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의 나라, 프랑스 일주여행

81.제1차 세계대전

달리는 말(이재남) 2022. 4. 19. 07:44

나폴레옹3가 즉위하자 당시 프랑스시민들은 그의 황제등극을 열렬히 축복했으며, 프랑스가 다시금 유럽의 지배자로 우뚝 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또한 국민들의 기대대로 나폴레옹3세는 전임 왕들의 폐단정리와 내정개혁을 단행하고 대외팽창을 통해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으나,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그는 포로로 잡혀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 뒤 패전국이 된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독일제국에게 넘겨주게 되었으며, 독일이 프랑스에 배상금인 50억 프랑을 요구하였으나 단 몇 개월 만에 이를 갚아 전 유럽과 독일, 그리고 비스마르크 수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로 인해 프랑스-독일의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이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폴레옹3세가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포로로 잡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자, 왕정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 있던 당시 프랑스사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는 1870년에 일어난 보불전쟁에서 패배해 제2제정 황제였던 나폴레옹3세를 내쫓고 1871년 아돌프 티에르를 대통령으로 하는 제3공화국을 수립했다.

같은 해에 일어난 코뮌주의자들의 반란을 진압하고(파리 코뮌)해군은 함정정비에 대한 계획을 세워 해군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3공화정 8대 대통령인 레이몽 푸앵카레 대통령 재임 중이었을 때 19148, 독일제국이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보불전쟁-

 

독일제국은 전쟁초기에 단숨에 프랑스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지만, 프랑스는 과거 1870년 때의 보불전쟁에 대한 복수심이 강하게 불타올랐기에 저항이 강했다. 그때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면서 전쟁의 양상은 참호전형식으로 장기전이 되어 전쟁의 고착화가 되어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1917년까지 독일군과 대치상황을 두고 지겹게 싸웠고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양상이 되었다.

1917년 미국이 참전, 막대한 물량공세를 퍼부으면서 독일군을 격파하고, 1919년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끝낸다.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패전국인 독일에 대해 베르사유조약을 통하여 가혹하게 다뤘는데, 이는 프랑스가 전쟁을 두려워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역사-위그노 전쟁.