 혁명파인 자코뱅 당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공화정을 선포하고, 국왕 루이16세를 단두대에서 공개처형식을 하는 등 유럽전역에 충격을 주었다.
1793년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를 실시하여 국내의 반혁명세력들을 처형하거나 탄압하고, 봉건적 공납의 무상폐지 등 급진적인 개혁 등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지나친 공포정치에 대한 반발로 인하여 로베스피에르는 처형되었고, 다시 온건파 지롱드 세력들이 장악하게 된다.
1795년 입헌공화정과 제한선거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여 5인의 총재가 협의하여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는 총재정부를 구상하였다. 하지만, 총재정부는 재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고위층들의 무능과 부패함으로 프랑스국민들의 실망이 커지게 된다. 결국, 나폴레옹이 이를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통령정부를 세우게 된다.
루이16세 일가가 탈출에 실패하고 파리로 압송되는 그림이다-
-루이 16세의 초상화-
-루이 16세(탕플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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